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31. 콩코드의 오류 - SKY 캐슬, 우리 예서 좀 구해주세요.

 

우리 예서, 서울 의대 보내주세요.

꽤 많은 네티즌들의 염원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드라마에 많은 감정이입을 하였고, 또 우리 사는 모습들이 목표지향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네티즌들의 염원과는 달리 일단 예서는 서울의대에서 한 발짝 물러섰네요. 저는 이 지점에서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진즉에 그랬어야 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우주를 구해주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우주가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서, 자기 자신을 구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29번째 연재에서 우주와 예서의 차이는, 우주는 자신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을 존중해주고 있는데 반해, 예서는 자신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먼저 한서진(염정아 분)과 강예서(김혜윤 분)가 서울의대를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서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상장들을 보며 나누었던 대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서진: 지금까지 장장 15년을... 너랑 엄마랑 우리 둘이, 우리 둘이 함께 이뤄온 것... 예서야~ 너 이거 포기할 수 있어? 우리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 왔는데... 이 날 이때까지 엄마하고 너,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잖아.

강예서: 마음껏 놀아본 적도 없고. 게임 한 번 한 적도 없고. 

한서진: 마음 편히 여행 한 번 다녀온 적도 없고.

강예서: 나 진짜 진짜 진짜 열심히 살았어. 엄마. 나 너무 너무 서울의대가 너무 가고 싶어.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돼?

한서진: 그러니까 예서야. 우리 한 학기만 딱 잘 버텨보자. 3학년 1학기만 잘 버티면, 네가 그토록 입고 싶어 하던 이 가운 입을 수 있어. 3학년 1학기만 잘 버티면.

강예서: 나 정말 괜찮을 걸까? 한 학기만 잘 버티면, 엄마. 나 정말 괜찮은 거지?

 

예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우주가 억울하게 감옥에 가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의대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요? 지나온 세월 때문에요. 장장 15년. 적은 게 아니죠.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만약 우주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더 빨리는 결론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예서는 우주에 비해 지난 15년 동안 희생한 것이 많습니다. 무엇을요? 내 안에 있는 감정과 욕구들을요.

예서는 순간순간 있는 감정과 욕구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서울 의대 합격 후로 미루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희생하고 투자한 게 많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여기(here & now)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커다란 방해가 됩니다.
 

사진_JTBC


이것과 관련된 이론이 ‘콩코드 오류’라고 하는데요. 다른 말로는 ‘매몰 비용의 오류’라고도 합니다. 콩코드란 프랑스와 영국이 합작해서 만든 초음속 여객기의 이름입니다. 프랑스와 영국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서 진행한 프로젝트이죠.

그런데 프로젝트 중간 보고서 상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4억 달러 정도를 투자를 한 상황인데, 개발을 끝내려면 추가로 6억 달러가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추가 6억 달러를 투자해봤자 적자가 늘어날 게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합리적인 결론은 투자를 멈추는 것입니다. 왜냐, 추가 투자를 해봤자 적자만 더 늘어나는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프랑스와 영국은 어떻게 했을까요? 추가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왜냐고요? 지금까지 4억 달러를 투자한 게 아까워서요. 과거에 투자된 비용 때문에 손해가 더 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지금 여기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두고 콩코드 오류에 빠졌다고 합니다.

투자한 비용이 크면 클수록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확률도 따라서 커집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때그때 일어나는 나의 감정들을 잘 보고 인지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게 되면 결국은 그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결핍으로 남아있게 되고, 콩코드 오류와 같이 ‘비합리적인 선택’의 연속이 됩니다. 내 인생이 꼬여가게 된다는 뜻이지요. 예서가 친구 관계, 가족과의 관계 등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모두 무시하면서 살았던 것도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서도 그때그때 순간순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공부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가치들을 무시할 때,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불편한데...’라는 느낌이요. 그때 그 마음을 잡고 들여다 봐줄 수 있는 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넘어가게 되면, 심리적 투자비용은 나도 모르게 계속 증가할 거고요, 그에 따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확률도 점점 증가하게 됩니다.

서울의대를 포기하지 못하는 위 상황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지요? ‘나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예서의 말. 분명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찝찝함’이라는 느낌이요.

이럴 때 이 ‘찝찝함’이라는 신호를 잘 잡고 구체화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찝찝함’ 안에는 죄책감, 불안 등 많은 감정들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고, 또 그 감정이 나중에는 나의 미래를 발목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불안이 내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잘 살펴봐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갈 경우에는 결국 종착지는 ‘파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하여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20달러 지폐를 경매에 붙이려고 합니다. 시작 가격은 1달러입니다. 단, 이 경매가 다른 경매와 다른 점은 최고액을 제시한 입찰자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높은 입찰 가격을 제시한 사람도 그 액수만큼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20달러 지폐는 최고액을 제시한 입찰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은 입찰에 참여하시겠습니까?

맥스 베이저만과 마가렛 닐은 이러한 상황을 실험으로 진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찰에 참여를 했습니다. 1달러만 외치면 20달러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12~16달러까지는 입찰가가 빠르게 증가합니다.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입찰을 포기합니다. 뭔가 이상하고 찝찝한 거죠. 그렇게 해서 보통 2명이 남습니다. 이때부터 딜레마에 빠집니다.

남은 두 사람은 20달러를 넘기는 시점까지 포기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 포기하면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둘 다 20달러짜리 지폐를 사는데 20달러를 넘는 금액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웃기는 상황이지 않나요?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들도 이 마지막 두 사람에 속하게 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결국 ‘찝찝함’이라는 신호를 빨리 캐치하여 12~16달러쯤에 포기했던 사람들이 승자였던 것입니다. 그 ‘찝찝함’이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두 사람은 결국 손해를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진_픽셀


사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명확하고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 신호를 우리가 끊임없이 관찰해주고 인지해주어 구체화시켜 주는 노력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파국이 되지 않게 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답니다. 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상담기법 중 ‘정신치료(Psychotherapy)’라는 것이 있는데요. 치료 목표 중에 하나가 ‘무의식의 의식화’입니다.

제 임상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 ‘무의식의 의식화’는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정말로 강력한 힘을 줍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보내는 ‘찝찝함’이라는 신호를 잘 캐치하고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목표가 있다는 핑계로 그냥 열심히만 삽니다. 예서의 ‘나 진짜 진짜 진짜 열심히 살았어.’라는 말처럼요. 20달러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두 사람처럼요. 그것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요.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외치고 신호를 주고 있답니다. 그것을 무시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오롯이 ‘나’로서 살아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답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서 보내는 신호를 항상 관찰해주고 인지해주고 구체화하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조금은 느릴 수도 있지만,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가는 확실한 열차이니까요.

예서의 말로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 정말 괜찮은 거지?”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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