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관심은 수학법칙에 따라 사그러든다. 즉, 대중음악에서부터 테니스 스타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뭔가를 망각하는 방식은 대상과 무관하게 보편적이다.
 

The poetry of Pablo Neruda can help describe how society forgets music, movies and tennis players.


2009년 발간된 아주 재미있는 우화집 『썸: 내세에서 찾은 40가지 삶의 독한 비밀들』에서,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어떤 '독특한 세계'를 기술했다. 그 세계에서, 모든 사람은 잊혀질 때 비로소 진정으로 죽는다. 육신이 바스러져 땅을 떠난 후, 모든 사자(死者)들은 로비에 머물며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를 때만 죽음이 허용된다. "로비 전체가 무한한 공항대합실처럼 보인다." 이글먼은 이렇게 썼다. "그러나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끔찍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도착할 때만 떠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일 테니까. 그러나 진정한 슈퍼스타(이를테면 요즘 다시 부활한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수세기 동안 로비에서 기다려야 한다.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떤 유명인사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자신의 동상이 무너지기를 기다린다.

 

이글먼의 이야기는, 심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해석한 것이다. 사람과 사건에 대한 '지속적으로 공유되는 관심'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체성(개인이 자신을 집단의 구성원으로 보는 방법)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을 기념하고 기억할 것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사회의 구조와 우선순위(priority)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주 《Nature Human Behaviour》에서, 연구자들은 집단기억에 대한 놀라운 발견을 보고했다(참고 1). 그 내용인즉, 집단기억이 쇠퇴하는 패턴은 수학법칙(mathematical law)에 따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학술논문·영화·팝송·테니스 스타에 기울이는 관심은 두 가지 독특한 단계를 거쳐 쇠퇴한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이번 연구결과는 - 정치가와 기업에서부터 환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중의 시선 속(또는 최소한 대중의 머릿속)에 머무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사회과학에서 길고 복잡하게 연구되어 온 문제에 '수학'과 '빅데이터 접근방법'을 적용했다. 즉, 그들은 관심(attention)을 기억에 대한 대용물(proxy)로 이용하여, 약 1,700명의 스포츠 스타에 관한 위키피디아 프로파일의 온라인 조회수, 거의 50만 건에 달하는 물리학 논문과 170만 개 특허권의 피인용, 그리고 33,000곡의 노래와 15,000개의 영화 트레일러의 온라인 재생횟수를 분석했다.

연구자들은 지금껏 "그런 문화적 대상(cultural object)에 대한 인기는 부드럽고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데이터를 새로 분석한 결과, 더욱 적절한 형태는 두 개의 국면으로 구성된 이중지수함수(biexponential function)인 것으로 드러났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집단기억은 1차적으로 신속하게 쇠퇴하지만, 2차적인 관심쇠퇴는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며 훨씬 더 부드러운 하강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모든 항목의 곡선 형태는 똑같지만, 각 국면의 실제 길이는 항목마다 제각각이었다. 음악은 1차적 관심쇠퇴가 가장 빠르고 날카로웠으며(6년), 스포츠 스타의 온라인 전기는 가장 길었다(20-30년).

 

왜 그럴까?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았다. 첫째로, 가파른 쇠퇴국면(steep decline phase)은 의사소통적 기억(communicative memory)이라는 과정에 의해 지배된다. 의사소통적 기억이란 '입에서 입으로 직접 전달(direct word-of-mouth transfer)되는 정보를 의미한다. 둘째로, 더욱 지속적인 국면(more enduring phase)은 의사소통적 기억보다는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에 의해 지배된다. 문화적 기억이란 물리적 기록(physical recording)을 통해 지속되는 정보를 의미한다.

이번 연구의 시사점은 분명하다. 즉,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오래도록 기억되려면, 그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과 함께 게재된 <News & Views>의 기사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참고 2), 문화적 인공물(cultural artefact)이 별로 없는 사건들(이를테면 2012년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의 경우, 정책입안자들은 '문화적 기억이 지배하는 기간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허리케인이 초래한 피해에 대한 대화는 '기후변화 = 심각한 위협'이라는 경각심을 고조시킬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기록이 없다면, 그런 경각심은 잠깐 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허리케인의 심각성에 대한 집단기억이 사그라듦에 따라, 그에 대한 우려도 사그라들게 된다.

 

물론 이번 연구의 모델이 모든 사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글먼의 연옥로비(purgatorial lobby)에서, 수천 년 동안 자신의 이름이 쓸모없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영웅들'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 연구는, 빅데이터를 새로운 연구분야에(그리고 현실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연구는, 외견상 무작위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충분히 큰 규모로 연구하면 밑바탕에 깔린 패턴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집단기억의 쇠퇴에 관한 이중지수함수'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더욱 시적(詩的)으로 기술한 말한 2단계 시스템(two-phase system)과 비교한다. "사랑은 이토록 짧고, 망각은 그토록 길다." 네루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도 바로 그것 - 물리적 기록, 즉 불후의 명작 때문이 아닐까?

 

※ 참고
1. http://doi.org/cxq2
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2-018-0480-7

※ 출처: Nature 564, 162 (2018)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7719-w

 

글쓴이_양병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업에서 근무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 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매일 아침 최신 과학기사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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