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하주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도박중독에 대한 치료는 굉장히 힘겹습니다. 저는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라고 합니다. 종교의 힘도 빌리고 약물치료도 하고, 상담이나 단도박 모임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동원해도 자칫하면 지기 쉬운 싸움이니까요. 

 

그런데 도박중독을 약물로 치료한다고 하면 흔히 도박을 생각나지 않게 하는 약, 즉 항갈망제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중독 분야를 따로 공부하지 않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조차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물론 아캄프로세이트나 날트렉손 같은 항갈망제는 도박중독의 약물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 뇌의 보상회로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보거나,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타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보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중독 환자들은 도박이나 인터넷 게임과 같은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담배, 술, 마약 등을 섭취해야만 그 보상회로가 활성화되거든요. 그래서 자꾸만 그때의 쾌감을 되찾기 위해 도박을 갈망하게 됩니다.

항갈망제는 그런 갈망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물론 도박 욕구는 방파제를 넘는 해일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항갈망제만큼 많이 쓰는 약물은 항우울제입니다. 가끔 항우울제를 처방하면 "도박은 신나게 해서 집 한 채 날려놓고 내가 우울하지 당신이 우울해?"라고 말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쁜 연인과 헤어졌고,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도, 초반의 설렘이나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눴던 기억 때문에 그 연인이 그립고 우울해질 수 있잖아요.

도박을 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이 주는 쾌락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면서 세상만사가 재미없고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불어난 빚, 등을 돌린 사람들, 잃어버린 기회 등 현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더 우울해질 수 있죠. 이 우울감을 잡지 못하면 '그냥 예전처럼 살면 안 될까'라는 생각으로 다시 도박에 빠진다거나, 때로는 극단적인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도박을 하지 않았을 때 괜히 불안, 초조해지는 경우에도 도움을 줍니다. 또, 만성적인 우울감을 이기려고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우울감을 치료하는 것은 도박중독을 막는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도박을 해서 우울한 경우와 우울해서 도박을 한 경우 모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물치료는 도박과 무슨 관계이길래 도박중독 치료에 도움을 줄까요?

먼저, 도박에 중독된 사람 중에는 어렸을 적부터 ADHD를 앓아왔던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지 않은 것이죠.

충동적인 행동,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ADHD의 증상 때문에 도박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일상적인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해도, 도박이나 게임을 할 때에는 보상회로의 비정상적인 활성화로 강제 집중이 되기 때문에 도박을 하는 경우가 많죠.

ADHD와 도박중독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ADHD에 대해서만 치료를 해줘도 도박중독이 재발되는 것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치료받지 않은 채로 어른이 된 성인ADHD에 대해서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려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박중독에는 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적절한 약물처방을 병행한다면 감정의 기복이나 불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도박을 다시 하는 경우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도박중독에 게임중독은 물론, 알코올이나 니코틴 중독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에 다른 물질중독에 대한 치료도 함께 해야 합니다. 가끔 치료하러 와서 도박 끊는 김에 담배랑 술도 끊으라고 종용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저는 세 가지를 동시에 끊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합니다. 당연히 셋 다 심각하더라도 가장 심각한 것부터 해야지 과도한 요구를 해서는 단도박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도박중독 자체를 치료하는 약물이 없다고 해도, 동반된 정신건강 문제를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약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과 약은 어디까지나 약이라서 뇌와 우리 몸에 작용하는 것이지 마음을 바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의지를 갖게 해 준다기보다는 내 의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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