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에도 온도계가 있습니다. 감정의 높낮이를 측정하고 우울을 통해 어떻게 쉬어갈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은 환자들이 정신과에 오기 전에 검색을 통해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오기 때문에 예전보다 설득하기가 편합니다. 예전에는 ‘우울증’ 진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환자들에게 진단명 자체가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진단을 받고 갑자기 환자처럼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주로 설명합니다. “우울증이다, 아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분의 스펙트럼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있다면 당신은 이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온도계 같아서 갑자기 20도가 넘었다고 우울증이고, 19도라고 아닌 게 아닙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도 가끔 우울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의미를 못 느낀다든지, 무엇을 했는데 인정받지 못했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있는데, 프로젝트를 끝내거나 시험이 끝났을 때 허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럴 때 내가 우울증인가 아닌가를 따지기보다 기분이 처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보낼 수 있도록 나를 추스르고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진_픽셀


우울증 환자 중에 “내 부모는 왜 나를 낳았나?”, “세상 사람들은 왜 살고 있나? 삶 자체가 불쌍하다. 다 죽는 삶인데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울증 진단 기준에는 어떤 의미나 의욕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들어갑니다.

“나는 내 부모의 발뒤꿈치 때만도 못하다. 형제들은 다 잘났는데 나만 아니다. 나 같은 건 사라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누워서 계속 잠만 잡니다. 잠이 안 오는 사람도 있지만 종일 잠만 자는 사람도 있는데 우울증은 불면 또는 과수면으로 옵니다. 수면 사이클 자체가 망가져서 과수면인 경우에 거의 12시간, 24시간 동안 잠만 계속 잡니다. 기력과 의욕이 없기 때문에 그렇고, 딱히 만날 친구도 나갈 곳도 없기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밥도 잘 안 먹게 되어 체중이 빠지기도 하고 폭식을 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일으켜 먹여야 합니다. 우울증이 원래 그렇습니다. 마치 신생아 같아서 먹고 자고 눕고 싸고 합니다. 가족들이 이쯤 되면 지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지금 보이는 현재 상태가 인생 전부가 아닙니다. 모두 인생에는 큰 그림이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네게 갈 길이 있다”라고 다독여 주어야 합니다.

 

우울증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려라

우울증 환자를 상담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아주 불편해합니다. 항상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대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검사를 하면, 우울감이 0이 나옵니다. 이 결과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성취가 강조되는 직책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게 나옵니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하면 우울감이 10-15점 정도 나오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CEO들은 우울감 자체를 느끼는 감성마저도 허락되지 않은 집단인 셈입니다.

 

우울증 치료의 1번은 우울증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쉽게 지치고 우울감이 찾아온다면 먼저 나를 돌보고 살펴보아야 한다는 몸의 신호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우울이라는 것이 내 사전에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면 갱년기가 찾아오듯이 어느새 내 몸이 지쳤다는 신호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휴대폰도 충전이 필요하듯이 바쁜 일상에서 우리 몸과 마음이 리듬을 잃게 되고 탈진되어 방전되는 것입니다.

우울감을 통해 삶의 속도를 줄이고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고,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처럼 자신의 진로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진료를 받고 우울감이 호전되면 상담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담가가 되겠다는 비전을 가지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스스로가 겪은 우울이 바로 남을 위로하는 위로자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상담대학원을 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성품을 가지게 되는데, 우울증을 통해서 우리의 여러 가지 성품이 다루어집니다. 그중 가장 훈련되는 성품은 인내심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알게 되는데 우울증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약물치료나 심리상담만큼 중요한 것은 일상의 리듬, 세로토닌 라이프스타일

약 먹고 운동만 한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특히 육체적인 일상 리듬은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도와줍니다. 일찍 잠을 잘 자고 잘 일어나고 하루 세끼를 잘 먹는 것만 규칙적으로 하고 몸을 매일 움직일 수만 있어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힘든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정신적인 측면만 생각하기 쉬운데, 몸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한 몸이야말로 건강한 정신을 가져오는 것이니까요.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만드는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자면, 햇빛과 산책입니다. 일조량이 적은 나라가 세계적으로 우울증 유병률이 높은 것을 보면 햇빛을 통해 비타민 D의 생산이 많아지고 산책을 하면서 걷기를 실천한다면 우울감이 사라지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음식으로는 비타민B와 트립토판이 많은 현미, 콩, 두부, 요구르트, 연어, 견과류가 여기게 해당됩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숙면을 잘 취하는 것, 애정을 가지는 사람, 반려동물, 취미생활 등이 활력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체가 쉽게 지치지 않게 과로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술, 음식, 담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울증이라는 웅크린 시간을 지나가면서 잠시 삶의 속도를 줄이고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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