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언젠가 꽤나 먼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는데,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 잠을 잘 못 주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잠이 빨리 들지만, 새벽에 저절로 잠이 깨버려서는 다시 잠을 못 잔다고 하시거나, 잠이 빨랑빨랑 안 와서 힘들거나, 어딘가가 아파서 잠이 잘 들지 않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도 늘 피곤한 느낌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하거나 그렇지요.

안 그래도 제가 정신과 의사다 보니, 다들 하나씩 하나씩 물어보시더군요. 약을 먹으면 중독되는 것 아니냐, 정신과에 이상한 사람만 가는 거 아니냐, 약 먹으면 치매 걸리는 것 아니냐, 대부분 너무나 여러 번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히는 편견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내과나 신경과에서 약을 드시고 있었습니다. 제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으시도록 권유드리긴 했지만, 그리 좋아하시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과 환자에 대한 편견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편견은 정말 차고 넘칩니다. 조현병 환자가 범죄에 연루되기만 하면 부정적인 기사와 댓글이 넘쳐납니다.

또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정신과에는 정말 다 미친 사람이 오나요?"
"상담을 하다 보면 같이 미칠 것 같지 않아요?"

이런 이야기 속에는 '정신과에는 미친 사람이 오는 곳'이라는 편견이 들어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정신건강의학과에 치료를 받으러 자기 발로 찾아와도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기 전 잠만 못 자요. 다른 이상은 없어요."
"아니에요. 전 정신과 환자는 아니에요. 그냥 잠만 잘 잘 수 있으면 돼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참 답답합니다.
 

사진_픽셀


정신과 의사에 대한 묘한 시선과 편견

아닐 것 같지만, 의사들 안에서도 정신과 의사에 대한 묘한 시선과 편견이 있기도 합니다.

의대를 다니면서 혹은 인턴을 하면서 정신과를 지망한다고 하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이런 말을 듣기도 하고, 아주 드물게는 "너도 정신과 환자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걸 바꿔보면, '눈이 나쁘니까 안과를 지망하는 거지?' 혹은 '못생겼으니까 성형외과를 지망하는 거지?' 이런 말이랑 똑같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바꿔놓고 생각을 하면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예전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할 때, 타과에서 본인들이 환자에게 실수를 해놓고는 이를 따지는 환자에게, 정신과 환자 아니냐며 뒷수습을 정신과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행동 속에도 '정신과는 이상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정신과를 지망하던 시기에는 정신과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습니다. 경쟁률로 치면 3:1까지 치솟던 시절이었지요. 덕분에 전 처음 도전에는 정신과에 떨어지고,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지원해서 겨우겨우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렇게 인기가 많은 시절임에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존재했습니다. 과거에는 더했다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에 대해서도, 의료인들 안에서도 이러한 편견이 존재하는데, 환자들이 받는 편견은 더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런 편견의 중심에는 광기(Madness)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흉악한 범죄자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저런 미친놈은 정신과에 보내야 한다'라는 댓글이 단골로 등장하는데, 흉악범죄가 정신질환과 관련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교도소를 가야 하지, 정신과를 갈 일은 아니지요. 정신과 의사가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한들, 범죄자를 교화시킬 수 있는 정도도 아니고, 정신과 병원이 교도소도 아닙니다. 또한 이러한 '광기'가 타인에게 전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정신과에 가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운 마음을 들게 만들어 버렸지요.

이렇게 어른들과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주입을 한 결과, 결국 '너 정신과 가봐라'라는 말은 욕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신과는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이 되어버리니까, 정작 치료받아야 할 사람은 잘 오지도 않고, 치료받도록 도와줘도 치료를 극구 거부하고... 치료를 강제로 할 수도 없고 안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언제 가야 하나요?

우선, 감기가 걸리면 다 병원에 갈까요?

아니죠. 따뜻하게 몸을 감싸고 잠도 자고, 비타민도 먹고, 음식도 잘 먹고 하다 보면 낫기도 하고요. 

그래도 코가 막히고 기침이 나와서 약국에서 약을 사 먹다 보면 낫기도 하지요.

근데 시간이 지나도 감기가 낫지도 않으면서 노란 콧물도 나고, 기침도 심해서 가슴도 아프고, 열도 많이 나면 그때는 동네에 있는 내과나 소아과 의원을 가야겠지요?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거나, 뭔가 더 복잡한 검사나 처치가 필요하다면, 의사의 권고에 따라 종합병원이나 큰 병원에 가서 각종 피검사나, CT를 찍거나 하면서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도 하고 그런 것이죠.

정신건강의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친구와 다툼이 있고, 가족과 사이가 안 좋고. 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도 많이 되고 잠도 안 오고 그러다가도, 주변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수다도 떨고 고민을 털어놓고 그러다가 그냥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직장에서 사정이 나아지거나, 친구와 화해를 하거나, 가족과 터놓고 이야기를 할 상황이 생기면 또다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정신과를 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야기를 해서 마음의 짐을 덜 수도 있고, 해결책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근데 몇 주, 몇 개월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마음이 늘 불안하고 우울하다면? 또는 나를 힘들게 했던 상황이 이젠 다 나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이 오지 않고, 늘 불안하고 편하지 않고, 우울한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요?

이럴 때는 병원을 꼭 와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오셔서 힘든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 약물치료를 한다면 금방 좋아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더 심해져서 밥도 들어가지 않고,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혹은 나 혼자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이상한 것이 보이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

이런 경우는 정말 정신과 병원에 꼭 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와서 이야기를 하고 약물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그냥 있으면? 절대 그냥 좋아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신과에 간다는 것은, 내가 미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정신과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만 오는 곳일까요?

정신과 의사는 좀 이상한 사람들일까요?

아니에요. 정신과 의사들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정신과에 오시는 분들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만 오는 사람들 증상이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겉으로 부러진 곳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똑같이 아픈 사람이고, 따라서 정신과 의사도 그저 아픈 사람 치료해주는 의사일 뿐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정신과에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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