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대학생인 지금까지 조금 심한 발표불안증(?) 같은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하고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몇 번 망설이다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발표를 할 상황이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 몸이 떨릴 정도로 불안해합니다.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정도가 약하지만 낯설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 수가 적더라도 극도로, 정말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불안의 정도는 항상 같지만 어떨 때는 제가 성공적으로 숨긴다는 것이고 어떨 때는 거의 놀림당할 수준으로 벌벌 떤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입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선서를 했을 때는 불안한데도 “그 선서 멋있게 한 아이 누구냐”라는 이야기를 들릴 정도로 잘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으로 끝낸 반면 어떤 프레젠테이션에서는 또 손과 목소리가 너무너무 떨렸습니다. 어떤 면접에서는 웃으면서 잘만 대답하고 다른 면접에서는 거의 울다시피 대답했습니다.

이런 일이 너무나 많은데 항상 그 결과를 모른다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원래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면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제가 평소에는 사람하고 잘 어울리는 편이니까 주변 사람들도 의아해합니다.

 

돌이켜보니 초등학교 때 웅변대회 등을 반복적으로 나갔는데 그때마다 저는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빈 손으로 돌아왔고, 동상을 탔다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선생님께서 위로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 데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반장인데 포스가 없다느니, 마이크가 필요하다느니, 심지어 가족마저도 노래 부르는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냐면서 자기가 다 창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창 사춘기였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교 회장 선거를 나갔는데 목소리가 울듯이 떨려서 두 세표 밖에 못 받았고 그 득표수를 다른 참가자 앞에서 놀리듯이 이야기하던 교감선생님의 모습에 제가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보기에도 너무너무 창피한 일이잖아요. 전교생과 온 선생님이 다 모인 곳에서 거의 울면서 발표를 하고 득표수가 두 세표…. 목소리는 작더라도 나름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던 아이로 주목받던 제 자존심에 지울 수 없는 스크래치가 났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말을 못 했습니다. 그냥 떨어졌다고만 했습니다. 너무 창피했으니까요. 제 인생 제일 창피한 기억이고 살면서 저만한 창피를 당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발표하면서 떠는 사람, 못 봤습니다. 떨린다고 하고 실제로 그렇겠지만 다들 잘만 하던데요…. 제가 정말 심각하게 떨린다고 하면 '누구나 다 그래~' 하면서 다들 넘어가버리니까 말도 못 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떨리는 거 알죠. 그런데 저는 심하게 티가 나니까요.

그 원인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발표할 때마다 제가 망할 거라는 확신이 있고 곧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불안이 커집니다. 왜 저만 이러는 건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 문제가 너무 부끄러워서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이건 간사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이 제 사연을 보면서, 아, 내가 저 사람보다는 훨씬 낫구나 하면서 힘을 얻을 생각을 하면 그것도 좀 서글픕니다.

면접이나 발표를 회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방학 때 보컬 학원 같은 것이라도 다녀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 앞에서 혼자서 노래해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극복해볼까 하는데 과연 이것이 좋은 생각일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무 힘이 듭니다.
저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요…. 다들 멀쩡한데 왜 저만 이 모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일준입니다. 발표 불안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군요. 대학생이시면 발표도 많고, 취직을 하시려면 면접도 하셔야 할 텐데 걱정이 많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스스로 조절되지 않는 감정, 특히 불안 같은 감정은 자신을 너무 힘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쓴이 분께서 남겨주신 글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남겨주신 내용을 보면 발표 불안으로 긴장된 경험도 많지만, 반대로 성공 경험도 많으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성공 경험이 글쓴이 분의 자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발표하면서 떨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속으로는 모두 긴장을 합니다. 예전에 TV에서 몇십 년간 무대에 섰던 가수가 자신은 아직도 무대에 서면 떨린다고 인터뷰를 한 장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글쓴이 분도 긴장이 되는 건 매 한 가지이지만 어떨 때는 표시가 나지 않고, 어떨 때는 표시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난 왜 이렇게 긴장을 하지? 긴장을 해서는 안 돼.’라고 생각을 하면 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백곰 효과라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백곰을 생각하지 마.’라고 주문을 하면 오히려 백곰이 더 생각이 나는 걸 백곰 효과라고 합니다. 백곰을 긴장으로 바꾸시면 똑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은 발표 불안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백곰’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백곰’이 아닌 다른 무언가, 예컨대 ‘고양이’ 같은 걸 생각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백곰’과 관련이 없는 다른 곳에 집중을 하면 더 이상 ‘백곰’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글쓴이 분도 발표가 있을 때 이 방법을 활용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건 제가 쓰는 방법인데요. 발표할 때 키워드 세 개를 뽑습니다. 그리고 그 세 단어에만 집중을 하고 발표장에 섭니다. 그 세 가지 키워드에만 집중해서 발표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백곰(긴장)이 사라져 있습니다. ‘긴장’과 관련된 생각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긴장하지 않아야 해. 긴장하면 큰일이 나.’라는 생각들은 발표 불안에 있어 가장 큰 악화 요인입니다. 그런 노력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긴장’과는 관련이 없는 다른 곳에 집중을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서두에도 이야기하였지만, 글쓴이 분은 큰 자산을 지니고 계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성공 경험이 많다는 것이요. 사람들은 보통 잘했던 기억보다는 잘못했던 기억에 더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자신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요. 적어도 발표 불안에 있어서는 실패 경험에 집중하는 것은 불안을 가중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이 성공했던 경험에 집중하고 성공경험을 늘려가는 것에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발표 불안이 조절이 되지 않는 감정이 아니라, 조절이 가능한 감정으로 변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성공 경험을 늘려가는 것이 혼자서는 힘들다고 판단이 되신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내원하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발표 불안에 쓸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실제로 무대에 서는 일이 많으신 분들은 이 약을 복용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약의 도움을 받으셔서 성공 경험을 늘려가신다면 이 또한 본인의 자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발표 불안에 주로 쓰는 약(propranolol)은 중독 성향도 없는 약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같이 benzodiazepine 계열의 약(중독 성향이 있음)도 쓰기는 하는데, 글쓴이 분의 경우 고용량이 필요하지도 않을 거 같고, 상황에 따라 propranolol만 처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약에 대한 거부감 없이 도움을 받으셔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방학 때 보컬 학원을 다니면서 극복해볼까 라고도 문의를 주셨는데요. 저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잘하는 걸 통해서 성공 경험을 늘려간다면 그것은 본인의 자산이 될 테니까요. 글쓴이 분이 성공 경험이 있다는 것은 그 말 그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노력해보시고, 만약 그게 힘들더라도 근처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서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는 사안이오니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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