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고민 끝에 이곳에 질문을 올립니다.

저희 부부는 주말부부이고 거의 한 달에 두 번 정도 아이가 아빠를 만날 수 있어요. 실은 저도 워킹맘이라,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고 아이는 7세, 아주 활달한 남아입니다. 핑계라 할 수도 있지만, 남편 손이 없으니 일을 힘들게 하고 퇴근해도 쉴 수가 없어요. 또 다른 직장에 출근하는 기분입니다.

친정엄마가 약간 도와주시지만 친정엄마도 아주 예민하고 화가 많으신 성격이라, 제가 피해 줄까 봐 눈치를 많이 보게 되어 이 또한 스트레스예요. 그런 엄마 밑에 커서인지 저도 화가 아주 많고 예민한 성격이기도 하고요.

 

가장 걱정되는 건 아이예요. 아이는 아주 천진하고 주눅 드는 성격이 아니긴 한데, 요즘에는 조금만 잘못을 반복해도 나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화가 생깁니다. 뭔가 가슴속에서 불덩이라 타오르듯 아이에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요.

최근에는 다시 생각해도 민망할 정도로 아이에게 폭언을 하기도 했어요.

“너는 바보야!! 이렇게 알려줘도 계속 잘못을 반복한다는 건 네가 바보이고 엄마를 무시해서라고!!”

이렇게 말이죠.

 

아무리 아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소리를 지르고, 아이가 울고 잘못했다고 하며 비는데도 화가 풀리지 않는 제 자신이 정말 미친 거 같아요. 하지만 풀리지 않는 화가 계속 가요. 쭉. 시간이 지나 아이가 내 눈치를  많이  보지만 그래도 풀리지 않고, 자는 아이 모습을 보며 후회하고 다음 날 아침엔 또 어김없이 짜증과 화를 퍼붓고 반복반복…

약물치료를 받아볼까 싶은데 선뜻 용기도 나지 않고, 지인에게 말하기 부끄러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면 점점 더 심해져서 정말 아동학대를 하는 지경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 겁이 납니다. 겁에 질린 아이도,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도 너무 싫어요.

 

화가 조절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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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입니다. 사연 잘 읽었습니다. 저도 느끼는 바지만, 육아는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이 귀여운 아이에게 어떻게 화를 낼까 싶다가도, 아이가 떼를 쓸 땐 오만 정이 다 떨어지고, 속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오는 경험, 다들 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어리고 취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아이는 성인이 아니죠. 우리가 아이에게 성인의 규범을 지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아이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또한, 그런 기대로 인해 아이에게 더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요.

아이는 성인의 축소판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배우자나 친구에게 거는 기대와 같은 잣대로 아이를 바라본다면, 아이에게는 상당히 버거운 무게입니다. 아이는 말 그대로 아이일 뿐이죠.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는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셔야 할 것 같아요. 마음의 그릇에 불안,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담겨 흘러넘치기 직전이 아닌가, 하고요.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 대상이 아이와 같은 약한 존재일지라도 마음에 담긴 부정적 감정들이 출렁이고, 이내 넘쳐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만약 그런 상태라면, 당연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정신과적 상담과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겁니다.

부모가 마음이 많이 지쳐있거나 불안정한 상태라면, 주변에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굉장히 예민해지지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아이의 투정에도 마음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지요. 작은 사건도 감정이 자극받아, 언성을 높이게 되기도 합니다. 감정의 힘은 때로 자신의 생각과 인지를 변화시키기도 하거든요.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 또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는 부모를 보고, 분명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겁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을 둘러싼 세계, 그 자체일지도 몰라요. 부모가 늘 흔들리고, 불안정하다면 아이 또한 자주 겁먹고, 위축되는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그 반대의 명제도 사실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크려면, 먼저 부모가 마음이 편해야 하죠. 온기를 머금은 토양이 비로소 건강한 싹을 틔우는 법이니까요.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 부모 자신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아이와 엄마는 서로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내면의 감정을 서로 반영하며 관계를 형성합니다. 부모의 양육이 아이에게 ‘일방통행’ 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표정과 행동 또한 부모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지요. 화와 불안함으로 얼룩진 상호작용은, 부모와 아이 둘 다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반면, 사랑과 긍정으로 가득 찬 양방향 피드백을 통해, 아이와 부모 모두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짧은 글에서, 질문자님의 부모님과의 상호작용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요. 자신이 받았던 양육이 어떤 모습이었나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아요.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양육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을 통해 나, 세상,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사실상 고정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시각(스키마)은 오랜 시간이 흘러 더욱 단단해져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질문자님의 부모님께서 ‘화’로 아이를 키우셨다면, 그게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양육 패턴을 뿌리를 돌아보며 인식을 넓히는 일이, 현재 나타나는 양육 문제가 변하는 첫걸음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건, 너무 과한 자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누구 말마따나, 모두에게 양육은 처음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처럼, 아이에게 하는 행동이 부정적 영향을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고민하는 행동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겁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진짜 부모가 되어가는 거 아닐까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멀리서 질문자님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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