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x 힙합 저널리스트 연재

몇 년 전 나는 청소년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나를 찾아가는 힙합수업>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이었다. 굳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을 낸 이유는 명확하다. 힙합에 대해 고민하고 알아갈수록 힙합이야말로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래퍼 더콰이엇(The Quiett)이 이 책에 추천사를 써주었다. 그의 추천사 중 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힙합은 정말로 거대하고 긍정적인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힙합은 반드시 무언가를 크게 (크기보다는 ‘많이’라는 뜻) 바꿔놓습니다. 그 힘의 영향을 저나 도끼처럼 100%로 받게 될 수도, 50% 정도 받게 될 수도, 2% 정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힘을 무시해도 좋습니다. 그냥 그러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힙합으로 인해서 변하긴 엄청 변했는데 그게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면 그건 힙합을 잘못 받아들였거나 중요한 걸 놓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은 안다. 추상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힙합을 오랫동안 진심으로 즐겨온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에게 더콰이엇의 이 말은 아마 굳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삶을 바꿔놓는 힙합의 긍정적인 힘 말이다.

 

<Juicy>는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의 대표곡이다. 그는 이 노래에서 자신이 랩 음악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후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이제 비디오 게임기도 살 수 있게 됐고 여자들의 인기도 얻게 됐다. 또 생일은 이제 더 이상 최악의 날이 아니다. 이제 그는 목이 마를 때면 언제든 샴페인 병을 딸 수 있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Uh, damn right I like the life I live
그래, 맞아. 난 지금 내 삶이 좋다고.

'Cause I went from negative to positive
내 삶은 계속 나아져 왔거든.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 부분을 듣고 나는 잠깐 머리가 멍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네거티브 투 포지티브(negative to positive).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것이 힙합의 핵심코드라는 사실을. 그리고 힙합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내가 삶의 동력을 얻는 이유 역시. 지금이야 ‘성공한’ 래퍼들이 너무도 많아졌지만 예로부터 힙합은 가난하고 험난한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는 음악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힙합은 가난하고 험난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관해 이야기해온 음악이다.
 

사진_픽셀


힙합은 관성적인 비관과는 거리가 멀다. ‘난 안 돼’, ‘난 할 수 없을 거야’ 같은 말은 힙합 사전에 등록돼 있지 않다. 대신에 힙합은 할 수 있다거나 해보겠다고 말한다. 한 술 더 떠 누가 봐도 보잘것없는데 ‘나는 대단하다’고 외치는 것이 힙합이다. 이러한 태도를 허세라고 인식하거나 겸손하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힙합과 상관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를 더 나아지기 위한 긍정적인 자기 암시와 동기부여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힙합이다.

이쯤에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를 거론해야 한다. 힙합은 무하마드 알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알리가 전성기일 때 힙합은 태어나지 않았지만 알리는 흔히 힙합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가 랩이나 힙합 패션을 발명했다는 말은 아니다. 태도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애송이 시절에도 어떤 거물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용기, 지금은 이룬 것 하나 없지만 앞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되겠다는 포부와 호언장담, 호전적이고 자존감 충만한 그의 태도가 힙합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정설이다. 힙합을 만든 흑인 래퍼들은 어릴 적에 ‘흑인 영웅’ 알리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힙합은 삶을 그대로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늘 삶보다 큰 것을 말해온 음악이기도 하다. 자기의 현실보다 더 큰 자아를 갖춘 후 현실을 그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증명해내는 것이 힙합의 중요한 멋이다. ‘네거티브’ 현실에 굴하지 않고 포지티브 마인드로 삶에 임해 결국 현실을 ‘포지티브’로 바꿔내는 것 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가 힙합의 이런 서사에 매료되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나는 내 유튜브 채널에서 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구독자들에게 내가 요청한 것은 단순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에 대해 말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다음 댓글을 당첨자로 뽑았다.

 

저는 힙합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힙합 안에는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가장 큰 본질은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 더 잘 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어떤 형태로든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가사뿐 아니라 비트를 비롯한 힙합 음악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자신감을 갖기 위해 자기 암시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 힙합 음악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저는 학교 시험을 치를 때 긴장을 풀려고 등굣길에 더콰이엇의 <2 Chainz & Rollies>를 듣곤 했어요. 이 노래만 들으면 내가 최고인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자신감을 주는 그 무형의 에너지에 끌렸던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지치고 힘들 때도 힙합 음악이 저를 위로해주었어요. 힙합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희망’ 그 자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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