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은 발표가 두렵다는 40대 중반의 박 부장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박 부장님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매일 회의를 하는데, 의견을 내거나 발표할 때 심장이 쿵쾅 거리고 식은땀이 납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벌게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PT가 있는 날이면, 전날 한 숨도 못 자고, PT가 끝나고 나면 하루 이틀 심하게 몸살을 앓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발표 불안 때문에 회사 다니기가 고역스러울 정도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상담하면서 만난 회사의 중역이나 사장님들조차도 발표나 회의 전부터 긴장과 불안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좀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안정제를 미리 먹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자존감을 높여서, 당당해지자,라고 아무리 마음먹어도, 이건 생각에서 그칠 때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자존감이 커져도 직장에서 발표하고,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어느 정도 긴장되는 건, 완전히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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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된다, 긴장된다, 하는 정도를 넘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목소리가 떨리고, 땀이 나고, 얼굴이 빨개지는 이런 생리적인 증상이 동반된다면, 불안의 수준이 꽤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라는 질환이 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불안장애는 타인이 자신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중심으로 한 장애를 말합니다. 사회공포증 증상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타인에게 무력하게(powerless) 비춰지는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하지 않을까, 비난받지 않을까, 남들이 자신을 함부로 보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신경을 씁니다. 타인에게 호감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못 견디고,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주려고 과도하게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회불안증상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발표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심한 경우 이런 증상 때문에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사회불안장애는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중년층에서도 사회불안증상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우리의 예상보다는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년쯤 되면 발표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없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 정도 나이 먹고 지위에 오른 사람이 사람들을 어려워할 리 없다”거나, “직장생활 잘하시는 분이라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할 리 없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서양에서 시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55세 이상 성인에서 사회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비율이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대체로 중년기 이후에 발생하는 사회불안증상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난 뒤,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다른 사람이 목격하게 되는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되고, 이것이 심해지면 사람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보이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이런 증상에도 불구하고, 발표를 회피하지 않고 꾸준히 업무도 하고 있다면 심각한 증상이다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안이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것은 주관적인 느낌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나, 없었나 하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거거든요.

 

발표 직전에 복식 호흡을 하면서, 자기 암시를 같이 하면 도움이 됩니다.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잠시 멈추었다가, 입으로 숨을 천천히 내 쉽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실 때 마음속으로 나는... 하고 읊조립니다. 숨을 내쉴 때는 잘할 수 있다...라고 또 마음속으로 읊조립니다. 이렇게 복식 호흡을 하면서, 자기 암시를 주는 거죠.

두 번째 방법은 심상 훈련입니다. 운동선수들이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발표하게 될 상황을 마음속으로 미리 상상해 보는 거죠. 마음속에서 이미지를 그려내 보는 거죠. 발표할 때의 내 느낌, 주변 사람들의 반응, 발표가 끝났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상황까지 마음속에서 이미지로 그려내 보는 겁니다.

이렇게 심상 훈련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이미지, 실패하는 이미지가 마음속으로 끼어들어오기도 하는데요. 이런 경우는 동영상을 거꾸로 되돌려 보는 것처럼, 부정적 이미지 이전으로 돌아가서, 좋은 이미지를 다시 떠올린 뒤에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심상 훈련을 하면, 실제로 발표할 때와 똑같은 뇌 회로가 활성화되거든요. 그래서, 현실에서 발표를 하게 되면, 더 잘 수행하게 될 뿐만 아니라, 뇌가 발표에 익숙하게 변해 있으니까 긴장할 일도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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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불안 증상이 생기는 것은, 그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실수를 찾아내서 비난할 거야”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라 불안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 건데요. 이러한 왜곡된 생각을 찾아내어 교정하는 것도 치료에 효과적입니다. 사연의 주인공 박 부장님의 잠재의식에서도 발표는 곧 불안이다 라고 조건화, 즉 컨디셔닝 되어 있어 있는 건데요. 발표와 불안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발표만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불안 반응이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표 이후에 긍정적인 경험을 계속하게 되면 이런 발표와 불안 사이의 짝짓기가 해결됩니다. 이런 경험이 쌓여가게 되면, 새로운 조건화가 형성되는데요. 즉, 발표는 곧 칭찬이다,라고 새롭게 짝지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불안이 현저하게 줄어들고요. 마음속으로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실제 체험이 동반되지 않으면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발표가 불안하다고 해서, 그것을 자꾸 회피하면, 사회불안증상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과 함께 머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심, 공포, 걱정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두 품고 간다고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불안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불안을 느껴도, 그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계속 경험하다 보면, 탈감작이라고 하는 현상이 생기면서, 불안은 점점 가라앉게 됩니다. 불안했지만 그 상황을 잘 대처했다, 라는 자기 확신이 쌓여가면, 불안은 낮아지게 마련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불안을 극복하겠다, 이겨내겠다 라고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딱 적당합니다. “발표 전에 나는 조금 더 긴장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긴장하는 건, 더 잘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죠.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불안은 가라앉습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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