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한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마음의 문제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어요.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며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 문제는 이제 선생님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는 거예요.

 

요즘 들어서 외래만 가면 자꾸 혼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외래 방문을 하는 중인데, 물론 완전히 모든 부분에 있어 혼나는 건 아니고요. 다른 이야기 하다가 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다 보니 이 부분에서 조금...

제가 약 먹는 게 잘 안 되는 사람이라서 약 복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건 이해하는데, 근데 제 입장에서는 외래 가는 날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간 병원에서 매번 혼나니까 외래 가는 날이 제일 무섭고 가기 싫은 날이 되었어요. 약 때문에 매번 혼나고 하니까 더 약 먹기 싫어지고요.

초반에는 약을 안 먹고 모이다 보니 충동성이 강해지는 날에는 한 번에 복용하는 날(자살시도로)이 잦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자꾸 설교를 들으니 외래 방문하고 약을 받아오는 날에는 일주일 분의 약을 빼놓고 다 버립니다. 약이 제 손에 있어봤자 혼나기만 할 일들이 일어날 테니 말이죠.

 

이 다른 짓에 대해서는 주치의 선생님께 말해본 적 한 번도 없고요. 왜 말을 안 하냐고 물으신다면 ‘또 혼날까 봐’라고 대답할게요.

이런저런 이유로 최근에 외래에 가서 힘든 일이 있어도 별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어요. 교수님은 말해보라고 하는데, 말하면 뭐하나요? 또 혼날 텐데 말이죠. 그래서 교수님께서 질문하는 부분만 대답하고 옵니다.

 

제가 이 글을 적으면서도, 그리고 항상 병원 갔다 오면 약을 버릴 때도 드는 생각인데 이럴 거면 병원을 안 가면 되지 뭐하러 내가 병원에 가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다음 외래 때부터는 혼날게 분명하니 주치의 교수님 안 만나고, 병원을 옮겨볼까 합니다. 수면이 조금 힘들어 약간의 약이 필요하긴 하고, 병원에 잘 다니고 있는지 한 번씩 물어보는 부모님과 상담 선생님도 있으니까요.

 

저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어요. 저도 분명히 제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 힘든 부분을 술술 말하던 적도 많았고, 징징거린 적도 많았고요. 이전에는 혼이 나도 칭찬을 더 많이 해주셔서 잘 넘어갔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죠.

교수님이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병원 가기 전날부터 걱정이 됩니다. 무슨 일로 또 혼나게 될까 자체 검열하게 되고, 검열한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할 이야기는 없고 말이죠. 이게 반복되니 제 입장에서는 갈 이유가 없어요.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난 병원에 다녀도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과, 어차피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있네요. 글을 쓰다 보니 길어졌다마는, 제 상황.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서한입니다.

어떤 마음이신지 충분히 알 것 같아요. 저도 외래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경우를 접하게 되는데, 그중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의사-환자 간의 관계는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투약 복용 문제, 치료에서의 행동 과제 문제, 투약 용량으로 인한 불편감 혹은 진료 시간이 늦어져 대기하는 시간이 불편해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환자 측 요인, 의사 측 요인 각자 혹은 모두 작용하기에 원인은 워낙에 다양합니다.

어쨌든 의사-환자 관계는 서로에 대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서로 간의 믿음에 금이 가면 치료를 해도 진척이 없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진료를 보러 가는 것이 겁이 나신다고요.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치료를 중단하거나, 병원을 옮기는 일이 되겠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전에 한 번만 시간을 두고 자신,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를 지켜보는 시간을 가져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인간의 삶은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나 가족들 간의 대인관계에서 하던 패턴이 의사와의 관계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를 프로이트는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 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의 행동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어떤 부분에서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그게 치료를 중단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는지, 그리고 다른 관계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적이 없는지 돌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문제를 할 수 있다면 주치의 선생님과 나누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전 치료 시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왔다면 다시 치료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겉으로 드러나는 원인 때문만은 아닌 경우도 있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는데, 부모님의 그늘에서 힘들었던 환자가 자신의 부모님과 비슷한 나잇대의 성인을 대하기 너무 꺼려지고, 불편하고, 반항심도 생겼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저와의 치료 관계도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를 반복하는 전이(transference)현상인 것이죠.

의사 또한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이유로 환자에게 역전이(counter-transference)가 생기기도 합니다.

결국 치료 관계는 전이-역전이의 복잡한 함수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달려 있고, 현명하게 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다면 문제의 극복을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변화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요.

아, 물론 극단적인 상황이라 느끼신다면, 억지로 등 떠밀려 행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용기가 필요한 거라면, 치료를 중단하면서 겪을 상실, 그간의 노력을 감안해 제가 말씀드린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부디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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