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람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에 지금 무엇이 심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운다. 사과나무를 심었으니 다음에 포도나무를 심어야지. 그리고 그다음엔 멋진 소나무를 꼭 심고 말 거야.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마음만 있다면, 풀 한 포기만으로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이철환, 연탄길 1 中, 생명의말씀사, 2016)

 

하루를 채우는 건 사소한 것들이다. 점심으로 먹은 것, 일과 사랑으로 만난 사람들, 그들과 시간을 보낸 곳...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한 조그만 선택들. 그 결과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모여 삶이 된다. 무수한 갈림길에서의 소소한 고민들이 모여 삶의 길을 이룬다.

그렇다면 선택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능성의 포기가 아닐까 한다. 문학 시간에 배울 때만 해도 그저 그랬다가 살면서 절절히 와 닿는 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기억나시는지. 살다 보면 수많은 가보지 못한 길들이 마음 한 켠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불공평하기만 한 세상에서 단 하나 완벽하게 평등한 것은 삶은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권위가 있다고 해서 아쉬움이 남는 그때부터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누구에게나 삶의 선택은 그때 한 번뿐이다.

 

살아가며 내리는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세상이 변수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진학할 학과를 고르는 것은 2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내리는 결정이지만, 당장 다음 달의 취업률조차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이는 선택에 정답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벽히 예측할 수 있는 미래란 없다. 정답이라 예측하고, 나아가 볼뿐이다.
 

사진_픽셀


삶의 변수들이 생각한 대로만 펼쳐진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으나, 나와 당신이 느낀 것처럼 삶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열에 하나라도 생각한 바대로 풀려준다면 고마울 정도다. 그래서 아쉬움이 생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후회는 다른 선택으로 가능했을, 상상 속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러한 아쉬움이 지나쳐 현실이 싫어질 때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처럼, 오늘이 가혹할수록 과거에 대한 후회는 짙어진다. 지금은 너무나 명료한 답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자신이 원망스러워진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때 과감히 떠났어야 했는데, 한 번 더 그를 붙잡아야 했는데.

‘환상’, 1.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2. 어떤 사람이나 사실에 대하여 근거 없이 덮어놓고 좋게만 보는 태도.

단어가 풍기는 어쩐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비해, 사전의 뜻은 단호하고 냉정하다. 과거를 돌아보는 우리의 태도는 ‘환상적인’ 측면이 있다.

 

아무리 겉으로 좋아만 보이는 일도 사람도, 겪어보면 속사정을 알게 된다. 일이 편한 직장은 대개 급여 수준이 낮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게만 맞춰줄 연인은 없다. 월세를 생각하며 야근을 버티고, 함께 있고 싶어 가치관을 맞춘다. 현실을 견디는 것은 견뎌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상상은 인내를 요구하지 않는다. 환상 속에서만큼은 구태여 싫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공무원 시험을 쳤다면 사는 게 훨씬 나았을 텐데, 그때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그 사람과 잘 될 수 있었을 텐데. 조금만 잘 선택하고 더 노력했더라면 삶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갔을 것만 같다. 상상 속의 과거는 그저 쉽고, 아쉽기만 하다.

가지 않은 길들은 환상 속에서 반짝이며 어두운 현재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오늘이 아쉬울수록 가능성으로만 남은, 다시 갈 수 없는 다른 선택지들은 밝게 미화된다. 잠깐의 조각 상상으로나마 마음을 밝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러한 대비가 밝음을 부각시키며 일탈의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어둠을 짙게 하며 현실을 더욱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없는 돈을 어떻게든 끌어 모아 배낭여행을 떠났었다. 지난한 삶과 과중한 업무에 지친 참이었다. 공항 문을 나설 때 느껴지는 낯선 습도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설레기 시작했다. 다를 리 없는 석양까지 다른 느낌이었다. 책으로만 보던 작품과 건축물 앞에 서며 묘한 두려움은 희열로 바뀌어갔다.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여유와 친절함이 좋았다. 길거리의 싸구려 피자 한 조각도 감동적이었다. 지루한 삶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나날들에 반했다.

최대한 많은 곳을 빼곡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갈무리하여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점차 그곳의 공기, 조각, 노을빛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사람들은 친절했고, 소매치기도 당하고 바가지도 썼다. 나처럼 그곳에서의 삶에 매료되어 아예 직장을 포기하고 젊음을 그곳에서 보낸 이들을 우연히 만났다. 체류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친해져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물었다. 생을 통틀어 한두 번 피에타 조각상 앞에 섰을 때와, 밥벌이를 위해 하루에도 세네 번씩 피에타의 코가 부서진 일을 설명할 때의 감상은 다르다고 했다. 결국 고민되는 것은 집세, 결혼, 불안정한 직장이라고 했다.​

귀국하자마자 허기가 져 제일 가까운 김밥X국을 들렀다.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두고 10여분 만에 나온 김치찌개를 그보다 빨리 먹어치웠다. 그저 그래야 할 국물이 너무 맛있어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느꼈다. 세상은 스쳐가기엔 마냥 아름답지만, 삶은 스쳐가듯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깊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든 감내해야 할 시간과 슬픔이 있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아침을 여는 진한 커피 한잔,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시켜 먹는 매운 떡볶이, 첫눈이 오면 생각나는 이별, 지금을 함께 하는 당신. 그때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온전히 내 것인 삶. 희로애락을 떠나, 내 삶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중한.
 

사진_픽사베이


가지 않았던 길과 걸어온 길 사이의 갈림길, 그 기로에서 우리가 택했던 길은 항상 그때의 최선이었다. 지나고서야 최고가 아님을 깨달았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다시 오늘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다른 길 앞에서 어떤 화려한 영광이 있을 수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늘 내 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이들과 소소한 행복이 고맙다. 오늘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는 것이 과거의 나를 책망할 이유가 될까.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을 딛고 묵묵히 걸어와 준 그때의 우리에게, 그 덕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노래 한 곡의 그리움 정도면 좋겠다. 5분가량만, 너무 길지 않게 촉촉이 젖어들었다가 다시금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예쁘고 고운 질감으로만 가득한, 환상 속의 가지 않은 길은 신기루일 뿐이다. 차가운 슬픔이 있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하나뿐인 나의 삶이 있다. 귀에 추억을 꽂고 후회를 들으며 천천히 나아가 보면 어떨까. 마지막 걸음을 내딛고 비로소 멈추어 섰을 때 어떤 마음이 들지 가만히 상상해 본다. 모든 걸음이 최고가 아니었음이 아쉽진 않을 것 같다. 다만, 때로 흔들리며 걸었으나 한 걸음 한 걸음 모두가 진심이었다,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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