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서비스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문의 드릴 고민은 재밌게도 바로 사람에 대한 고민입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미소로 마주하고 스쳐 보내야 하는 저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데요. 첫 번째로는 앞서 거론한 '손님/고객'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경력이 없을 적부터 올곧이 서비스직에만 종사해 오면서 여러 사람을 마주해봤고, 감정노동이지만 저에게 아주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평화로울 수는 없듯, 저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람, 저에게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요. 무엇이 원인인지 알아낼 수 없는 제 머리로는 그 경험들이 속에 남아버렸는지, 일을 하며 매장 문이 열리는 소리나, 손님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면 덜컥 긴장부터 하게 됩니다.

긴장 정도로 끝난다면 고민이진 않겠죠.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고객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저는 심한 안면홍조를 겪었습니다.

덥다거나 춥다거나 하는 체온 변화가 생길 수 없는 실내환경에서, 가벼운 인사 이후 고객과 눈이 마주치거나 대화가 두세 마디 이상 길어지게 되면 얼굴이 붉게 타오르게 되어 저는 저의 체온 변화를 느끼고 당황하게 되고, 그 당혹스러움에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면 되려 손님이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저의 모습을 눈을 돌리며 훑거나 하는 반응을 보게 되면서 부끄러움과 자괴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한 번 이상 매장에 들러 저의 그런 모습을 보았던 고객이 혹시나 어딘가에서 '저 사람 있잖아~'라며 저를 지칭하고 어떤 말을 하진 않을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안면홍조가 조금 나아지는가 하면 전에 없던 눈썹 경련이라든가, 시선을 습관적으로 의식하여 되도록 커다란 기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자리에 숨어 앉거나 하는 버릇이 생기고, 심할 때에는 일을 하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거나 침이 삼켜지지 않았던 적도 있어 많이 무서웠습니다.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 상황이지만, 다시 어딘가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의 노력에 비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어떡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커 적극적인 구직활동도 주저하게 되네요.

 

또한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데요. 저는 의욕적인 사람이 아니다 보니, 모든 업무에 있어 진취적이고 의욕적인 사람과 있을 때 나의 템포와 나의 성향에 비교했을 때 조금이라도 무리해야 하는 피곤한 업무가 생기진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호의적으로 yes가 되지 않는 게 문제이죠.

그렇다고 또 NO를 외치는 성격도 못되어 늘 일을 떠안고 마음앓이하며 그 일을 합니다. 나아가야 하는 데에 대한 심적인 부담이 늘 존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일이 혹시나 찾아오게 되면 어떡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마음먹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혹시나 새로운 환경에서 '그런 사람'을 마주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저 너무 큰 변수를 마주하지 않고서, 환경에서 제가 일조할 수 있는, 가장 잘하는 역할에 임하면서 작용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렇다 한 마음이다 보니 남이 보면 아마 '너 그래서는 어디 가서도 일 못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아 밤만 되면 무서워서 죽고 싶네요 그냥.

아마 제가 하는 일에 애정이 없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십대 후반, 마음이 있는 일이 있다고는 해도 새롭게 몸과 마음을 편하게 옮겨 갈 용기가 나지 않네요.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면 무시할 수 없는 지금까지의 경력과 더불어 인정되는 급여를 생각하면, 제 자신을 죽이고 또 죽여서라도 아직은 해야 할 것만 같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타인과의 어떤 상황이 되도록 괜찮아지려면.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질문자님이 올려주신 사연을 보면 지금 직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 같네요.

우선 첫 번째로 이야기해주신 내용을 보면 사람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에 종사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요즘 언론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진상고객, 갑질 손님’에 국한된 경우라면 말씀하신 두려움을 느끼는 일도 자연스러울 것이고, 얼마든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요구를 하는 등의 대처로 극복해볼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고객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쓸 수 있고,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지나치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얼굴이 붉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두려워 피하게 되는 상황은 전형적인 사회공포증의 모습입니다.

사회공포증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면밀하게 관찰될 수 있는 사회적인 상황(낯선 사람과의 대화, 발표 등)에서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출되었을 때 나쁜 평가를 받을까 봐 염려하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떨거나, 식은땀을 흘리거나, 말을 더듬는 등의 불안 증상을 보일까 봐 염려하게 됩니다.

이 같은 증상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당황해서 숨기려다 보니 긴장은 더욱 고조돼 심할 경우 공황 발작까지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사회공포증은 성인기에 처음 발병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며, 스트레스와 수치심을 주는 사건 발생 이후나 새로운 사회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삶의 변화(결혼, 이직 등) 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공포증은 사회적인 상황에서 왜곡된 생각으로 인해 공포, 창피함, 그리고 부끄러움을 경험하고 이는 불안과 회피를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대개 어떤 실수나 실패에 관한 두려움, 창피함과 망신에 관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왜곡된 생각을 확인하게 되면 당신의 생각이 진실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논리와 증거를 이용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증명해볼 수 있습니다.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들을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목록을 정해서 정리해보고 쉬운 것부터 차례로 실행해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점차 어려운 상황에 나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질환을 악화시키는 회피를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스스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요가나 명상, 호흡조절을 익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언급한 내용들은 혼자 실행해 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제한되는 점들이 있어 대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자와 함께 진행되는 과정들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병, 의원에 방문하여 치료자와 상담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의욕적인 사람과 일을 함께 해나가는데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언급해주신 내용이 제한적이라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진취적인 사람과의 어려움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해야 하는 내 능력에서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업무를 견디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작성자님은 진취적이라고 표현하는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며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심적인 부담이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실패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이러한 상황을 피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나쁘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성과를 내는 일에 방해가 될 것이고, 부담이 되는 일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겠죠. 그리고 내가 유능하지 못하다는 관점을 강화시킬 뿐입니다.

 

작성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몇 가지 조언을 드릴 수 있겠네요.

우선 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정확한지 아니면 왜곡되어 있는 내용인지 평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성자 분이 어느 정도로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해 나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로 어떤 일을 해내는데 무리가 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능력이 있지만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나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나, 비슷한 위치에서 일을 하는 지인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실제로 내가 가진 재능, 장점들을 검토해보세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요소들을 확인하고, 내가 나은 부분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내가 가진 부족한 점을 확대해서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힘든 일이지만,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을 그만둘 때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패턴을 확인해보세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나, 어린 시절부터 부담을 느껴온 일들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왔는지. 그 일들을 피하려고 노력했나, 최대한 끝내려고 노력을 했나.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패턴을 확인했다면, 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대신, 내가 가진 실제 능력을 파악하고 한계를 받아들이고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탐색해보세요. 내가 가장 낫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노력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고, 작은 과제들을 설정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보세요. 

이러한 노력은 어려운 일이지만, 피하려는 경향을 마주 보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노력입니다.

 

작성자님이 언급해주신 내용만으로 파악이 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대개 이러한 어려움은 어린 시절 자존감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의 정도가 깊다면 조금 더 이러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상담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질문자님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모두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명쾌한 도움을 드리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답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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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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