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제 어머니는 첫 결혼 후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혼하고 재혼하여 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평탄치 않았지요. 남편의 폭력에, 경제력도 약했습니다. 결국엔 다시 이혼하셨습니다.

친정엄마는 금전적으로  저에게 의존하시는 상태고, 주위 친구분들도 거의 없습니다. 용돈은 쓰실 만큼 드릴 테니 노년을 좀 즐기셔라, 사람들과 어울려라 말씀을 드려도 돈이 든다는 이유로, 자신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며 자꾸 저에게 집착합니다.

더 심한 건 사위와의 갈등입니다. 자꾸 자기를 힘들게 만든다고 합니다. 엄마 물건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사위 짓, 현관 앞 본인 신발이 엎어져있어도 사위 짓, 무슨 일만 있으면 사위 짓이고 시댁 식구들이 함께 모함하고 있다고 절대적으로 믿고 계시다는 겁니다.

남편이 좀 더 신경 쓰고 잘해드려도 그때뿐... 무슨 일이 있으면 장모를 약 올리려고 사위가 일을 벌였다고 합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엄마라고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사위한테서 딸을 지키고, 자신은 굳건히 버티시겠다고...

정신과를 찾아야 하나요?

거리를 두고 싶어도 혼자 계실 엄마 생각에 또 마음이 약해져 오시라오시라 하는데 그때마다 사단이 생깁니다. 도와주세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글쓴이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려고 하는 어머니 때문에 많이 힘들고 지치신 것 같습니다.

모친께서는 경제적인, 물질적인 의존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글쓴이에게 의존하려는 듯한 모습일 보이는데, 어찌 보면 경제적인 의존보다도 더 까다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 분은 훌륭한 인격을 갖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칭찬받을만한 일이지요.

실패한 초혼과, 이혼으로 끝난 재혼, 폭력과 경제적 궁핍까지, 모친께서는 분명 남들보다 힘든 삶을 살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빠듯한 삶의 결과로 타인과의 긍정적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 두려움이 생겼고, 자신의 혈육이고 굳건히 돌보아주었던 글쓴이에게 그만큼 더 의존하는 마음이 생긴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어머니께서 힘든 삶을 살아왔다고 해서 현재의 다소 뒤틀린 관계로 글쓴이 분을 괴롭게 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다소 매정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으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친구나 애인 관계보다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이 있습니다. 친구나 애인은 내 취향과 성향에 따라 가려 사귈 수 있지만 가족은 그럴 수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합이 잘 맞지 않는 인간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인 것처럼, 글쓴이 분과 어머니는 어떤 면에서 잘 맞지 않는 사이인 것이지요. 부끄러워할 것도, 굳이 숨길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글쓴이분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된다면 결국 지치고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어 모친에 대한 적개심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계속 어머니를 사랑하는 대상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소모적인 관계는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어머니에게 잘해드리고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효도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지금의 관계가 지속되는 것은 어머니의 성장과 인경의 완성을 가로막는 장해물일 뿐입니다.

어머니 스스로 인생의 충만함을 느끼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것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찾고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연세에 비해 유아적인 어머니의 대인관계 양상에는, 냉정하게 이야기하여 글쓴이분의 지분도 다소나마 있을 수 있습니다.

 

당장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글쓴이분이 어머니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목록이 완성되면 우선순위를 정해서 어머니에게 반드시 해 드려야 하는 일과, 어머니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하여 후자는 과감히 모친에게 맡기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도 분명 변화된 일상에 적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마음이 너무나 지치고 힘들다면, 말씀하신 대로 정신과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갈 때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정신과 의사가 좋은 가이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를 발판으로 삼아, 이번 기회를 통해 진정 행복한 가족으로 거듭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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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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