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결혼한 뒤 두 부모님만 사시게 되었는데, 그 후로 어머니가 자꾸 몸이 아프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처음엔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서 자주 아프구나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프다고 챙겨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와서 아프다고 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도 점차 무뎌지다 보니 반응이 예전 같지 않게 되자 어머니는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허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라면서 병원만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찰을 해보면 멀쩡하고 ‘신경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결혼 초기부터 바쁜 업무로 자신이 아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이렇게 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왜 이렇게 되신 걸까요?

 

비슷한 사례를 진료실에서 자주 봅니다. 아무런 질병이 없는데도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환자도 있고, 심각한 질환이 아닌데도 작은 증상만 있어도 응급실로 달려오기도 하죠.

“몸이 좋지 않아 병원 가야겠다. 입원해야겠다”며 자녀에게 수시로 전화를 거는 환자도 있습니다. “큰 문제 아니니 지금 당장 치료해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의사의 대답을 듣고 나면, 가족들은 오히려 더 답답해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옆에서 지켜보는 환자 가족이 “제가 어떻게 해 드려야 할까요?”라며 상담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걱정되어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 지치고 힘들어요”라고 하면서요.

“이런 마음 가지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이제는 저도 화가 납니다.”라며 괴로움을 쏟아냅니다. “차라리 큰 병이라도 있으면 더 낫겠다”며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지치고 힘들다고 해서 어머니의 행동을 꾀병이나 엄살로 단정해 버리면 곤란합니다.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거다.”라고 무시하면 어머니의 ‘환자 역할 행동(sick role behavior)’은 더 심해집니다. 사례마다 이유는 다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충족되지 않은 정서적 욕구 때문에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것인데, 가족이 자신의 증상을 쉽게 생각하거나 무시해버린다고 느끼면, 어머니는 환자 역할에 더 매달립니다.

이런 사례들은 단순하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가족들이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지치고 힘든 가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어머니의 행동을 바꿔놓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병원을 찾기보다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게 해서 심각한 질병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두어야 합니다.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무슨 큰 병이 생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어머니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게 될 수도 있거든요. 어머니의 건강검진 결과를 숙지해 두면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아프다며 병원에 달려갈 때만 어머니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일정하게 어머니께 관심을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주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시는 물어보고, 직접 찾아뵙고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의 관심과 애정을 바라는 어머니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어야 갑작스럽게 증상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달려가는 극단적인 행동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어르신들이 신체 증상에 집착하는 것은 ‘죽음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족의 관심과 정서적 욕구를 얻고자 신체 증상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숨겨져 있어서 작은 증상에도 공포를 느껴서 이런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어머니가 호소하는 신체 증상에만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을 먼저 이해하고 달래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이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쭈어 보아도 겉으로는 “나는 죽는 거는 하나도 걱정 안 된다. 그냥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니까요.

신체 증상을 호소하며 가족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것도 ‘늙었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살아있다, 이 땅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라는 인식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는 독립하고 남편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사회생활만 하고 있다면, 어머니에게는 ‘살아있음’을 확인받을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연 속 어머니와 가족에게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꽃 파는 사람 The Flower Seller>을 처방해 드리고 싶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의 화가이면서,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멕시코의 천재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도 유명하죠. 이 부부는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디에고 리베라, 꽃 파는 사람


이 그림을 보면, 꽃을 파는 여인이 자기 몸보다 훨씬 더 큰 꽃바구니를 등에 짊어진 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꽃바구니에는 아름답게 핀 칼라 릴리가 담겨있습니다. 여인이 움켜쥐고 있는 파란색 끈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으로도 꽃바구니의 무게 느껴집니다. 꽃바구니를 짊어진 여인은 혼자 힘으로는 일어서기조차 힘들어 보입니다.

칼라 릴리는 도도하고 아름답게 피어서 꽃바구니에 담겨있지만, 그것을 짊어진 여인은 가녀리고 힘겨워 보입니다. 하지만 여인이 꽃바구니를 짊어지고 일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꽃을 건네줄 수 있다면, 그녀의 표정을 조금씩 피어나겠지요. 몸도 한결 가뿐해질 테고요.

그림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꽃바구니 뒤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 여인의 남편이겠지요. 이 남자는 두 손으로 꽃바구니를 들어 올려, 부인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꽃바구니를 대신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인이 그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꽃바구니를 남편이 대신 들어주면 될 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꼭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내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 사람을 만나고, 꽃을 건네주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며 느끼게 될 행복감을 앗아가 버리게 될 테니까요.

사연 속의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도 이 그림과 같아져야 합니다. 어차피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불안의 몫, 어머니가 스스로 활동해야 하는 몫을 가족이 대신해 줄 수는 없을 테니까요. 동시에 어머니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가족이 받쳐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취미 생활을 찾으시라, 새로운 것을 배워 보라, 모임에 나가 봐라’라고 조언을 하면, ‘몸이 아파서 못 하겠다’며 회피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지레 겁을 먹고 손사래를 칩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에는 가족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남편이 시간을 내어 일정하게 부인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운동도 같이 해야 합니다. 좋은 공연이 있으면 같이 보고, 모임에도 함께 나가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시동을 걸어주는 것이지요. 자동차 시동이 잘 걸리지 않을 때, 사람들이 뒤에서 차를 밀어 시동이 걸리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처음에 차를 밀 때는 힘이 들어도, 시동이 한 번 걸리고 나면 어머니 자신도, 그리고 가족들도 한결 편안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힘 들이지 않고도 앞으로 쭉쭉 움직여 나가게 됩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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