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눈빛만 봐도 알아요, 당신의 마음을

우리는 타인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얼굴에 드러난 표정, 눈빛 그리고 행동을 보고 상대방의 심중을 짐작하곤 한다.

상대가 나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고, 몸도 반쯤 다른 쪽으로 향해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도 어딘가 불편해지고, 상대가 나에게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분위기는 금세 싸해진다.

반대로, 나를 향해 싱긋 웃어 주고, 몸을 살짝 기울여 내 말에 경청해주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런 예측에 깔려있는 기본 가정이 있다. 바로, '내가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말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가능하다는 쪽은 만국 공통의 슬픔, 괴로움, 분노 등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내리 깔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이를 보고, 행복해 보인다고 여길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이를 앙 다물고 이쪽을 노려보는 이는 마치 분노의 화신 같아 보인다. 이러한 원초적인 감정의 표현은 나라와 문화를 초월하는 법. 

우리나라에서도 관상을 보는 문화가 있다. 눈썹, 눈, 코의 모양, 인중의 길이, 광대의 크기 등 얼굴 전체의 윤곽과 모양을 통해, 단순히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성격과 나중에 펼쳐질 삶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비과학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어느 정도는 인류 보편적으로 특정 이목구비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연구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무서워 보이고, 기피하는 얼굴 형이 공통적으로 존재함을 증명했는데, 겉으로 보이는 생김새로 한 인간을 재단하고,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만의 기호는 아닌 듯하다.

 

불가능하다는 쪽은, 나라마다 다른 제스처를 이야기한다. 가령, 검지와 중지로 브이(V)를 그리는 것은 승리의 의미로 알고 있지만, 그리스에서는 욕에 가까운 표현이라 한다. 엄지를 치켜드는 행위는 '따봉', 기분이 좋음을 나타낸다 생각하지만, 호주나 그리스, 러시아 등 일부 나라에서는 무례한 말 혹은 비하의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행동거지로는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상대의 모습에서 추출할 수 있는 의미들은 다분히 사회문화적인 영향 하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원초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상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나도 모르게 행하는 '독심술', 관계를 망친다

독심술(讀心術). 말 그래도 상대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라는 말이다.

심리학자 아론 벡은(Aaron T. Beck) 우울증을 만들어 내는 생각의 오류(인지오류, cognitive error) 10여 가지를 밝혀냈는데, 독심술은 우리가 흔히 범하는 생각의 오류 중 하나이다.

사실,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추측할' 뿐이지, 실제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시시때때로 행하는 독심술은 상대와의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독심술은 관계를 깨트린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상대의 의중을 지레짐작하여 대처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엇박자가 날 뿐이다. 또한, 상대가 나에게 부정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 느낀다면 분노가 일어난다. 사실에 기반을 둔 설전이 아님 감정적인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오해받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이 또한 감정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특히, 오래 보아온 가까운 관계, 이를테면 가족, 친지, 친한 친구, 오래된 연인에서는 독심술의 오류가 더욱 잘 나타난다. 내가 상대방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을 해로한 노부부도 상대의 의중을 다 알아챌 수는 없는 법이다. 

 

독심술, 실은 내 마음이 반영된 것?

독심술이 오류일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상대의 마음이라 짐작했던 내용들이, 실은 자신의 마음의 반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이를 투사(projection)이라 한다.

오늘따라 부장님이 인상을 쓰고 있을 때, 가장 켕기는 사람은 어제 거래처와 회의에서 큰 실수를 한 김대리일 것이다. 아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면 남편은 어제 회식에서 늦게 들어온 미안함에 눈치를 보게 된다. 

상대의 마음이라 생각한 것에, 실은 자신 마음속의 불안, 분노, 슬픔 등이 투영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이 은연중에 관계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이기에 더욱 충동적이고, 서툴 수밖에 없다. 

 

독심술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짐작하는 상대의 마음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 상대의 마음을 미리 짐작하고 예단할 때의 부작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보편적으로 상대의 모습에서 추리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이 있다 할 지라도, 이를 둘러싼 환경, 직전의 상황, 생각과 감정의 기반이 되는 '그 무엇'을 감히 타인이 추론할 수 있을까.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 오늘따라 배가 아파 미간을 찌푸리고 앉아서 일만 하고 있는데, 상사가 '어제 내가 혼낸 것 때문에 그러느냐. 사내가 겨우 그 정도밖에 안되느냐'는 식의 비난을 건넨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오해는 분노를 일으키기 쉽다. 내가 뜻한 바가 아닌데도 상대가 오해를 해 받아들이고, 심지어 이로 인해 나에게 비난이 가해진다면 최악의 상황에 가깝다. 그러니, 상대방의 마음의 윤곽이 보이더라도, 한 호흡 뒤에 조금은 늦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어렵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관계에서 오해가 잘 생기는 이라면, 내가 지레짐작하는 것에 나의 무의식이 묻어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자. 내가 기분이 상한 이유가, 자신의 욕심이 상대에게 투영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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