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속 상처 받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그 사람이 처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을 하는 편인데, 제 상황을 알고도 해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사람들 앞에서 저를 무안을 줍니다.

저도 이런 인간 하나쯤 끊어내면 그만이라는 거 아는데도 저한테 연락 오고 잘해주면 매몰차게 잘라낼 수가 없네요.

 

저는 친구가 필요했는데 사람들은 절 호구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점이 좀 슬프네요. 늘 인간관계가 이런 식으로 상처 받고 끝나야 하는 게요.

제 감정을 얘기하는 것도 불편하고 그 사람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기엔 제가 계속 상처를 받아야 하니까요.

 

왜 사람들은 잘해주고 맞춰주면 줄수록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걸까요?

저도 그런 사람이 편하고 좋겠지만... 이젠 더 이상 맞추면서 살고 싶지 않네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질문자님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짧은 글에서도 실망하신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왜 사람은 잘해주고 맞춰줄수록 만만하게 보는 걸까요?'라는 것이 질문자님이 가진 핵심 생각일 것입니다.

상황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위의 문장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맞춰줄수록 만만하게 본다.'

사람들 대신 '일부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왜'와 물음표를 삭제한 것은 저 문장에 의문을 가지며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줄수록 만만하게 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다른 어떤 사람들은 받으면 더 주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차분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생각을 연장시켜봅니다.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 앤 테이크'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버, 매쳐, 테이커라는 세 가지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기버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매쳐는 받은 만큼 주는 사람이며, 테이커는 끊임없이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은 사람은 기버입니다. 자신이 일에 집중할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데 낭비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람 또한 기버입니다. 남들을 위할수록 주변의 평판이 좋아지고, 매쳐나 다른 기버들에 의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질문자님이 표현한 '호구'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명한 기버쯤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님은 아마 기버에 속할 것입니다.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매쳐나 테이커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현명한 기버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실제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도 현명한 기버이니까요.

호구와 현명한 기버는 3가지 너그럽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소심함, 이용당할 가능성, 감정이입이라는 세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현명한 기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팁이 있습니다. 먼저 대리인 되기를 통해 소심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기버는 힘들어도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고, 자신이 부탁하는 것에 있어서도 주저함이 있습니다.

이때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의 대리인으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내 가족이 이런 부탁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라고 조언할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자신이 과도하게 이용당할 가능성을 제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한계를 명확히 세워놓는 것이지요.

100을 요청했을 때 70만 들어준다든지, 도움을 주는 시간의 정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도움을 주는 정도뿐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 역시 한계를 두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타입의 사람 중 기버와 매쳐에게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되 테이커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감정이입은 훌륭한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독이되기도 합니다. 질문자님처럼 기버인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기분에 공감하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 생각, 가능한 선택지 같은 것에 공감할 때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상대방에게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습, 즉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교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당장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 팁을 기억하며 조금씩 변화하려고 노력할 때 좀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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