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주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육아는 답도 없고, 각자 사정에 맞춰나가는 문제일 텐데요. 남편과 저는 아이에 대해 고민과 걱정이 많은 성격인데 제 선택이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염려스러워서요. 

보통 아이가 만 36개월이 될 때까지는 가정보육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데요. 그런데 아이에게 하루 1번 이상 화를 내고 어린이집처럼 다양하고 신나게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여도 집에서만 키우는 게 아이의 심리 정신건강 면에서 더 좋은 건지 궁금합니다.

 

제가 참으면서 집에 더 데리고 있어야지 하는 마음과 부모가 육아로 체력적 정신적, 시간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몇 시간이라도 기관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 중에 갈등하고 있습니다. 

집안일 때문에 열심히 놀아주지는 못해도 찡찡대고 떼쓰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반응을 잘해주고, 의식주에 있어서 정성껏 돌봐줘서인지 현재 아이는 보통 또래의 19개월 아이와 같고, 아이의 속마음은 알 수 없으나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21개월쯤 어린이집에 4시간 정도 보내면 부모와의 애착, 관계, 아이의 정신건강,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줄까, 나쁠지 더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됩니다.

사회생활 일찍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한데... 아이의 성향과 적응 정도에 따라 다른 걸까요? 

아이는 집안에 거의 있어서인지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고 길가다가 마주치는 아이 등 모든 것들에 관심을 보입니다.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어서 평일에 아이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입니다. 놀이터, 카페, 산책, 문화센터 수업 등이요.

돌 전후에는 분리불안도 있었고, 낯을 많이 가리고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성격의 아이라 그런지 몇몇 베이비시터와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사진_픽셀


제 상황에 대해 좀 더 말하겠습니다.

몸이 약한 저는 아이 돌보는 게 항상 힘들었고, 근육통이나 수면부족을 참고 키우는 상황입니다. 시댁 친정과 멀리 살고 있어서 자주 도움을 받지는 못하고요.

아빠 또한 퇴근 후 힘들어합니다. 둘 다 지치다 보니 아이 보다가 부부싸움한 적도 많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같이 웃고 놀기도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아이 돌보는 일상이 지치고, 저녁쯤 되면 녹초가 됩니다.

 

몸이 힘들어서인지 요즘은 계속 어지르는 것에 대해 짜증 낸 적도 있고 한창 떼쓰는 나이란 것을 알면서도 찡찡거리고 울고 떼쓰는 아이에게 같이 화를 내고 운 적도 많네요.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는 듯한데도 수차례 금지했던 것(더럽고 위험한 행동)을 또 할 때면 화가 치솟아 퍼부은 적도 꽤 됩니다.

아직 아기라 행동에 조절이 안 되는 건가요? 아님 엄마 말을 다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몇 세부터 어느 정도선까지 부모가 관여하지 않고 놔두는 게 맞을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말을 안 듣고 도망 다니고 이유 없이 엄마에게 짜증을 쏟아낼 때면 몇 번은 참습니다. 눈치 보며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사나,라는 생각이 들고 소리를 지르고, 분노조절이 안되면 장난감도 바닥에 던져요.

또 애기한테 그랬네 금방 자책하면서도 울고 그래요. 아이는 저를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며 같이 웁니다. 한바탕 울고 나서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쉽게 울음이 터지는 것 보면 제가 많이 쌓였고 힘든 상태인 것 같긴 해요.

그렇다고 하루 종일 짜증에 이유 없이 화내는 건 아니에요. 아이를 방치해 놓지도 않고요.

쉽게 화내면 안 된다는 것 또한 알고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다혈질인 성격이 쉽게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인데도 잘 안되네요.

 

제가 아이에 대해 지나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고민이 나중엔 별것 아닐 수도 있고, 기본적인 케어만 해줘도 아이는 커갈 텐데 말이죠.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지나친 게 나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심하게 싸웠는데 저는 불안했고, 무서워서 심장을 졸였던 적이 많습니다. 같이 여행은 다녔지만 삼남매에 다정한 모습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아빠는 버럭 화를 잘 내고 무능하고 열등감이 많았고 엄마는 자식에게 잔소리가 심하고, 제멋대로에 자기 기분 따라 짜증을 내고 너희 때문에 참고 사는데 왜 그러냐를 입에 달고 계집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둥 신경질을 길게 퍼붓는 분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이런 부모님과 잘 지낸 편이에요. 종종 두렵거나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한 적도 있지만요.

머리가 크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뒤에는 제가 받은 상처가 크다는 것을 알았고, 커서 부모님이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로 내 정신을 갉아먹으려고 할 때는 제가 고함을 지르고 울면서 싸웠던 적도 종종 있습니다.

제가 그래봤자, 병에 걸린 다음에도 부모님은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어요. 제가 그런 부모 밑에 자라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한건 아니지만 원래 기질 탓인지, 아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안타깝게도 부모님 성격과 비슷한 면이 많아요.

그런 모습과 말들이 너무나 싫었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부모를 닮게 되었네요.

 

또 그래버렸네 깨닫곤 하지만 나 역시 성격이 쉽게 고쳐지지도 않아요. 내 아이도 나를 닮겠구나 생각하면서 부정적인 모습은 최대한 억누르고, 사랑표현과 스킨십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2-3번 참다가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떼를 쓰며 심하게 울 때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요. 

키워줬으니 이렇게 커야 한다, 부모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고 바라는 것은 없어요. 내가 낳았으니 그 책임으로 부모 의무를 최선으로 다하는 것뿐인데요. 완벽한 부모는 되기 힘들지만 좋은 부모는 되고 싶은 마음은 있는 것 같아요.

좀 커서 친구처럼 편한 관계가 되었으면 해서 지금 어떻게 해주는지에 따라 달라지는지 알고 싶어서 상담을 드립니다.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이주영입니다.

36개월까지는 엄마가 돌봐주는 것이 좋다고들 하는데, 엄마인 나는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오히려 자녀에게 화를 내게 되니, 주양육자인 엄마의 휴식 시간을 확보하고 자녀에게는 조금씩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은 어떤지 궁금해하시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한지 걱정스럽게 질문을 하셨네요.

 

질문해 주신 분은 어려서 화가 많으신 부모님과 지내며 공포에 떨어 힘들었었고, 그러한 경험을 내 자녀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주며 최선을 다해 자녀를 돌보려고 하시는 마음이 많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한 정성과 사랑 덕분에 자녀도 잘 자라고 있는 것 같고요.

 

사람이 생애 초기 경험이 이후의 정신적 발달과 정서적 안정,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부모가 편안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모습이 계속 비치고, 편안함이 자녀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요.

부모가 자녀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양육자인 어머니가 안정적이고 편안하시다면 자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편안함과 안정감, 즐거움이 자녀에게 전달되고 관계 속에서 경험이 되려면, 중요한 양육자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편안하고 안정되고 즐거워야 하겠죠.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재 질문을 하신 어머니께서는 현재 뭔가 불만이 해결되지 않고, 자녀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가 현재 정상발달을 하고 있고, 이전에 정서적으로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어린이집에 4시간 정도 보내는 것은 크게 무리가 안 될 확률이 큽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자녀는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 같은 시간들을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에 어린이집에서 또 새로운 즐거운 경험들도 하겠지요.

따라서, 다른 이유가 없다면, 질문 주신 어머니께서 자녀를 지금 어린이집에 보내신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확률은 낮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자녀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그 시간이 현재 어머니에게 필요한 충분히 휴식이 될 수 있도록 하시고, 자녀가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나머지 시간 동안 보낼 때 과도한 불안이나 화에 노출되지 않도록 애쓰시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셨을 때에도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고, 과도하게 화를 내시게 된다면,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쉬는 시간이 확보되는 것 이상의 다른 방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어머니께서 전문가를 찾아가셔서 도움을 받으시는 것을 생각해 보실 수 있겠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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