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여자입니다. 저에게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동생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들어요.

동생과 지내면서 제가 힘들 때가 많아요. 동생이 한 번씩 까칠하게 말하거나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그냥 참거나 못 본 척 지나가는 편이에요. 저번에 동생이 저에게 짜증을 내길래 말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동생의 성격인지 다음번에 만나도 또 까칠한 말을 하고 저는 내색은 안 하지만 속상해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어요. 동생이 그렇게 까칠하게 대할 때면 저는 동생 눈치를 보게 되고 비위를 맞추게 돼요.

그런데 점점 힘들어져요. 동생을 멀리하고 싶어 지고 이렇게 계속 상처 받으면서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는 편입니다. 동생이랑만 만나는 편이에요. 동생과 멀어지면 저는 완전히 혼자가 될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계속 힘들어하면서 만나는 건 더 힘들 것 같아요.

동생이랑 저는 성향이 다른 것 같기도 해요. 동생은 직설적이고 말을 세게 하는 편이고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성향이 다른 동생과 억지로 맞추면서 지내기보다 멀어지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저의 성격을 조금 고쳐야 할까요?

동생이랑 멀어지고 아예 안 본다고 생각하면 좀 슬퍼지기도 해요. 그간 쌓인 우정이 있고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해서 고맙기도 하거든요.

마음이 많이 복잡하네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이두형입니다. 가족 사이의 관계는, 때로 가족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보다도 힘들 때가 많은 듯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애틋할 때가 있는가 하면, 사소한 다툼으로도 남들이 아닌 가족이기에 훨씬 서운하고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요. 

아무래도 가족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기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 온 세월이 있고, 가족이니까 더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말씀 주신 부분으로 모든 것을 유추할 수는 없겠지만, 글쓴이님께 동생 분은 소중한 사람인 듯해요. 

꼭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만 편안하거나 행복한 건 아니지만, 때론 다른 사람과 힘겨운 삶 속에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 의지가 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많은 분들과 친하게 어울리는 편이 아니라 하시니, 동생분의 존재는 글쓴이님께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실망은 기대가 클 때 더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지요. 제 경험을 돌아봐도,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만한 속상한 일들도 가족이 했을 때는 더 서운하고 실망이 클 때가 많았습니다. 어쩌면 동생 분께 힘든 감정을 많이 느끼신다는 것은, 그만큼 동생분이 글쓴이님께 그만큼 소중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다툼으로 인한 속상함 때문에 의식적으로 동생 분을 멀리하신다면 혹여나 더 속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 가지 방법을 제안드리고 싶어요. 우선 첫 번째로, 동생 분의 말이나 행동으로 화가 많이 나셨을 때, 만약 동생이 아닌 (기대치가 낮은)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얼마나 화가 났을지 한 번쯤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쓴이님께 동생의 화를 잘 참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거나, 참는 것이 능사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글만으로 제가 전후 사정이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없고, 어쩌면 애초에 옳고 그름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화가 나고 속상할 때 가장 힘든 이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며 그로 인해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힘들 때마다 지금 일이 그만큼 화날 일인지, 어쩌면 동생에게 나도 모르는 많은 기대나 의지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만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로, ‘나 전달법’을 통해 동생 분과 소통을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말씀 주신 상황에서 그저 참고 넘기거나, 혹은 ‘어떻게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라는 식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는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내가 눈치가 보인다, 비위를 맞추게 된다, 나 역시 화가 난다.’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참고 넘긴 감정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에 쌓여 화나 슬픔의 근원이 됩니다. 스스로 느끼신 감정은 그대로 언제나 사실입니다.  억지로 참고 넘기기보다 솔직한 마음으로 소통을 하신다면, 서로가 불편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오래 고민하시고 긴 글을 통해 질문을 남겨 주실 정도라면, 그만큼 두 분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다는 생각이 앞서 들었습니다. 관계에 정답은 없겠지만, 글쓴이님이 동생분과 가장 편안하게 서로 의지가 되는 지점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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