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SBS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입니다.

아이가 식사 전에 젤리를 먹었다는 이유로 폭언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동은 충분히 폭력적이죠.

직접 때린 것도 아닌데, 그게 뭐 폭력적일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릅니다.

‘본인보다 키가 1m가 큰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그 사람이 밥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서 도망치면, 먹을 것도 잠들 곳도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거인의 분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저 참고 견뎌야만 합니다.’

동영상에서 아이가 그냥 그 자리에서 귀를 막고 있던 이유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런 유형의 아동학대를 정서적 학대라고 합니다.

아동에게 언어적, 정서적 위협을 가하는 거죠. 

하지만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 중에서 이 동영상을 보면서 움찔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보통 자녀에게 한 번쯤은 크게 화를 냈던 적이 있으니까요.

 

정서적 학대는 약간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어요.

아동 학대의 나머지 유형들인 신체적 학대, 성 학대, 방임은 명확하게 <했다/안 했다>가 구별되지만, 정서적 학대는 그게 아니니까요.

 

실제로 정신과 상담을 할 때도,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죠.

하지만 아이가 해도 되는 행동, 하면 안 되는 행동을 구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칭찬과, 명백한 금지 표현이 필요해요.

부모가 할 수 있는 금지 표현 중 하나가 화를 내는 것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부모의 화를 이용하는 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죠.

지금 당장은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부모가 다독여주면 회복될 수 있어요.

아이도 부모가 자신을 혼내는 이유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는 느낌은 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부모의 화를 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아이의 행동을 꼬투리 잡아 분을 푸는 것은 정서 학대죠.

동영상에서도 아이를 혼내다가 결국은 남편과 다투죠.

만약 남편과의 갈등이 없었다면, 같은 이유로 아이에게 저 정도의 화를 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물론 순수하게 아이를 위한 부모의 화란 존재하지 않아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이와 상관없는 분노가 늘 섞여있죠.

하지만 그 비율과 정도는 부모 스스로가 늘 주의하며 살펴야 하죠. 

 

동영상 속의 남편은 아이에 대해서 어떤 폭력, 학대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죠. 

하지만 동영상을 올린 아버지로서는 아동학대 중 방임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죠.

부모로서 아이를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가 자신이 혼나는 모습을, 폭력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공개하고 싶을까요.

자신의 주변에 있는, 그리고 자신과 상관없는 모든 사람이 내가 가진 아픔을 모두 아는 것, 그리고 모두가 안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가 극복하기에는 큰 상처죠.

조 전 부사장의 남편이 재벌가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녀에 대한 보호막을 이런 식으로 거두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렇듯 부부 관계가 안 좋아질수록, 아동 학대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부부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자녀에게 화를 내니까요.

 

자녀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녀에게는 자신이 현재 싫어하는 상대방의 유전자가 반이나 있고, 또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부모의 폭력에 쉽게 저항할 수 없으니까요.

 

조 전 부사장 부부가 보통의 평범한 부부였다면, 아내는 아이에게 남편의 험담을 하고, 남편은 아이에게 아내의 험담을 하며 아이가 부모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자신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정도로 일이 진행이 됐겠지만, 재벌가의 부부이기 때문에 싸움이 커졌고, 그 싸움 속에서 아이는 견디기 힘든 상처를 받게 됐죠.

 

조 전 부사장 부부의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는 관심 없습니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무리되겠죠.

다만 그 싸움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자녀가 아픔을 잘 극복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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