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공포에 대한 공포(fear of fear), 공황장애

공황은 격렬한 공포 반응이다. 불현듯 심장의 격렬한 두근거림과 목이 졸리고 숨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 전신의 발한과 열감이 느껴지고, 자신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혹은 이러다 쓰러지거나 미쳐버리는 건 아닌지 순간 두려워진다. 어떤 이는 두려움을 넘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겪기도 한다. 공황이 일어나는 시간은 1시간 내외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 찰나의 경험은 인생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공황장애는 단순한 공포의 경험, 그 이상이다. 말하자면 끔찍한 공포, 즉 공황이 불현듯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공포다. 공황장애 초기에 나타나는 반복적인 공황은 신체 내외의 자극에 대해 과도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해석을 유발한다. 자라를 보고 놀란 이가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만 봐도 소스라치듯, 작은 신체 변화에도 공황발작을 겪었던 순간의 경험을 떠올린다. 단두대에 목을 가누고 처형을 기다리는 이는 목덜미에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에도 혼절해버린다고 하던가. 공황 당시의 공포를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불러오는 데는 약간의 신체 감각의 변화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점차 매일 자신의 몸상태를 점검하는 일이 일상이 된다. 매일 몸상태가 같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어제와 다른 오늘의 신체 감각은 상당한 불편함을 유발한다.

공황장애의 늪에 빠진 이들은 점차 예전엔 일상이었던 것들을 경계한다. 대중교통,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 늘 하던 운동과 만남들이다. 분명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견뎠던 출퇴근 시간의 답답함도, 크게 상관치 않았던 길거리를 가득 매운 인파도, 운동 후의 일시적인 현기증과 가슴이 뛰는 느낌 모두 공황이 오는 전조증상으로 여긴다. 어느 순간 작은 신체적-심리적 불편감 자체에 불안과 공포의 꼬리표를 붙이기 시작한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지며, 이로 인해 촉발된 불안감이 오히려 공황을 유발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불안한 마음은 회피하려는 행동을 부른다. 결국 공황장애 환자들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고, 활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이미 감작(sensitization)된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불안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비유하자면, 마음의 그릇에 불안함이 가득 담겨 흘러넘치기 직전의 상태와 같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쏟아지는, 표면장력으로 불안이 흘러넘침을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 그 자체이다.

즉, 공포 자체보다는 공포에 대한 공포(fear of fear)로 인한 삶의 왜곡, 생활 반경이 점차 좁아지는 현상이 공황장애가 가진 파괴력이다.

 

사진_픽사베이

 

공황장애, 생각을 바꾸는 연습을 하라고? - 이성과 불안의 시소게임

뇌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우리 뇌 안에서 불안이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편도체(amygdala)다. 편도체는 불안뿐만 아니라, 감정적 기억이 저장되고 여러 감정이 빚어지는 중추이다. 여러 이유로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순간, 우리에게 심리적-신체적 불안 반응이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공황을 비롯한 일련의 불안반응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편도체의 활성화를 줄이는 방법들이 도움이 된다.

편도체는 우리 뇌의 가장 앞부분에 위치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전전두엽은 계획하고 실행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이성’의 부분이다. 이성과 감정을 담당하는 이 두 영역은 마치 시소처럼 한 영역이 활성화될 경우, 다른 한 영역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즉, 공황의 순간 활성화된 편도체는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만든다. 반면, 불안의 순간에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증상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면,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억제된 편도체에서 유발된 불안이 이전처럼 강력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황을 전전두엽과 편도체, 두 영역만의 문제로 단순화하는 데는 무리가 있긴 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불안의 메커니즘에는 여러 요인과, 뇌의 다양한 부분이 관여한다.

그럼에도 이성의 힘을 키우는 여러 활동, 이를테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거나(labeling), 감정에 대해 기록하고 점수를 매기는 기록지를 사용하거나, 하루의 감정에 대해 일기를 쓰는 행위 등이 불안을 잠재우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며, fMRI 등의 뇌 영상을 통해 전전두엽과 편도체가 활성화-억제의 역상관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성의 힘을 키우는 연습을 해야 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공황과 이에 대한 두려움을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연습은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치료는 2010년 미국정신과의사협회에서 발간한 공황장애 치료지침에서도 약물치료와 더불어 가장 추천하는 치료이기도 하다. 결국 달아오른 몸과 마음, 그리고 뇌를 진정케 하기 위해서는 편도체를 조절하는 이성의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이 바로, 공황장애에서의 생각 바꾸기 작업이다.

 

공황장애에서의 <생각 바꾸기 I> : 마음이 만든 오답을 찾아보기

공황장애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를 연습하기 전, 가장 중요한 명제를 마음에 반드시 담아두자.

공황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정상적인 생리반응이다. 결코 죽음이나 기절, 정신병의 징조가 아니다. 몇몇 이유로 인해 (스트레스가 크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이가 취약한 상태와 같은) 과도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운동 직후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면 우리 몸의 조절로 자연스럽게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듯, 공황 또한 지나가는 현상일 뿐이다. 중요한 건 공황이 지나간 후 이에 대한 태도와 대처이다. 이는 앞선 글 들에서 다룬 바 있다.

공황이 일어난 직후를 떠올려보자. 갑작스럽고 격렬한 신체적 불안이 폭풍처럼 휘몰아친 후, 이 상황에 대해 의연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느닷없는 반응이 두렵고, 무서워지며(감정적 반응) 공황이 끝난 후에도 그 여운에 몸과 마음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생리적 반응). 공황이 반복되면 다른 활동들을 피하게 되기도 한다(행동적 반응). 이 모든 반응이 단순히 공황이 일어난 상황 때문에 나타나는 걸까? 하지만, 공황을 겪은 이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지 않은가. 몇 차례의 공황 직후 심한 두려움에 생활 전반이 무너지는 이들이 있는 반면, 덤덤하게 털어내고 금세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차이일까? 혹은 운이 좋고 나쁨의 차이인 걸까? 아래의 도표를 살펴보자.
 

도표_신재현


우리는 상황으로 인해 현재의 반응이 일어난다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상황에 대해 제각기 내린 ‘해석’에 따라 그 반응이 갈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해석이 다분히 습관적이거나, 의식의 수면 밑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탓에 티가 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해석을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 부른다. 공황에 대한 반응 또한 마찬가지다. 공황을 겪은 직후, 자신도 모르게 공황과 공황을 겪은 자신에 대해 가타부타 해석을 하고, 습관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안타까운 건, 마음에 불안을 담고 있는 상태에서 스쳐 지나간 ‘자동적 사고’가 오답에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이며, 그 오답으로 인해 공황의 여파가 좌우되기도 한다는 거다. 공황장애의 늪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이러한 무수한 오답이 영향을 미친다. 이를 인지치료의 창시자 Aaron T.Beck은 인지오류(cognitive error)로 명명한 바 있으며, 자동적 사고의 인지오류로 인해 여러 부정적인 반응들이 나타난다 여겼다. 이는 아직까지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데 있어 주요한 이론적 뼈대가 된다.

이를테면, 몇 차례의 공황을 경험한 후 앞으로도 이 끔찍한 공포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과도한 일반화의 오류), 공황을 겪은 후 점차 상황이 나빠져 생활이 망가지고, 폐인이 되거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재앙화의 오류), 공황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소평가의 오류)들이 공황에 대해 가지는 대표적인 ‘오답’이다. 분명 공황을 경험한 후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하는 시각으로 바라본 때와 그 결과는 판이할 테다.

공황을 겪은 내 마음 안에, 공황을 겪는 도중과 그 직후 과연 어떤 자동적 사고가 스쳐 지나갔을까? 그 생각이 정답보다 오답에 가깝지 않은가? 그리고, 그 오답으로 인해 공황이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 파괴력에 대해 과도하게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들이 오즈의 마법사를 경외시 했던 건 소문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검토하고, 직접 그를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답이라 생각했던, 아니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내 생각이 오답 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여러 면에서 재검토하는 과정은 결국 공황이 초래하는 파급 효과를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작은 것부터 연습해나가자. 수첩에 자신이 공황에 대해 느낀 반응들과 그 반응들을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짧게나마 적어보자. 감정을 글로 적는 행위 자체가 전전두엽을 활성화하고, 달구어진 편도체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순간의 감정과 자동적 사고, 반응들을 여러 면에서 검토하고, 그중에서 오답일지 모르는 내용을 찾아내는 접근법 또한 그러하다.

 

글을 맺으며 : 마음에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는 것

불안은 시야를 흐리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로막는다. 과거엔 합리적이고 냉철한 사람이라도 예상치 못한 때 불어닥치는 불안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면 불안에 대한 생각에 이성적인 정답보다는 부정적 감정에 얼룩진 오답들만 내리게 된다. 생각 바꾸기는, 자신이 공황을 비롯한 일련의 불안반응에 대해 내린 ‘오답’을 점검해나가며 합리적으로 바꾸어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감정에 휘둘리는 습관적 과정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공황장애에서 대표적인 오답들에 대처하는 구체적 <생각 바꾸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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