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져 클리닉을 방문하는 비교적 젊은 연령의 상당수는 자신이 ADHD가 아닌가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치매에서 이런 인지기능 저하가 잘 나타나지만, 노년층에서 주로 생기기 때문에 20-30대에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경우는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마련이지요.
"성인ADHD"라 부르는 것은 ADHD의 증상이 성인이 되어 나타나거나, 아동기 ADHD와 다른 질병이기에 구분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별도의 진단코드가 있는 진단명도 아니지요.
기본적으로 ADHD는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로 아동기에 생겨 오랜 기간을 두고 문제가 지속되는 질병입니다. 발달하면서 증상과 그로 인한 문제의 모습이 달라지는데, 성인기의 특징이 아동 시기에 생기는 것과 다를 수 있어 구분하기 위한 명칭일 뿐 근본적으로 다른 질환은 아닙니다.
성인기에 생긴 ADHD가 별도의 질병이라는 가설도 있는데, 여러 연구를 통해 성인기에 생겼다기보다는 늦게 발견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많게는 치료받지 않은 ADHD의 절반 정도가 성인기까지 증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경우에 증상을 모르다 성인이 된 이후에서야 문제를 알게 될까요? 그리고 왜 진단이 쉽지 않을까요?
※ 주의(Attention): 어떤 경험(내외적 자극에 가까운 것)에 대한 의식의 흐름에 대한 기술로,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 중 중요한 자극에만 주의를 돌리고 유지하는 것을 집중(concentration, focused attention)이라 합니다.
1. 잘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Compensation / Coping skill)
증상이 있더라도 이를 미리 알고만 있다면 나름대로의 보완 방법으로 학업 기능, 대인관계, 직업기능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남들보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파악했다면 남들이 한 시간이면 외울 것을 30분 더 투자해서 따라잡는 식의 방법입니다. 또는 실수가 잦다 보니 한 번 확인할 것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실수를 줄이는 방법 등도 있지요.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 가족, 선생님과 같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조력자들이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학업은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지만, 사회에 나와 그러한 도움이 갑자기 줄어들기 때문에 이 연령대에 주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능이 우수한 경우에는 주의력이 떨어져도 성적이 괜찮게 나오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는 크게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부는 별로 안 했는데 몇 번 책만 봐도 성적이 잘 나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요.
2. 현재의 증상 + 과거의 진단
미국 정신과협회의 진단기준에 따르면 ADHD는 12세 이전에 증상이 발생하여야 합니다. 이전 버전에서는 그 기준이 7세였으나 과소 진단되는 경향이 있고, 진단이 어려워져 최근 12세로 변경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에 생겼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발달장애이면서 이러한 진단의 문제로 12세 이전의 증상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큰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성인 ADHD를 진단하는 확정적 진단도구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 면담 평가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여러 평가 도구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 증상과 현재 평가 시점의 불일치가 발생해서 100% 정확하다 하기 어렵지요. 따라서 가족과 주변 사람의 보고(사실 이것도 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부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 false positive paradox), 당시 기록(생활기록부, 일기, 동영상 등)을 토대로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3. 다른 증상이 더 두드러지고, 구별이 쉽지 않다.
짧게는 7-8년, 길게는 10년-20년 이상 증상이 지속되다 보니 ADHD의 핵심증상으로 인해 여러 영역에서 기능 저하가 생기게 됩니다. 충동 및 감정조절, 수면 위생과 같은 일상생활 관리에서부터 학업, 대인관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의 문제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항상 접하게 됩니다.
목표 달성의 실패, 크고 작은 실수, 조급함, 위험한 행동 등이 반복되면서 주변에서 게으르고, 특이하고, 이상하고,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자존감이 점차 낮아집니다. 불안과 우울이 생기고, 술이나 담배, 약물과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ADHD로 인해 동반되는 다른 질환의 경우도 있고, ADHD가 없지만 다른 질환으로도 같은 주의력 저하의 핵심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ADHD에 대한 한 연구에서는 증상이 다 맞고, 기능 저하가 있는 53%의 청소년, 83%의 성인이 연구의 시작 단계에서 진단이 배제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다른 질환 때문이었습니다. 즉, ADHD로 인해 다른 질병이 동반되었거나, ADHD가 없이 다른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주의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어 진단이 어려울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인기에 ADHD를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진단이나 치료가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랜 기간 문제를 일으켜온 부주의함과 충동성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삶이 바뀌고 생활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니 합리적인 의심은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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