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매일 밤 9시쯤 동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입구에 가보면 항상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랜드 가요, 랜드, 사북이요~”

강원랜드로 가는 손님을 찾는 택시기사의 소리입니다. 3명 정도의 손님이 구해지면 이들은 한 택시를 타고 강원랜드로 출발합니다.

인당 15~20만원 정도의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만 이를 아까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원래라면 3시간이 넘게 걸릴 이 길을 총알택시는 2시간도 안되어 주파하는데 이들에겐 이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도 초조하지요. 1분이라도 빨리, 마음은 이미 카지노에서 베팅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처음 본 사이지만, 어색함도 잠시 자신이 한때 얼마나 많은 돈을 땄는지, 얼마나 많이 잃었는지를 공유하며 흥을 돋웁니다. 다들 무언가에 들떠있고 고양된 분위기로 흡사 소풍을 가는 분위기입니다.

놀라운 것은 택시 안의 사람들은 모두 엄연한 직장인이고 다음날 정시에 출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일 어떻게 출근하세요?”

“다섯 시에 카지노 문 닫으면 그때 택시 타고 서울로 오지, 사우나 들렀다 회사로 가.”


세상에. 이런 피곤함을 감수할 만큼의 쾌감과 보상이 이곳엔 있는 것일까요. 택시를 타고 한 달에 5-6번 정도는 강원랜드를 다닌다는 대기업 차장 B 씨에게 그동안의 성과를 물었습니다.


“잃을 때가 훨씬 더 많지, 그동안 천만원 정도 잃었어. 그래도 왜 다시 오냐고? 재밌으니까.” 
 

사진_픽셀


중독이란 나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속적이고 강박적으로 그 행위에 몰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도박중독을 나쁜 습관이나 성격의 문제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심리적, 육체적 의존성을 특징으로 하는 엄연한 뇌의 질병입니다. 의지와 자제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가족, 예쁜 딸을 가진 B 씨는 매일 똑같은 출퇴근, 일상에 지겨워하던 차에 친구들과 골프여행에서 잠깐 들렀던 카지노에서 처음 바카라를 했습니다. 30분 만에 100만원의 돈을 따게 된 순간 그의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수치는 인생 최고로 폭등했습니다. 위험을 동반한 강한 쾌감은 중뇌의 기저신경절의 보상회로를 타고 그의 기억에 너무나 강렬히 각인되어 도박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B 씨는 일상 어느 곳에서든지, 낮이건, 밤이건 카드의 모양이 어른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도 다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한 번은 30-40만원 정도는 도박이 아니야, 레저야 레저’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자, 그는 다시 카지노를 찾게 되었고, 한 달에 한 번이 일주일에 한 번, 3-4일에 한 번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박에 중독된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겠지. 중독되기 전에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어’ 

‘저는 좋아서 도박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잃은 거 본전만 찾고 그만두려고요.’


이미 중독의 단계에 들어선 경우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박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주변의 만류나 가족의 애원은 모두 잔소리로 들리며 전두엽이 아닌 변연계가 시키는 대로 그저 욕망과 원초적인 쾌감만을 좇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고 약물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처럼 도박에도 금단 증상과 금단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박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모든 환경과 자극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며 도박으로 알게 된 지인들과 연락을 단절해야 합니다.

유튜브로 포커 영상을 보거나 스포츠 토토를 해서도 안되며 핸드폰으로 간단한 사행성 게임을 하는 것도 아예 손을 떼는 것이 좋습니다. 도박이 주는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쾌감 대신 안정적이고 점진적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 운동, 여행 등을 찾아서 이를 대치해야 합니다. 

 

술, 도박, 쇼핑, 섹스, 게임 등 누구나 어떤 것에 조금씩 중독되어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지나치고 부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반성은 항상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직장, 가족의 신뢰와 믿음은 도박으로 얻을 수 있는 쾌감보다 나에게 훨씬 크고 지속적인 행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짜 행운은 도박장의 주사위나 카드가 아니라 나의 일상과 가정에서 원하고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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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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