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년 전, 대한민국은 비트코인의 세상이었습니다.

'친구가 일주일에 몇 천만원을 벌었대'...
'안 하면 바보래. 1년 연봉 한 달 만에 벌 수 있어.'

정치인, 변호사, 교수님,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대학생들까지.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모두가 뛰어들었고 수십 가지의 가상화폐가 새로 생겼으며 거래소 역시 우후죽순으로 늘었습니다. 검색순위를 몇 달 동안 장악하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만 같던, 흡사 신앙 같은 열기는 2017년 12월을 기점으로 거품처럼 스러졌습니다. 개당 3천만원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은 2019년 1월 300만원까지, 그야말로 10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거래량은 20분의 1로 줄고 해킹, 거래 중지, 사이트 폐쇄 등의 악재만을 경험하다 ‘비트코인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회자될 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았습니다.

전세금을 다 날린 사람, 결혼 준비할 돈을 투자했다가 반도 못 건지고 파혼당한 사람. 대학등록금, 적금, 대출과 제2, 제3금융권 사채…. 절망과 욕망이 아우성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복마전을 연상케 했지요. 2019년 5월 현재, 연초와 비교해서 두배 이상, 700만원까진 오른 비트코인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합니다. '가즈아!!'가 유행했던 그때처럼, 지난 1년 동안의 절망과 우울감, 좌절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듯 다시 사람들의 욕심도 들썩거립니다.
 

사진_픽셀

 

Q. 카드나 화투 또는 인터넷 도박, 토토 또는 단기시세차익을 노린 주식이나 선물거래를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혀 한 적이 없다/ 명절이나 휴가 등 특별한 날에만 한다 주 1회 이하/ 주 2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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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이며 가장 비싸게 팔리는 곳입니다. 비트코인을 기준으로 세계 전체 거래량의 21%가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고 미국보다 23% 더 비싸게 매매되고 있습니다. (상기 내용은 2017년 12월 당시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1.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만 365일 24시간 가상화폐의 매매가 가능하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가격변동폭과 매매시간이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하루 종일 이것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비트코인의 가격이 반토막이 날 수도 있으며 2018년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이런 일이 수십 번 있었습니다. 많은 회사원들, 대학생들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수업 도중에도, 근무시간에도, 여자 친구와 있으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취업을 포기하고 비트코인에 전업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비트코인 가격을 확인하고 새벽에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2. 가상화폐 매매에 대한 그 어떤 규제도 없다.

주식을 예로 들면, 그 주식이 단기간에 과하게 오르거나 폭락할 때 서킷브레이크 등의 완화 혹은 규제장치가 발동합니다. 작전세력 혹은 고의적으로 주가를 조작하는 움직임이 의심될 시 금감원과 기관에서 거래를 정지시키거나 상장폐지 등의 제재를 가합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을 통한 암호화된 자산으로 아직 이것이 금이나 광물 같은 현물로 인정돼야 하는지, 달러나 유로 같은 화폐, 혹은 주식이나 채권 같은 개념으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규제나 법도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고요. 만약 작전세력이 통정 매매를 통해 의도적으로 가치를 뻥튀기하고 거래량이 많아졌을 때 가격을 폭락시킨 후 의도적으로 서버를 다운시켜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굉장한 기회로 생각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여길 겁니다.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비트코인 열기를 '그라운드 제로'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은 핵폭탄이 떨어질 지역이란 뜻입니다. 2018년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것을 경험했고 전재산이 반토막, 4분의 1토막이 난 사람들의 마음은 전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위험하건 말건 나는 큰돈을 벌었는데?' 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비트코인의 미래 가치, 정부규제와 안정성에 대해 충분한 고민을 했다면 이것은 투자입니다. 현명한 투자자이지요. 하지만 제게 오는 피해자들 대부분은 비트코인이 뭔지도 모릅니다. 친구가 하니까, 옆집 아줌마가 돈을 많이 벌어서, 큰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해서 너도나도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은 도박이죠. 스타벅스 커피가 비싸다고 투덜거리는 대학생들도, 반찬 가격이 너무 올랐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주부들도 수천만원을 뭔지도 모르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몇몇 사이트는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어 10시간 넘게 매매가 불가능했고 그 사이 가상 화폐 가격이 30% 넘게 폭락한 적도 있었습니다. 거래소가 해킹이 되어 수천억원어치의 비트코인이 외부로 유출된 적도 수십 차례가 넘습니다. 이로 인해 수백만원에서 3억원까지 손해를 본 이들이 집단소송을 했지만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가입 시 규약을 자세히 읽어보면 매매로 인한 어떠한 투자 손실에도 본인이 책임을 진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비트코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경제학자가 아닌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처럼 문외한이면서도 용감하게 비트코인 거래를 하고 계실 겁니다.

정신의학적으로 중독이란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가 있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지속적이고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것은 투자입니까, 도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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