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가 떠날까 봐 두렵다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거절에 대한 두려움 (rejection fear)과 경계성 성격장애

 

사석에서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이상형 이야기가 나왔다. 시크함이 매력이지만 결정적일 땐 다정한 사람.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가 알고 보니 재벌 3세!? 모두가 선망하는 외모와 조건을 갖추고도 보잘것없는 내게 먼저 다가와 주는... 한 마디씩 하다 멋쩍게 웃고 이내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정만화가 아닌, 현실 남녀의 이야기.

매력의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개개인이 타인에게 끌리는 부분 역시 제각각 다르다. 누군가에게 호감의 대상인 요소가 다른 이에게는 혐오를 주는 일도 흔하다. 취향에 법칙은 없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며, 누군가를 미워한다.’라는 명제는 참인가. '미워한다'라... 받아들이기 싫긴 하지만 동의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어떤지. 음, 이건 좀 그렇다. 어딘지 의심이 가고, 받아들이기 불편하다. 타인이 자신을 거부하거나 거절하는 의사를 밝힐 때, 혹은 은연중에 피하는 기색을 보일 때 느끼는 극심한 공포와 불쾌감을 거절에 대한 두려움(rejection fear)이라 한다. 이는 주로 경계성 성격장애의 특성으로 언급된다.
 

사진_픽셀


병적인 수준이 아니더라도,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발생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타인이 자신에게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누군가와의 사이에 단순한 대인관계 이상의 가치가 투영되어 있다면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예를 들면 ‘평생을 같이 할 친구, 미래를 만들어 줄 스승, 절대 그만두면 안 되는 직장의 상사, 생에 한 번뿐인 운명 같은 사랑’과의 불화, 결별을 경험할 때의 두려움이 그렇다.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잘 가꾸려는 노력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도 일견 관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관계를 윤택하게 하기보다는 멀어지게 하는 주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이별에 대한 걱정이 일상이 된다. 상대와 건설적인 성과를 일궈 내거나 추억을 만들 소중한 시간들이, ‘관계가 틀어지면 어쩌지’를 고민하며 덧없이 흐른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들도 민감하게 느껴진다.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에도 끝없는 고민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저런 말을 하는 속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걱정은 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혹시 나를 싫어하는 걸까.’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러한 생각 자체가 관계를 어렵게 한다. 말 한마디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불필요한 신경을 쓰게 되고, 혹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행동도 위축된다. 나의 마음이 편하지 않기에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어색한 기색이 감돈다. 편안할 때의 나의 모습,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느꼈을 때의 내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상대방도 왠지 모를 감정 선의 변화를 느낀다.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함으로 물들어간다.

 

그렇다면 ‘나를 싫어할까’라는 걱정은 얼마나 타당한가. 몇 마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나 자신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할 때 불쾌감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 한 사람의 깊은 마음과 생각을 나타내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지극히 부족하다. 오해는, 내가 아는 상대의 모습으로 ‘저 사람을 안다’고 쉽게 생각할 때 자란다.

나의 관점에서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 피한다’고 생각이 들 수는 있으나, 그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지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부정적인 예측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내 생각, 내가 느낀 감정이 ‘무조건 맞을 리도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다. 항상 사랑만 받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곁에 두고픈 사람일지라도, 그의 마음이 내 것 같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바람과 현실은 별개다. 이를 직시해야 한다.

 

내가 타인을 보는 관점을 돌려 생각해보자. 나는 모든 사람을 좋게만 바라보는가, 적어도 싫어하진 않는가? 모두 어려운 일이다. 수줍게 들킬까 조심하며 사랑하거나, 차마 말하진 못하는 마음으로 증오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는 아무 특별한 감정이나 생각이 없다.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나를 흠모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이들은 내게 무관심하며, 안타깝게도 누군가는 나를 미워하는 중이다.

이는 삶을 잘 살지 못한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 눈을 감고 지금도 곁에 함께하는 이들,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들을 대했던 마음과 태도를 되돌아보자.

가족, 어린 시절 목적 없이 만난 친구들, 오래된 연인, 배우자... 나의 조그만 정성도 크게 느껴주는 이들이 있다. 느끼는 행복의 결이 비슷한 그 사람들. 그들과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특별히 잘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내게 주는 것이 많아서도 아니다.

떠나온 직장의 상사, 더 이상 보지 않고 지내는 친구들, 헤어진 연인들, 내 삶을 잠시 거쳐 간 이들도 떠오른다. 신경을 써도 어딘가 삐걱대던 관계, 공동의 목적만 아니면 만나기조차 싫은 느낌이 함께 떠오른다. 같은 말을 두고도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오해가 생기기 일쑤였다. 잘 지내보려는 마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차 멀어졌다.

‘살아가며 10명의 사람을 만나면 2명은 나를 좋아한다. 3명은 나를 싫어할 것이며, 5명은 나를 좋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기억에 남는 은사님의 말씀이다. 마치 삶의 원리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는 서로 끊임없이 사랑하고 미워하거나, 무관심할 것이다.

대단한 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나라는 사람을 우월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와의 관계가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내가 미움받을 사람이란 증거는 아니다.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다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곁에 있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과 마음이 공명할 때의 감동, 함께하는 행복이 소중하기에.
 

사진_픽사베이


누군가가 떠날까 봐 두렵다면, 역설적으로 그를 향하는 시선을 거두어 내 마음을 마주하면 어떨까. 그가 떠날까 두려워하는 나, 그가 내게 소중한 이유, 그가 없었던 그때의 내 삶과 내가 바라는 행복...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나의 행복인지를 먼저 알아봐 주자. 각기 다른 행복을 떠올리는 타인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맞출지 고민하는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행복은 어떤 모습일지를 발견하고 가꾸다 보면 이를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이 다가올 것이다.

내게 달리지 않은 결과에 대한 고민은 불안을 부른다. 쉽진 않겠지만, 미래의 결론에 대한 마음을 비우면 지금 내가 나아갈 작은 한걸음이 보인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억지로 내 곁에 둘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서로의 마음을 두드려 볼 수 있을 뿐이다. 각자의 행복에 공감한다면 함께 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다시금 나눠질 것이다. 결별의 두려움을 딛고, 내 삶에 깃드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손길을 내밀어 보자. 내 아픔에 함께 아프고 내 기쁨이 그에게도 행복이 되는 그런 사람이 어느새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가 지금 나를 부단히도 속상하게 하는 그 사람일지, 아니면 상상하지도 못한 다른 사람일지는 시간이 흘러야 할 수 있겠지만.

 

* 경계성 성격장애는 자아상의 혼란, 대인관계의 어려움, 감정 및 충동 조절의 어려움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장애이다. 유전적 요인과 더불어, 부모 등 어린 시절 중요한 애착 대상으로부터의 분리 및 단절, 신체적, 성적 학대 등의 심리적 외상 경험이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들과의 파행된 관계가 자아 정체성의 혼란, 불안정한 대인관계로 이어져 만성적인 공허감을 겪는다.

공허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 집착하지만, 불안정한 정서와 충동성, 타인에 대한 근본적 신뢰감의 결여로 관계 지속에 어려움을 겪는다. 구원자, 운명 같은 사랑 등으로 간주하던 대상이 자신을 떠나려 하면 그를 배신자, 박해자로 평가절하한다. 이상화하고 유일하게 의지하던 관계와의 단절은 극심한 공포를 유발하는 데 이것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며, 경계성 성격장애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진단 기준 (DSM-5)

대인관계, 자아상 및 정동의 불안정성과 현저한 충동성의 광범위한 형태로 성인기 초기에 시작되며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고, 다음 중 다섯 가지(또는 그 이상) 항목을 충족시킨다.

1) 실제적 혹은 상상 속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함.
2) 과대이상화와 과소평가의 극단 사이를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의 양상.
3) 주체성 장애: 자기 이미지 또는 자신에 대한 느낌의 현저하고 지속적인 불안정성.
4) 자신을 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경우에서의 충동성 (소비, 물질 남용, 좀도둑질, 부주의한 운전, 과식 등)
5) 반복적 자살행동, 제스처, 위협 혹은 자해 행동.
6) 현저한 기분의 반응성으로 인한 정동의 불안정
7) 만성적인 공허감
8) 부적절하게 심하게 화를 내거나 화를 조절하지 못함
9) 일시적이고 스트레스와 연관된 피해적 사고 혹은 심한 해리 증상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51007&docId=927263&categoryId=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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