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 정신과약은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과약물들은 대부분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그 수용체에 영향을 주는데, 원래 우리 몸은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도파민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을 자가적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이 심한 상태가 되면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무너지고 생산효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가 됩니다. 약물은 이러한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보조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전적으로 약물에 의존해서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수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면 뼈가 제대로 붙을 때까지 목발이 필요하듯이, 정신과약물도 딱 그 정도의 역할을 합니다. 

단 의존성과 내성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잠이 잘 오니까 그만 먹어야지’ 라며 본인이 자의적으로 약을 끊거나 ‘오늘은 너무 불안하니까 이틀분을 먹어야지’ 등의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복용기간과 양에 대해서 전문의와 신중한 계획하에 관리하신다면 안전하게 약을 끊으실 수 있습니다.

 

2. 정신과약을 먹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

정신과약을 오래 먹으니 머리가 나빠지더라, 치매에 걸린다고 하는 소문이나 기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 벤조디아제핀이나 항경련제, 항콜린성 성분이 있는 약을 과도하게 먹었을 경우, 일시적인 기억력, 인지기능의 저하가 생깁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시적인 반응이며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아닙니다. 

실제로 10년 넘게 정신과약을 장기 복용하는 환자들 중에서도 기억력이 유의하게 저하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며 정신과환자들이 정상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사실도 아직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3. 졸피뎀(스틸녹스)은 정말 그렇게 위험한 약일까?

많은 방송과 인터넷 기사에서 졸피뎀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몇몇 연예인들이 남용하거나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등의 정보로 마치 졸피뎀을 환각물질, 먹어서는 안 되는 약으로까지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졸피뎀은 FDA 승인을 받은 약물이며, 수면장애 환자들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으로 당연히 안전성을 입증받은 약물입니다. 2016년 3월 졸피뎀과 자살의 관련성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졸피뎀을 하루 9알 이상 먹을 경우 자살의 위험도가 정상에 비해 2.07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논문은 졸피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기사들에서 무수히 인용되었지만 그 기사들에선 ‘하루 9알 이상 먹을 경우’라는 내용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저 졸피뎀이 자살을 부르는 약처럼 자극적으로만 서술되어 있지요. 

졸피뎀의 하루 권장량은 1알입니다. 졸피뎀이 아니라 그 어떤 약도 하루에 9알 이상 먹으면 위험해집니다. 졸피뎀으로 인한 대부분의 사고는 수십 알이 넘는 졸피뎀을 한꺼번에 복용하거나 하루에 4~5알 이상씩을 장기 복용했을 때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물론 졸피뎀도 백가지가 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편하게, 별생각 없이 먹는 타이레놀조차도 200가지가 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졸피뎀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민감하고 겁을 먹는 것은 선택적 표본 오류와 자극적인 기사와 정보에 학습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부작용이 없는 약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내성과 의존이 전혀 생기지 않는 약물이란 없습니다. 약물의 위험성이란 약물 그 자체보다, 약을 얼마나 규칙적으로, 정량을 먹느냐 하는 복용 습관과 적절한 관리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4. 술하고 정신과약을 같이 먹으면 큰일 난다?

많은 분들이 회식이 있어서 그날은 걱정돼서 약을 빼먹었다고 하십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술과 정신과약을 같이 먹는 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정신과 약물에 해당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약은 수면제와 신경안정제인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등입니다. 알코올은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며 GABA라고 하는 수용체에 작용하는데 알코올과 분자구조가 비슷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역시 이와 비슷한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술을 함께 먹으면 상호작용과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수면제의 효과가 너무 강해진다거나, 부작용이 심해집니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술도 마시면 안 되나요? 하는 것은 좀 애매합니다. 음주 습관과 주량, 마시는 술의 종류에 따른 에탄올 농도 등, 변수가 다양하니까요. 꼭 술이 아니더라도 정신과 약물의 혈중농도에 영향과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은 무척 많습니다. 담배와 건강보조식품, 과도한 설탕, 나트륨도 이에 해당됩니다. 또한 정신과약을 불규칙하게 복용했을 때 생기는 단점들에 대해서도 고려한다면 이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술을 마셨을 때 약을 정해진대로 먹는 게 안전할지 거르는 게 정답인지는 무척 애매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이 조현병이나 간질에 대한 약물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소주 한 병 이하의 음주는 큰 이상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설명을 드립니다. 하지만 술을 드셨을 때 정신과약을 먹을지 말지를 전제로 고민하실게 아니라 약을 드실 때는 가급적 술을 드시지 말 것을 권유드립니다. 알코올은 우울과 불안, 공황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약물과의 상호작용을 배제하고서라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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