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니버의 기도’로 알려진 이 문장은 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 중 일부다. 정말 이런 차분함과 용기,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대부분은 바꾸지 못하는 일에 매달려 흥분하고 좌절하며, 바꿀 수 있는 일은 회피하며 포기한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성인 7명 가운데 1명, 특히 여성 4명 가운데 1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불행하게도 자살률은 10년 넘게 OECD 회원국 중 1위로,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43.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으며, 도대체 제정신일까 싶은 뉴스들이 넘쳐난다.

아니 남들은 그렇다 쳐도 나, 나는 요즘 예전 같지 않고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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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다르게 몸이 아플 때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신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산되면서 과거보다 증상 초기에 정신과를 내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생고민과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내적 갈등과 공허감 등 보다 깊은 차원에서의 심리상담을 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에 가느니 차라리 점집이나 술집 등에서 속내를 털어놓으며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졌을 때 정형외과를 찾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아 뇌가 탈진되었다면 신경전달 물질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폭식증 환자 경우, 내가 스스로 먹는 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렇다면서 2-3년을 혼자 폭식하고 구토하면서 합병증이 생겨서야 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있다. 다이어트 부작용이나 폭식으로 인해 뇌가 특정 음식에 중독되기 시작하면 스스로 의지로 조절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체중강박, 다이어트 중독뿐 아니라, 학교를 휴학하거나 가족이나 직장에서 잦은 트러블이 생가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우울증 역시 ‘우울증은 정신질환이 아니라, 전신질환’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정신을 바로 차리면 되고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전신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때 전신질환인 셈이다.

가족들은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은둔생활을 그냥 두거나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정신과를 찾는데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았더라도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가벼운 우울감이라도 하더라도 무기력, 불면, 집중력저하, 만성피로감 등 생활 리듬의 변화가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식사, 수면, 대인관계까지 영향이 온다면 마음에서 오는 SOS신호에 귀를 기울이라는 신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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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를 찾게 되면 어떻게 치료가 시작되는 것일까?

면담이 시작되면 현재 고통받는 증상부터 시작해 가족, 대인관계, 직장, 학교 등 적응 정도를 살펴보게 된다. 최근 겪고 있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술이나 약물사용, 기타 내과적인 병력 등도 중요하다. 대개 면담과 간단한 문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전문가와 심리검사를 시행한다.

결국 생활리듬의 변화와 심리변화는 대뇌 신경전달 물질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등 약물이 처방되기도 하고 심리치료가 꼭 필요한 분들은 별도로 50분씩 심리치료를 받기도 한다.

약물을 처방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본인 허락 없이는 열람이 절대 불가능하며, 의사는 환자의 병력에 관한 비밀을 보장한다.

취업이나 결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못된 생각이다. 개인정보보호법뿐 아니라, 의료법과 정신보건법 등에도 의무 기록 보존과 열람에 대한 자세한 근거와 강력한 처벌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내과적 질병과 마찬가지로 실비보험에 가입할 때 치료 경력이 있으면 보험회사에 따라 가입제한이 생길 수 있다. 단지, 상담만 필요하다면 정신과 코드가 전혀 남지 않도록 소위 ‘Z코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은 당연하게 여기며 평생 복용하면서 정신과 약은 한번 먹으면 끊지 못한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 흔히 처방되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중독성이 없으니 처방에 따라 복용하면 오히려 우울이나 불안에 의한 어려움을 적절한 시기에 막을 수 있다.

 

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그것이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스트레스나 아픔을 제삼자인 전문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환기 효과가 있으며, 심리치료 역시 수십 년 이상의 역사를 거치며 검증된 과학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니버의 기도’처럼 내가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은 이미 내게 주어진 여러 자기 조건과 달리 ‘바꿀 수 있는 일’에 속한 것이며,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그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 ‘낫고자 하는 의지’일 뿐이다.

결코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다. 나약한 모습의 나에게 또 한 번 비난의 화살을 쏘지 말자. 타인에게 받은 첫 번째 화살로도 이미 충분하다.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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