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정신과, 열네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음식과 관련된 우리말

우리나라에는 음식과 관련된 다채로운 단어들이 있습니다. 흔히 사용하는 식구(食口)란 단어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떡 본 김에 굿한다.”, “누워서 떡 먹기” 등 우리나라 대표 음식인 떡에 관한 재미난 속담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인들과 처음 만났을 때도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묻고 “다음에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자.”라는 말을 남기며 헤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음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식은 정신과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 음식, 사랑을 나누는 행위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고 첫 번째로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요? 산모는 오랜 기다림 끝, 첫 번째 만남에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합니다. 즉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지요. 아이가 어머니의 모유를 먹는 행동은 어쩌면 출생 후 어머니의 사랑을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일 것 같습니다.    

신생아가 영유아, 소아, 청소년 그리고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부모님의 많은 도움을 필요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양분 공급입니다. 음식의 섭취는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서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대상관계이론가인 위니콧(Donald Woods Winnicott)은 아이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인 식욕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아이는 울음 등을 통해 배고픔을 표현하고 어머니는 이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려 음식을 제공합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시의적절하고 일관된 태도를 통해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되고 통합적인 대상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 음식과 관련된 정신 질환

그렇다면 음식과 관련된 정신과적 질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대표적인 예는 식이장애입니다. 식이장애는 체형과 체중에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는 장애로 폭식, 구토, 굶기, 과도한 운동 등과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식이장애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신경성 대식증(bulimia nervosa), 야식 증후군(night eating syndrome) 등이 있습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체중증가에 대한 지나친 공포, 체중 감량에 지나치게 집착이 특징입니다. 이 질환을 겪는 환자들은 체중 증가에도 과도한 두려움을 가지며 식사 제한합니다. 환자들은 하루 동안 먹을 음식 리스트를 세심하게 작성하고 칼로리를 정확하게 계산합니다. 환자들은 식욕을 지나치게 억제하지만 내면에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일부는 요리를 즐기고 과자, 빵 등의 음식을 남몰래 숨겨 두기도 합니다. 청소년 시기, 음식 섭취 거부 원인으로는 체중 조절을 통한 자기 통제감, 자기 처벌적 성격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어머니 사랑의 거부,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신경성 대식증은 반복적인 폭식과 구토와 이뇨제 사용 등의 제거행동을 특징으로 합니다. 신경성 대식증 환자들은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 비해 정상 체중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배 속이 빈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헛헛하다”고 말을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이 빈 듯하고 허전한 것을 말할 때도 “헛헛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렇듯 감정과 식욕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울감, 외로움, 허전함, 분노 등을 느낄 때 배고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를 정신과적으로는 감정적 허기(emotional hunger)라고 합니다. 폭식을 하는 행위는 결핍된 사랑과 인정을 음식으로 대신하여 인위적으로 채워 넣는 행위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토는 억지로 넣은 결과물들이 내면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외부로 뱉어지고 이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 함께 하는 식사- 사랑을 나누는 가장 쉬운 방법

음식은 개인에 따라, 그리고 민족과 인종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음식이 가지는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는 사랑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시나요? 그렇다면 김건모의 유행가 가사처럼 밥 한 번 못 사줬다고 뒤늦게 후회하지 마시고, 따뜻한 밥 한 끼 같이하며 사랑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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