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대학이나 성적, 가족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10대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 ‘친구’일 겁니다. 친구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학교인데 흔히 말하는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가 요새로 따지면 중학교 1학년입니다. 초등학교와 너무도 달라진 환경, 아직은 서먹한 친구들, 새로운 그룹을 만들고 적응하려는 노력들, 어찌 보면 중학교 1학년 교실의 새 학기 3월 풍경은 친구를 사귀고 무리를 형성하려는, 뒤처지고 소외되지 않으려는 정글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말 붙일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교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3년간 반복된다는 사실은 10대에게는 도저히 견디기 힘듭니다. 2017년 통계기준 전국의 학교폭력 검거건수는 1만4천건이었습니다. 보복이 무서워서 제대로 신고하지도 못하고,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도 사건을 쉬쉬하며 덮기 바쁜데 1만 4천건이라니,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숨어서 울고 있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옛날처럼 삥을 뜯거나 가벼운 따돌림 정도가 아닙니다. 학교 폭력 상담을 담당하는 기관인 Wee센터로 찾아온 중학생 B군은 흔히 일진이라고 하는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매주 2만원씩을 이른바 ‘상납’했습니다. 중학생에게 한 달에 8-10만원은 절대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할 경우 쉬는 시간마다 배와 가슴을 두들겨 맞았다고 합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거짓말로 타내기 힘들어지자, B군은 중고나라에서 사기를 쳐서 상납금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이 모든 정황을 알고 난 뒤 B군은 중고나라 사기로 퇴학을 당했지만 가해자들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B군의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께 들은 유일한 말은 “얘들 문제는 개입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학교 명예가 있으니 언론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였습니다. 경찰 역시 폭력을 확인할만한 녹취록이나 SNS 증거가 없기 때문에 도와주기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B군의 같은 반 친구들 역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다음번 차례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걸 뻔히 아니까요.

B군은 전학을 갔지만 새 학교에도 이미 소문은 퍼져 있었고 B군을 기다리는 것은 더 영악해지고 교묘해진 새로운 가해자들이었습니다.

 

1. 피해자의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피해자인 B군은 범죄자가 되었고, 전학을 가서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낙인이 찍힌 채 새로운 폭력의 두려움에 떨면서 악몽을 꿉니다. 매일 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깹니다. B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하고 벗어나는 것입니다. B군은 그럴 수 없습니다. 여전히 가해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교실을 3년 더 다녀야 합니다. 대학이라고 왕따가 없을까요? 군대나 직장은 다를까요? 중학교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에는 나갈 수 있을까요? 혹시나 그 가해자를 사회에서 다시 마주한다거나, 방송에서 보게 되면 어떨까요. 생생히 되살아나는 통증과 억울함, 우울감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2. 가해자의 인성을 마비시킨다.

자신의 말에 꼼짝 못 하고 명령에 따르는 친구들 위에 군림하는 경험, 갑질의 느낌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강한 쾌감을 줍니다. 폭력에 중독되는 것이지요. 가해자들은 미성년자라는 면죄부 속에서 성인 범죄자들 이상으로 힘과 폭력을 마음껏 휘두릅니다.

10대는 인격과 인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미성년자, 초범에게는 우리나라의 법이 너무나 허술하고 관대하다는 것을 배우고 학습합니다. 몇 쪽짜리 반성문과 합의하려는 거짓 노력, 선처해 달라는 눈물연기 한두 번이면 대부분의 죄가 없어진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지요. 그들이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3. 방관자들,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피해자들도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감싸면 자신이 왕따가 되고, 부모님, 선생님이 끼어들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와 영역도 존재합니다. ‘왕따를 당하는 얘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무시하고 배척하는  분위기도 생깁니다. 피해자들은 결국 스스로를 탓하고 자책하지요. 내가 약하고 못난 탓이라며 고립되고 관계를 단절해버립니다.

이를 지켜보기만 했던 아이들. 친구의 아픔을 방관했다는 부끄러움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을 합리화해봅니다. 하지만 폭력에 굴복했다는 비겁함, 죄책감과 마주하면서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는, 아니 어른들과 선생님, 사회의 누구도 믿지 못하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어갑니다.

 

가해자의 부모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아이를 정말 손톱만큼이라도 사랑하신다면 선처를 구하지 마시고 오히려 크게 벌해줄 것을 부탁하세요. 자신이 준 상처와 고통의 무거움, 통렬한 반성과 깨달음이 없다면 가해자의 미래를 망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부모라는 것을.

나,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 상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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