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Lars Von trier (사진_위키피디아)


1. 감독 - Lars Von trier.

덴마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코펜하겐 대학을 다니던 무렵 만든 두 편의 영화로 뮌헨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듯 깐느에서 수많은 상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최상의 목표는 나의 캐릭터와 배경에서 진실을 뽑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인마 잭의 집을 보면서 아마도 감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아래 글을 통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 영화의 구조

① 대화로 시작되는 영화

주인공 잭과 그를 지옥으로 이끄는 버지와의 대화로 영화가 시작합니다. 잭은 버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냐고 묻고 버지는 기꺼이 승낙합니다.

그런데 버지의 듣는 태도가 매우 독특합니다. 무심한 듯 “자네의 이야기가 특별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게.”라고 말했지만 버지는 잭의 이야기를 매우 열심히 듣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잭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생각을 확인해 줍니다.
 


② 버지의 적극적 경청

상대가 소극적으로 듣기만 하거나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면 말하기가 싫어지거나 최소한만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하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좋은 청자 혹은 치료자는 이를 넘어서 상대의 입장과 객관적 상황을 종합해서 듣습니다. 그래서 청자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의아함과 기이함을 느끼고 이를 질문하거나 반박하게 됩니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정도를 넘어선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게 되고 때로는 자신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던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이런 청자의 태도를 적극적 경청(혹은 듣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지는 적극적 경청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살인 예술을 자랑하려고 했던 잭이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나중에 그 시절의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③ 이야기 속에 포함된 5가지 살인 이야기

잭의 무용담은 무작위라고 포장되고 사실은 대단히 정교하게 고안된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제가 정교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명확하게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A 최초의 살인 - 자존심을 건드린 여인
B 사냥하듯 한 두 번째 살인
C 원하는 대로 연출하기 위해서 한 살인 - Narcissism, self-control, 잭의 강박증
B’ 기념품을 남긴 사냥 - 가족 살인
A’ 마지막 살인 - 여성에 대한 열등감 

5가지 에피소드는 모두 상이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A-A’, B-B’가 같은 구조입니다. 같은 구조가 다른 상황에서 반복되면서 잭의 심리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런 구조에서 중심에 있는 C는 가장 중요한 주제 즉 잭이 왜 살인을 저질렀으며 무엇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를 보여줍니다. 

 

3. 첫 번째와 마지막 살인 (A-A’)

첫 번째 살인과 마지막 살인의 동기는 매우 유사합니다. 열등감이지요.
 


첫 번째 살인에서 잭은 여자로부터 살인도 못할 찌질한 인간이라는 말을 듣고 격분하고 살인을 저지릅니다.

살인의 처음과 끝이 열등감이라는 건 잭을 살인마로 만들고 유지시킨(끝까지 살인마로 남게 한) 이유가 열등감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희생자에게는 여성에 대한 열등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끊임없이 잭을 도발하고 건드려서 화가 날만했다면 마지막 희생자는 잭을 사랑하고 이해해주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잔인하게 살인합니다.

첫 살인을 할 때는 화가 날만한 상황에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일으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마지막 살인을 하는 시점에서는 자신의 열등감으로 인해 무고하고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마저 죽이게 됩니다. 첫 희생자는 잭을 도발한 대가를 치렀지만 마지막 희생자는 잭의 내면의 일그러진 열등감으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잭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지만 말기의 잭은 외부가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열등감에 의해 움직입니다. 이젠 누가 사랑해주거나 미워해주거나 상관없이 살인을 하게 되는 괴물이 된 거지요. 

 

4. 두 번째와 네 번째  살인 - 사냥 (B-B’)

살인을 통해 자신감과 만족감을 얻은 잭은 이제 2차 먹잇감을 찾아 사냥을 떠납니다. 
 


그는 아무 연관도 없는 미망인의 집을 찾아가 잔인하게 그녀를 살해합니다. 잭은 단순히 사냥하기 편한 외딴집에 혼자 사는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처음 사냥을 하는 풋내기처럼 잭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우연히 내린 비로 이 실수가 덮어지자 잭은 하늘이 자신을 도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4번째의 살인 역시 사냥입니다. 하지만 이제 잭은 거장의 반열을 꿈꾸는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영지의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고 전리품을 전시하는 귀족처럼 잭은 자신의 전리품들을 자랑스럽게 전시합니다. 발전한 그의 사냥법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는 우연히 걸려든 피해자를 사냥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사냥터에 몰아넣고 스포츠를 즐기듯 사냥을 합니다. 

 

5. 살인의 궁극적 의미 - 강박증을 극복하다! C

그는 살인을 하면서 강박증을 극복합니다. 잭이 벌인 살인의 가장 중요한 이유와 원인은 바로 강박증이라고 보여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살인이 강박증의 증상을 대체하게 된 걸까요?

강박증은 자신의 비이성적 불안을 스스로 제어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강박증 환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세상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만의 법칙을 통해 이 불안전함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모든 것을 control 하려고 하는 것이 강박증의 가장 중요한 원인입니다.
 


잭은 자신의 감정이 내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이용해 자칭 예술 작품을 만듭니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의 목숨을 마음대로 빼앗고 그들의 육체를 재료 삼아 마음껏 예술 작품을 만드는 전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강박이 사라집니다.

그에게 강박은 자신의 능력을 통해 스스로의 전능함을 확인하고 싶었던 도구였던 것 같습니다. 더 강력한 욕망 충족의 도구가 나오자 그의 강박은 멈춥니다. 결국 잭은 자신의 열등감을 지움으로써 완벽한 존재, 완전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사람 같습니다. 

 

6. 잭의 집

집은 우리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는 곳입니다. 영화에서 잭은 건축사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 집을 지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지으려는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납니다.
 


그 역시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편안한 집을 갖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평범한 안식을 꿈꾸는 사람들처럼요. 하지만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가 지은 집은 끔찍한 살육과 피의 잔유물입니다. 

잭의 끔찍한 집은 인간이 남을 이용해 얻으려고 하는 안식과 평안이 어떤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어떻게 얻어지는지 우리는 잊고 삽니다. 영화는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안식이 타인의 피와 희생을 재료로 한 건 아닌지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7. 구원의 의미

잭은 결국 지옥의 바닥에 도착합니다. 이때 버지가 이상한 말을 합니다. “자넨 여기 있지 않아, 더 위 정확히는 2층 위로 가게 될 거야.”

여기서 버지가 말하는 2층 위는 어떤 곳일까요? 저는 2층 위가 천국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으로 오는 여정에서 그들은 첫 번째로 물을 헤치고 나왔고 두 번째로 뗏목을 타고 움직였습니다.

 


저는 이걸 두 개 층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버지는 잭에게 구원의 희망을 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잭은 자신의 힘으로 천국으로 가려고 하다 결국 지옥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왜 버지는 잭에게 구원의 기회를 준 것일까요?

저는 이 영화에 담긴 구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버지는 적극적인 듣기로 잭의 순수한 마음을 끄집어냅니다. (감정이 없다는 잭이 눈물을 흘리지요.) 그리고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십자가 위의 강도는 구원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하는 흉악범에 불과한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때 그가 한 한마디가 그를 구원에 이끌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도와달라고 한 것입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구원이라는 선물은 받으려고 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는 글>

토요일 밤에 본 영화는 너무 잔인했습니다. 참혹한 영화를 즐기는 저도 차마 보기 힘든 장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역겨움 속에 거룩함이 있었고 천박함 속에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영화 끝에 저는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내가 비록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잭과 다른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저는 더 겸손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는 제 영혼을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친 장면을 견딜 힘이 있으신 분들에게 저는 이 영화를 권합니다. 힘든 장면을 견디고 나면 깊은 여운과 사색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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