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분노는 정신의학적으로 내가 처해진 상황이 ‘불공평’하다는 인지를 하면서 발생되는 감정의 표현입니다.

밖으로 분노의 에너지가 향하게 되면 분노조절이 어려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는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반면, 분노가 내 안으로 향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공격하고 무기력하게 만들면서 우울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분노와 우울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공평한 나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므로 상처 난 내 마음을 돌아보라는 시그널(신호)인 것입니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게 되면 사소한 일로 욱하게 되고 오히려 스스로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사소한 일에 상처를 잘 받는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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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같은 마음, 같은 입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는 상대방에게 늘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은 내게 잘해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상대가 같은 입장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장과 종업원, 상사와 부하 직원, 엄마와 자식,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같은 입장일 수 없습니다. 나와는 다른 입장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기대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를 보고 주변에서 상처 안 받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유난히 직원들에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직원들이 직장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돌보아 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보살펴주니 관계가 개선되었습니다. 직원들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내가 돌봐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니 상처를 덜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라.

대가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늘 김치를 해드리는 환자 분이 있었는데 한 번은 김치를 담가 갔더니 게장을 담가오라고 하셨답니다. 허리를 다쳐서 게장을 담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중에 허리 나빠진 탓을 하지 말고, 게장은 그냥 사가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게장 사갔을까요? 시어머니가 자기가 담근 게장과 사간 게장의 맛을 아신다고 계속 고민했습니다. 상담 끝에 “어머니 제가 명품 게장 사왔어요. 이번에만 드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욕구를 솔직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병이 난 후에 남의 탓하지 말고 자신을 챙기십시오. 누구든지 각자의 짐은 각자가 져야 합니다. 자기가 되도록 할 수 있을 만큼 잘해드리는 것이 각자 자기 짐을 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기대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

큰 잘못이나 비난을 마주했을 때 상처 받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나를 챙겨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사소한 말을 통해 상처 받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난 워킹 맘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직원을 열심히 가르치고 챙겨주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다녀오느라 늦게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하 직원이 자기를 보고는 “애기는 괜찮아요?”라고 묻지도 않고 쌩 하니 가버리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 직원을 볼 때마다 화가 나서 회사에 다닐 수가 없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 직원은 결혼했나요?” 제가 이야기를 한참 듣고 물었습니다. 그 부하 직원은 결혼을 하지 않아 엄마가 애를 들쳐 업고 병원에 가는 것조차 상상 못 했을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온 지 몇 달이 안 되어 일도 파악이 잘 안 되고, 상사가 왔을 때 그런 말을 해야 되는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제 말을 다 듣고 나니 그녀는 부하 직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화는 누그러졌고 부하직원을 다시 볼 자신이 생겼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은 항상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의 원칙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서 상대방은 나와 다르고 그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자주 욱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점을 기억하고 자신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상처를 덜 받아야 합니다.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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