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버닝썬 게이트 문이 열렸다. 암흑의 성문이 열린 거 같다.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암흑의 성 안에는 생각보다 난장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도 ‘설마 현실일까?’라는 일말의 바람이 있었나보다. 실제라고 하니 제법 충격이 적잖아 있는 모양새다.

보고 싶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문이 열린 건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이전 연재(스카이 캐슬 드라마가 우리에게 남긴 것)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전투구의 장이고, 대부분의 자원은 이전투구의 장 밖에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흙탕 안에서 고기 한 조각 더 먹겠다고 싸울 일이 아니라, 진흙탕 밖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버닝썬 게이트가 열린 것은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진흙탕 밖에 무엇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흙탕 밖(암흑의 성 안)에는 너무나 많은 자원(돈)들이 불법적인 형태로 돌고 있었다. 그만큼 진흙탕 안(암흑의 성 밖)에는 적은 양의 고기를 가지고 이전투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사진_픽셀


대부분의 국민이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은 결국은 여기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든 돈으로 귀결된다. 이전투구 장 밖에 있는 자원(돈)을 좀 더 진흙탕 안으로 들여올 수 있다면, 우리네 사는 모습이 조금은 더 편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열린 성문이 다시 닫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전투구 장 안에서 어떤 규칙으로 싸울래?’보다 더 중요하고 많은 것이 이전투구 장 밖에 있다. 이 기회에 더 많은 자원을 암흑의 성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면 우리네 사는 것은 여전히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또다시 불법적인 방식으로 너무나 많은 자원들을 휘두를 테니까.

그런 측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번 연재는 악플을 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악플을 감수하는 건 필자의 스타일이 아님에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우려(?)와 함께 기술해보려 한다. 

 

이전 연재(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그리고 김상교)에서 사건과 연관된 인물에 대한 악플은 상대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화두를 던졌었다. 왜냐하면 그 저변에는 ‘그 인물들만 처벌받으면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논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그래 왔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깝게는 탄핵 정국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최순실이 구속되었고, 일견 국민들의 승리로 비치며 세상이 바뀔 것만 같았다.

필자가 탄핵 사건의 가치를 폄하하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게 있다. 문제의 본질은 사건과 연관된 사람(박근혜, 최순실)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구속되면서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인 양 멈춰서버렸다. 탄핵정국 때 응축된 그 에너지가 해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버닝썬 게이트가 생겼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최순실 사건,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 모두의 공통점이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공권력이 돈을 가진 특권 계층과 결탁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다. 그런데 이런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일탈 문제로 환원해서 바라보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장담컨대, 승리, 정준영, 김학의 등이 응당하게 처벌을 받더라도 비슷한 일은 또 생길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이 구속되어도 또 공권력과 결탁한 비리들이 발생한 것처럼.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게이트와 연관되어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일반 인구 집단에서 벗어난 특별한 사람이고, 이들을 처벌하면 해결이 되는 것처럼 여긴다면 문제는 반드시 반복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면 연관된 사람들에 대한 악플로만 가득한 것이 현재 상황인 것 같다. 아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 왔다.

왜 그럴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심리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심리학 실험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성향 귀인하고, 자신의 행동은 상황 귀인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자신의 행동은 현재의 어떠한 상황 때문에 이러한 행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음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한 잘못은 내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그 사람은 원래 그러한 사람이다.’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 자체의 문제로 그러한 잘못이 생겼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볼 때 이렇게 다른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에게 만연해 있는 성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내가 한 행동은 그 행동을 했을 때의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잘못에 대해 합리화할 만한 근거들을 찾기 용이하다는 뜻이다. 상황 귀인하기가 무척이나 쉽다. 게다가 내 잘못이 아니라 상황으로 탓을 돌리면 내 마음도 편해진다. 더더욱 상황 귀인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쉽다.
 

사진_픽셀


하지만 타인의 경우에는 타인이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 주변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내가 그 상황에 있지를 못 했으니까. 게다가 타인의 잘못이기 때문에 내 죄책감을 건드릴 일도 없다. 그리고 타인이 잘못을 했을 때 나쁜 라벨링을 해놓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단 나중에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을 당할 확률을 줄여준다.

또한 집단 내에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떨어뜨리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 그 말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처럼 거대한 인간 사회에서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승리, 정준영, 김학의 등이 어찌 된다 해서 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 일은 만무하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유의하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거대한 사회에 살지 않았다. 진화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20~30명 정도 되는 작은 부족에서 생활을 하였다. 작은 부족 사회에서는 1~2명의 사회적 지위 하락은 가시적으로 나의 사회적 지위 상승과 연결되는 확률이 훨씬 높다. 게다가 집단 내 한 명을 제물 삼게 되면 나머지 구성원들의 단결력도 상승한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과거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변하였더라도 과거에서 형성된 마음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참조

 

“오케이.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상황 귀인하고, 타인의 잘못은 성향 귀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뭐?”

이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타인의 잘못을 성향 귀인한다는 것은 ‘나는 아니다.’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 사람 자체의 문제니까 쉽게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으면 놀랍게도 비슷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원래 타인의 잘못을 비판할 때 가졌던 논리를 그대로 적용을 한다면, 내가 잘못을 저지르는 확률도 줄일 수 있을 텐데, 사람은 그러하지 못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이것은 내 성향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렇게 나쁜 일들은 반복되는 것이다.

악플은 성향 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악플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사실에 기인한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적인 이해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20~30명 정도 되는 작은 부족사회에서는 성향 귀인을 통한 ‘사회적 지위 하락’이 꽤 강력한 효과를 지녔다. 한 번 하락한 사회적 지위는 다시 올리기 힘들었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낙인은 꽤 영속성을 가지고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부족사회 내의 다른 구성원에게도 꽤 큰 교훈으로 전달이 된다. 바로 옆에 잘못을 저지르고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늘 보이니까.

하지만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잘 작동되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집단의 크기가 너무 광대하다. 실제로 잘못을 저질러 놓고 불법 또는 탈법적으로 돈을 빼돌려서 떵떵거리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을 저질러도 지역만 좀 옮기면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김학의 전 차관도 변장까지 해가면서 그런 식으로 태국으로 날으려고 한 건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낙인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눈으로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집단 내 다른 구성원에게 교훈으로 전달되는 힘도 약하다. 최순실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피부에 와 닿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 진화 역사에서는 ‘성향 귀인’을 통한 사회적 낙인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안타깝게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똑같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화심리학적 사고로 보면) 우리는 과거에 형성된 마음이 그대로 작동하여 우리 조상들이 하던 대로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특정 누군가를 비난하는 악플 행위는 그다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도덕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대처 방식이 더 효용적으로 작동을 하는지 인간 심리에 기반을 두어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사진_픽사베이


필자는 여기서 더 이상 ‘성향 귀인’하지 말고 ‘상황 귀인’하자는 주장을 하고 싶다. 잘못을 저지른 개개인을 비난하고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먼 과거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인간 사회 규모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황 귀인’하려는 노력이다.

승리, 정준영, 김학의 등 몇 명 처벌받는다고 해서 지금의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최순실이 여전히 감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공권력과 권력층의 유착 사건이 반복된 것처럼. 결국 권력층에 올라가는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저지를 사람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돈을 받으면 뒤를 봐줄 공권력들도 차고 넘쳤다. 개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지금의 구조적 상황이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게이트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렇게 바라보는 게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사람은 눈에 보이고 실체로 느껴지지만 구조적 문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로 덜 느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향 귀인’하지 않고 ‘상황 귀인’하려는 노력.

이 글은 정치적 글은 아니기에 특정 정책을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방향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하고 싶다. 공수처(고위 공직자 수사처)처럼 권력을 감시하는 눈을 늘리는 방법, 사법기관 장들도 선거를 통해 뽑아서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방법, 또 권력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는 방법 등 상황을 바꿔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 절실히 고민해야 할 때이다.

최순실 사태처럼 또 승리, 정준영, 김학의 등이 처벌받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양 끝나는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일이 마무리가 된다면, 권력층과 공권력은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계속 호의호식하게 될 테니까. 

 

다음 연재에서는 ‘장자연 사건은 어떻게 10년이나 묻힐 수 있었을까?’, ‘권력층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 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염병과 집단면역 문제와 연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 것이다. 집단면역에 맞서 싸울 우리의 힘은 결국 전염력(복제)이라는 이야기를 할 거다. 버닝썬 게이트도 또 다신 집단면역에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에 맞서 싸울 우리의 힘은 공유와 복제가 아닐까 한다. 이 글에도 공감이 되셨다면 공유와 복제를 부탁드린다. 그것이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 생각한다.

암흑의 성 밖으로 좀 더 많은 자원이 나오게 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이건 우리네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된 일이다. 

 

버닝썬 게이트 문이 열렸다. 문이 열렸다고 문만 닫으면 끝날 일이 아닐 것이다. 구조적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소중한 계기로 작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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