[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30대 중반의 퇴사를 앞둔 직장인입니다. 그리고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3년 전부터 우울증이 발병했고, 그에 따라 약 6개월간 약을 처방받아먹고 상담했지만... 그 후 나아진 줄 알았던 저의 우울증이 최근에 다시 발병해 현재 약을 복용 중입니다.

발병의 계기는 회사에서 제가 자꾸 적응을 못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남들에게 자꾸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모든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현재 퇴사를 앞두고 있고요.

초등학교 때 심한 왕따를 당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소화기 분말을 제 자리 쪽으로 뿌리고, 장난으로 고무줄을 튕겼는데 그게 제 눈 위쪽을 맞아,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 전 친구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방법이 거짓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어른들은 친구 없음 뭐 어때 라고 생각하시며 저를 위로해주셨지만... 이렇게 커버린 저는 아직 초등학생의 생각에 머물러서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저도 모르게 자꾸 불안하고 자살하고 싶고 한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지인의 말처럼, 그냥 놓고 떠나버리면 그만인 걸까요??

 

사진_픽셀

 

답변) 

어렸을 때 성장판을 다치게 되면, 그 부분은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손가락에 있는 성장판을 다치면, 손가락이 짧게 되고, 무릎에 있는 성장판을 다치면 한쪽 다리가 더 짧게 되죠. 성장이 더뎌지니까요. 저는 엄지손가락 성장판이 다친 적 있고, 지금은 그쪽 손가락이 반 마디 정도 짧습니다. 가끔 짧은 쪽 엄지손가락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곤 합니다.

'손가락이 짧은 건 정말 다행이다, 팔이나 다리가 양쪽 길이가 다르면 삶이 정말 힘들었겠지.'

 

우리가 자라오면서 몸에 상처가 나고, 치유되거나 흉터가 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합니다. 성장판을 다친 것처럼 장애로 남는 상처도 당연히 있죠.

마음도 비슷합니다. 자라오면서 다양한 상처가 나죠. 하지만 그중에서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에 의한 상처는 쉽게 회복할 수 없고, 장애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에 난 상처이고 장애라 보이지 않을 뿐이죠.

내가 믿지 않는 사람에게 당한 상처는 비교적 쉽게 회복됩니다. 그 사람은 애초에 나쁜 사람이고, 앞으로는 그런 유형의 사람은 멀리하겠다고 믿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내가 믿는 사람에게 당한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마음에 입은 상처에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추억이 엉켜버리니까요. 더 최악은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 믿을 수 없는 와중에 관계를 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들을 개발해냅니다. 질문자 분에게는 이 방법이 ‘거짓’인 듯하네요.

 

모든 관계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을 때, 이 신뢰를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가장 흔한 방법이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죠.
'나는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렇게요.

거짓말을 해서 신뢰를 얻고, 관계를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거짓은 거짓을 더하게 되고, 결국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죠. 이렇게 거짓으로 관계를 만들고 끝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결국 상처 받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난과 연민이 합쳐져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비난하게 되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어린 시절 따돌림으로 관계 맺는 능력이 망가지게 되고, 그 능력이 망가져 현재 따돌림을 경험하는 셈이니까요. 그리고 현재의 따돌림 경험으로, 관계를 맺는 능력은 더 망가져 갑니다.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되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우울, 불안, 자살사고 등이 생깁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니까요.

다행히 질문자 분은 이 단계에서 정신과 진료를 시작하신 듯합니다. 우울증 약도 드시고, 상담도 하며 호전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다시 우울증이 재발하셨네요.

우울증 회복의 과정은 등산에 흔히 비유합니다. 산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이 늘 오르막은 아닙니다. 정상까지 가는 길인데, 가끔은 내리막이 나오죠. 우울증 회복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료를 받는 중에도 증상이 나타나거나 악화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다행히 질문자 분은, 산에 대해서 잘 아는 탐험가와 함께 등산을 하고 계시죠. 주치의 선생님도 그 산은 처음이지만, 이미 다른 산을 여러 번 탐험해 보신 베테랑이실 겁니다. 그러니 지금 산길이 내려가는 것 같다, 길을 잃은 것 같다, 그래서 두렵다 같은 고민하시는 부분을 주치의 선생님께 표현하시면 됩니다.

6개월이란 시간은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우울할 수밖에 없는 믿음을 유지하신 십수 년의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죠.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정상을 향해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 내 고민, 내 사연도 상담하러 가기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