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잔인한 공포 영화나 영상을 자주 즐겨 봅니다. 잔인한 것들을 실제로 추구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가끔씩 유튜브나 구글에서 잔인한 영상이나 사진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무서운 영화를 보기도 해요.

그런데 영화는 무서워서 혼자는 못 보고 누군가와 함께 봐요. 귀신이 나오거나 미스테리물, 스릴러 같은 거요. 네이버 웹툰에서 공포 웹툰을 주제로 한 번씩 연재해주면 꼭 보는 편인데, 옆에 사람이 있어야 안심하고 보는 수준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방금은 사고로 사람이 다친 사진을 봤고 영상을 찾아서 보기도 했거든요. 이런 것을 볼 때 눈살이 찌푸려지고 징그러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요. 봐서 좋은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보고 나면 꺼림칙하고 불쾌한데도 매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놀리는 것처럼 혹시 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그게 아니라면 왜 그런 걸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자신의 취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하셨던 것 같네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호나 행동이 정신질환의 범주에 들어오려면 충족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기호로 인해서 자신의 대인관계, 직장이나 학교와 같은 사회생활, 일상생활 등 중요 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고통과 손상을 받는지 여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잔인한 영상으로 인해 현재 자신의 삶의 영역이 실제 침해를 받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이지요. 

질문자님의 글에서는 나와있지 않지만, 만약 공포영화에서 본 잔인한 장면으로 자극받아 감정의 큰 변화가 지속되거나,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평소의 생활이 고통스럽다거나, 그 장면을 잊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거나(강박증의 경우가 되겠네요.) 그 장면과 비슷한 행동을 타인에게 취하고 싶은 충동, 돌발적인 행동들이 나타난다면 여기에 대한 좀 더 자세한 평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자주 보기만 할 뿐이며, 이마저도 금세 잊어버릴 수준이라면 질문자님의 행동은 기호이며, 취미일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기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보기만 해도 겁에 질릴 것 같은 독거미, 독사를 기르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취미, 취향의 하나일 따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더 편히 먹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잔인하고 무서운 공포영화가 무더운 여름마다 극장에 앞다투어 개봉하는 이유를 놓고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내세운 여러 이론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포와 쾌락의 생리적 유사성이지요. 우리는 극도의 쾌락을 느낄 때 몸에서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이 분비됨과 동시에 가슴이 뛰고, 몸 전체가 긴장되고 순간적으로 몸에 활기가 돕니다. 시험 합격 여부를 발표한 직후의 짜릿하면서 가슴이 철렁, 두근두근 하는 느낌은 바로 이러한 생리 작용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공포를 느낄 때도 몸은 똑같이 반응한다는 것이지요. 순간적인 공포는 우리 몸에서 쾌락과 동일한 생리적 활성화를 불러옵니다. 즉, 영화나 영상에서 접하는 ‘가짜 공포’는 쾌락과 서로 맞닿아 있는 셈이지요. 어쩌면 인간에게는 인위적인 공포 상황을 통해 순간적 쾌락을 맛보고자 하는 무의식적 동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추구입니다. 공포영화나 영상은 러닝타임이 다 되면 결국엔 끝나게 되지요. 공포 장면들이 끝나고 나면 긴장된 몸과 마음 또한 교감신경 항진 상태에서 부교감 신경 항진 상태로 서서히 바뀌게 되고, 점차 이완되며 안정을 찾아갑니다. 불편한 지점을 갓 벗어나 정화로 접어드는 상태, 야근으로 얼룩진 일상을 벗어나 주말로 넘어가는 불금의 순간, 내 몸에 쌓인 노폐물을 몸 밖으로 뿜어내는 순간, 바로 카타르시스의 순간입니다. 애초에 평온한 상태보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끝에 이내 찾아온 평온이 더 달콤한 법이지요. 이 또한 인간이 추구하는 아이러니한 내적 평안의 한 방향인 것 같습니다.  

어느 이론이든 공포가 꼭 위험하고 불편한 감정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지요. 다만 자신의 삶에서 ‘가짜 공포’가 취미의 영역 안에 잘 머물러 있는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정도가 지나치다면 전문가를 통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부디 고민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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