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남녀 간의 연정은 단골 가십 소재다. 특히 호감 가는 이가 내게도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곤 한다.

그중 한 가지는 꽤 근거가 있는 듯하다. 상대가 나의 행동을 따라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를 테면 내가 커피를 마시면 상대도 커피를 한 모금 한다든지, 고개를 돌리면 함께 고개를 돌려 같은 곳을 바라본다든지 하는 것이다.

 

90년대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에서는 운동과 관련된 뇌의 영역을 연구 중이었다. 원숭이 대뇌에 전극을 심고 땅콩을 집어 먹는 동안의 뇌의 활성을 관찰하던 도중, 재밌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원 중 한 명이 장난으로 땅콩 하나를 뺏어먹었는데, 이를 목격한 원숭이의 대뇌가 땅콩을 직접 먹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에 연구 책임자였던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교수는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먹는 모습을 보는 원숭이 뇌의 활성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원숭이가 스스로 땅콩을 먹을 때의 뇌의 활성 영역과 비교하였더니, 흥미롭게도 두 경우에서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발견되었다. 거울처럼 나의 내면에 상대의 모습을 비춘다는 의미에서, 그는 이를 거울 신경(mirror neuron)이라 이름 붙였다.

거울 신경은 공감의 토대로 주목받았다. 어떤 행동을 직접 하고 있지 않아도, 타인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된다. 비약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지만, 그렇다면 이는 행동을 모방하고, 나아가 그에 연관된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거울 신경은 주로 뇌섬엽(insula), 전방 대상회(anterior cingulate) 영역에서 관찰된다. 친사회적 작용과 관련한 해당 부위의 생물학적 활성이, 행동 이면의 다른 사람의 의도, 감정을 이해하는 척도인 사회적 의식 (social awarenss) 수치와 비례한다는 것이 다수의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사진_픽사베이


내면의 욕구나 의도, 달리 말하면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느낀다. 나 자신이 그러하며, 다른 이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조차도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마음의 의도를 찾는다. 마음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다. 마음 이론은 거울 신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순 없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타인의 파편들, 즉 외모, 단편적인 이야기, 몇몇 행동 따위를 겨우 본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참 깊다. 스스로 내 마음을 헤아리기도 힘들다. 하물며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때로 막막하게 느껴질 정도로 요원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장님이다. 코끼리 만지듯 서로의 마음을 더듬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거울 신경은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조그만 빛을 비춘다. 주전자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목마른 내게 시원한 물을 따라주는 그의 호의는 짐작할 수 있다. 그 손길을 바라보며 거울 신경 영역이 활성화되고, 내가 누군가에게 물을 따라줄 때의 마음을 미루어 그에게 '공감'한다.

 

관계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고독은 홀로 초연하기 힘든 인간을 은유한다. 상처 받아 사람을 등지다가도,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누군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따뜻한 관계를 그리워한다. 인간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거울 신경과 마음 이론을 접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언어가 존재하지조차 않는 시점에서부터 누군가는 다른 이의 마음에 닿으려 노력하였을 것이다. 머나먼 세대를 거쳐 한 걸음씩 다가갔던 흔적이 뇌 한 켠의 신경세포로 남아, 그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길을 인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일말의 연관도 없는 이들에게 공감한다. 길 잃은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노인의 짐을 함께 든다. 소중한 이의 기쁨과 슬픔에는 더욱 깊이 공명한다. 오래된 드라마 '다모'의 명대사(찾아보니 벌써 15년 전 드라마가 되었다... 세월의 무상함...)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허세가 아니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대처럼 말하며 그대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대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대같이 생각한다.

혹여 누군가와 마음이 어긋나 원망스럽더라도 지나치게 슬퍼하진 말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내 것 같이 헤아리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다. 오해하고 서운해하면서도 우리는, (거울 신경의 도움으로) 서로의 미소로 웃고 서로의 걸음걸이로 걸으며 끊임없이 닮아가고, 닿아갈 것이다.

 

* 금슬 좋은 부부의 사진을 보다 보면 참 닮았다. 타고난 이목구비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커플들도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보면, 표정이나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골격, 근육과 피부의 크기, 배치 등의 차이로 외형은 제각각 모두 다르지만, 결손 등으로 인한 차이가 아니라면 인간의 뼈와 근육은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를 공유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모습을 바라볼 때 거울 신경이 작동하고, 해당 표정을 만드는 자신의 근육이 유사한 표정을 지으며 비슷한 주름을 형성해간다. 인상이 바뀔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같이 웃으며,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보듬곤 했을 것이다.

다른 눈, 코, 입으로, 그리고 같은 주름과 표정으로 미소 짓는 노부부의 모습은 그래서 닮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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