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은서님, 립 색상이 자연스럽네요.”

“아 이거요? 입생로랑 루쥬 뷔르 꾸뛰르 베르니 아 레브르 9호예요. 품절 대란이 났었던 립틴트.”

뭐라고요? 이름이 너무 길어요. 하긴 내 입술에 바르는 것이니 이름을 잘 기억해놓아야겠죠. 그런데, 어제 먹은 음식은 기억을 못 하시네요. 지난달 생리 날짜조차 생각나질 않는다고요? 내 입술에 바르는 특정 립스틱 이름과 번호는 꼼꼼하게 챙기지만 어째서 내 몸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생각 없이 입에 넣는 것일까요.

내 몸 안에 들어가 소화가 되고 결국 나의 일부로 변신하는 음식. 나를 제대로 먹이는 것이 최고의 비즈니스예요. What you eat is who you are.라는 구절처럼. 결국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거예요. 먹는 음식이나 식습관은 결국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게 되어요. 환자분들의 식사일기를 살펴보면 그 사람을 한눈에 알 수 있어요. 그러니 정신과 의사인 내가 비만클리닉을 잘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한 분 한 분 식사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이 보이거든요.
 

사진_픽셀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먹었는지 하루의 일과는 하루 세끼 먹는 것과 함께 해요. 식습관은 인생관인 셈이죠. 내 마음을 고쳐먹는 심리학적인 기술도 중요하지만, 쉽게 행복할 수 있도록 일상을 배치하는 습관이 바로 환경주의 기술인데요. 바로 제 아이디가 라이프스타일리스트(lifestylist)라는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라이프스타일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세팅해놓는 것.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가 주인인 동시에 책임자이니 삼시 세끼 나와 만나는 시간이 된다면 다이어트가 더 이상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재충전이 시간,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답니다. 식사일기는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한두 번 빼먹을 수도 있죠. 대강 일주일 내 식사패턴을 살펴보기만 하면 돼요. 음식을 먹을 때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더욱 좋아요.

요요현상을 경험하는 다이어터 중에는 이런 심리기전이 많이 있어요. 모 아니면 도. 영어 표현으로는 all or nothing. 무슨 뜻이냐면 다이어트 잘할 때에는 완벽한 식단을 구사하다가 한번 먹고 싶은 것을 입대면 그 후에는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망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다이어트는 뒤로 하는 심리죠. 완벽주의 성향이 있으면서 절식 다이어트에 익숙한 분들의 특징인데 일 년에도 10킬로 이상 고무줄 체중이 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충동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오늘도 망했다는 자기조절감(self-control)의 상실은 바로 자존감의 상처를 입게 된답니다. ‘아, 나는 다이어트 안 되나 보다. 이런 내가 뭔들 잘하겠나.’ 혹시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에 혼자 빠져있다면 정신 차려야 해요. 다이어트는 결국 위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죠? 바로 뇌! 심리를 잘 다스리면 반 이상 성공한 거랍니다.

 

나는 다이어트만 시작하면 더 먹고 싶어 질까. 미쳤나 봐.’

"배불러 죽겠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표현이에요. 배부르면 배부른 것이지 왜 죽겠냐는 거죠?

그만큼 배가 부른 기분, 위가 늘어나 확장된 기분은 불쾌한 감정에 속하고 걷기에도 숨이 차거나 위장이 늘어나서 숨쉬기가 불편해집니다. 이런 경험 누구나 다 해보셨죠? 이만큼 먹는다면 ‘식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루저’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도 기분이 다운 모드일 텐데요. 식욕과 식탐의 차이를 여기서 점검해봐야 합니다.

20여 년 동안 비만의를 하면서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봤는데요. 한 가지 공통점은 살을 빼기 위해서는 무조건 먹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먹고 싶은 음식을 꾹꾹 참으면 억압은 언젠가 폭발하는 법. 마치 눌렀던 스프링이 팡 튀어 오르듯이요.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는 이유는 음식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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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은 왜 생기는 걸까요? 식욕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돼요. 그러나, 식탐과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기분 좋게 먹는 욕구는 좋은 것이지만, 식탐은 특정 음식을 꼭 먹어야 하고 갑자기 먹고 싶어 지면서 잘 해소되지 않아요. 대뇌에서 쾌락회로를 따르게 되는 행위중독과 동일한 경로를 거치기 때문인데요. 게임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섹스 중독, 마약과 같은 중독의 회로를 거치게 되면 즉각적인 만족을 찾게 되고 자제심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요.

이쯤 되면 먹는 것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무조건 탓해서는 안 되겠죠. 다이어트는 늘 본능의 뇌 (변연계)와 이성의 뇌(전전두엽)의 싸움이 계속된답니다. 다이어트하니까 먹지 말라는 이성의 뇌와 그래도 나는 저것을 먹고야 말겠다는 본능의 뇌는 오늘도 싸우고 있는 거죠.

요즘 저는 식탐을 식욕과 구분해서 ‘가짜식욕’이라 부르는데요. 감정적 식사와 이어지게 되고 폭식을 유발하기 때문에 가짜식욕을 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의 요인들을 깨달아가면서 식탐 뒤에 있는 숨은 감정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해요. 감정적 먹기(emotional eating)는 심리적 허기, 즉 마음을 배고프게 하는 감정적 요인이 반드시 있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음식으로 도망가기도 하고요. 우울이나 무기력이 있을 때에는 뭔가 짜고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불공평한 일을 겪거나 화가 치솟으면 달달한 것으로 나를 달래주죠. 외롭고 허전한 날이면 추억의 음식들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당장 먹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초조해지기도 해요.

다른 음식으로는 절대로 대체될 수 없는 그 기분. 꼭 그것을 먹어야만 풀리는 감정의 트랩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참 듣기에 어려운 것 같지만, 식사일기를 매일 적다 보면 가능해요! 내가 많이 먹었던 날 식탐 뒤에 숨어 있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정신의학신문 정신건강연구소 강남센터 개소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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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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