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왜 불안할까요?

다양한 분석이 나와있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의 경우 인간의 불안이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만약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면 맹수에게 잡아 먹힐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맹수의 위협뿐만 아니라 자연재해, 식량부족, 이웃 종족의 공격 등 수많은 위기상황에서 불안이라는 경고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연선택의 과정은 인간의 생존 여부에만 관심 있지, 이때 인간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선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에겐 생존에 필수였던 불안이 문명이 발전한 뒤로는 오히려 삶의 질을 낮추는 장애요소로 주목받게 된 셈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렇다면 불안과 불안장애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스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Status Anxiety)’에 나오는 문장은 이를 함축적으로 잘 설명합니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실제 불안이 생활 전반을 마비시킬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면 불안장애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진단을 할 때 표준으로 삼는 진단기준으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분류(DSM∙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질환은 다른 신체질환과 달리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사 소견이란 것이 뚜렷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진단함에 있어 최대한 객관적 기준에 가까운 근거를 만들고자 DSM이라는 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DSM에 따르면 A라는 질환을 진단할 때 첫째, 어떤 증상들이 몇 가지 이상 나타나야 하는지, 둘째, 이 증상들이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지속되는지, 셋째, 증상들이 사회적∙직업적 혹은 기타 중요한 영역의 기능들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지 등을 확인한 뒤 A라고 진단하도록 돼있습니다. 세 번째 항목의 경우 알랭 드 보통의 글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불안증상을 느낀다고 해서 불안장애는 아닙니다. DSM에서 기술한 기준들 모두에 해당해야 ‘불안장애’라는 정신의학적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환자가 불안을 느끼더라도 자신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불안장애’가 하나의 개별 진단이 아니라 불안에 관련된 여러 질환들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라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장애’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는 9가지 개별 질환들이 있습니다. (1) 분리불안장애 (2) 선택적 함구증 (3) 특정 공포증 (4) 사회 불안장애 (5) 공황장애 (6) 광장 공포증 (7) 범불안장애 (8) 다른 신체질환에 의한 불안장애 (9) 특정 불능의 불안장애 등이 그것입니다.

분리불안장애와 선택적 함구증은 소아들에게 나타납니다. 특정 공포증은 특정 대상(예를 들어 주사, 뱀)에 국한된 두려움이고, 사회 불안장애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해 심한 불안을 느낍니다. 공황장애에서 나타나는 불안증상은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너무 어려워 죽을 것 같은 두려움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광장 공포증은 버스, 지하철, 비행기 등의 장소에서 공황발작이 나타나지 않을까 미리 걱정해 이런 장소에 가는 것을 회피합니다. 범불안장애는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걱정들이 과도해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워합니다.

DSM은 사회문화의 변화와 질환에 대한 의학적 연구, 통계 변화 등을 반영하며 일정 주기마다 개정됐습니다. 예전에 쓰이던 DSM-4에선 우리가 익히 아는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불안장애’에 속해 있었지만, 현재 DSM-5에선 불안장애의 하위 개념이 아닌 각각 독립된 질환으로 변경됐습니다.
 

사진_픽셀


불안증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문을 두드리는 분들은 대개 불안증상이 너무 심해서 직장이나 학교생활, 그 밖의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때 본인의 증상에 맞는 약물치료와 체계적 탈감작화(Systematic Desensitization),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등과 같은 정신치료를 받아야 여러 영역의 기능 손상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불안 증상이 나타나면 불안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좀 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내가 어떤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불안이 커지는지,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건지 등에 대해 탐색해보는 것이 치료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불안장애 환자는 사고의 왜곡이 패턴화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불안장애 환자는 어떤 일에 대해 걱정하면 이에 수반되는 부정적 감정들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비현실적인 미래의 위협을 걱정해서 오히려 중요한 현실적 위협을 외면합니다. 자신의 사고패턴이 왜곡돼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인지하면 불안 자체에 대해 좀 더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치료기법 중 하나인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에서는 불안을 억지로 회피하려고 하거나 불안과 싸우려 하지 말고 불안 자체를 들여다보고 수용하는 것을 권고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에 나왔던 짤막한 글을 불안장애로 고민 중인 분들께 소개해드립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유익한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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