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성복 시인의 잠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중에는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내 병을 신경성으로 추단한 의사는 정신과에 추천서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렸다. 내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건네주었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정신의 동정을 믿는다.”

몸이 아픈 것은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정신이 신체를 병들게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인은 의사의 의뢰서마저 찢어 버립니다. 그렇게 진단한 의사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인은 분노마저 느끼는 듯합니다.

 

스트레스나 마음의 고통이 몸의 기능을 변하게 하고 심한 경우 신체적 질병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아파 고통스러우면 도저히 마음의 문제만으로 이렇게 힘들 수는 없다고 부정하게 되나 봅니다.

“이렇게 힘든데, 그게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하고 의아해하는 환자가 제법 많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정도의 반응이라면 그나마 낫습니다. 어떤 분들은 되려 의사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고작 진단이 신경성이라는 겁니까? 확실해요?”라며 의사의 진단을 믿지 않습니다. 좀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최첨단의 검사를 받기도 합니다. 일 년에 몇 차례씩 건강 검진을 받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가끔 봅니다.

 

사진_픽사베이

 

중년 여성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왼손이 저리다는 것이 주증상이었습니다. 왼손뿐만 아니라, 손목을 따라서, 팔꿈치까지 저린 느낌이 뻗쳐 나가기도 하고, 잠잘 때면 이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했습니다. 통증 때문에 늦은 밤에 응급실을 찾기도 했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진료도 받고, 최신식 MRI로 검사도 여러 번 했지만 이상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 왜 아픈지, 어떤 질환 때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 의사를 만나 봤지만, 병명조차 찾지 못하는 의사들에 대한 원망도 내비치더군요.

저는 그녀에게 스트레스받고 힘들만한 일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 그런 것 없어요."라고 남일 같이 넘깁니다. 힘든 일 없느냐고 물어본 제가 오히려 더 무안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심리적인 부분보다는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여러 가지 신체적인 검사 결과들을 다시 확인하고, 검사 결과의 의미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한참을 저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더군요. "제가 아픈 것이 혹시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해서 그럴 수도 있는 건가요?”라고. 대답하지 않고 그녀가 더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자신의 사연을 조심스럽게 꺼내더군요.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고생하셨어요. 7년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7년 동안 장루를 제가 관리도 해 드리고, 밤이나 낮이나 어머니 전화가 전화하면 제가 달려가야 했지요. 저는 친구들에게 내 친어머니지만 더 이상은 못 도와드리겠다고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엄마인데,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돌봐드렸어요.

그런데, 2년 전에는 아버지도 폐암이라고 판정을 받으셨어요. 저 아니면 돌봐드릴 사람이 없는데, 내가 참고 해야 하는데, 이제는 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니 때도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제는 아버지까지. 그래도 저밖에 없으니까. 지금도 한 달에도 몇 번씩 병원에 오고, 아버지 건강 때문에 하루도 신경 쓰지 않는 날이 없어요. 이제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 마음에서는 그러는데, 누구에게도 말해 보지 못했어요. 참아야지 어디다 말하겠어요.”

저는 그녀가 울며 하소연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잘 그쳐지지 않는 울음이었습니다. 서러움도 지쳐 나오지 않는, 그냥 눈물만 주르르 흐르는.

 

그녀의 왼손 통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최첨단 MRI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가 흘린 눈물은 MRI보다 더 정확한 진단을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너무나 지쳐있었습니다. 마음이 지쳤는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버거웠던 것이지요.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하고 싶지만, 어머니에 아버지까지 자식으로서 온당히 감당해야 하는 병간호를 부정할 수 없었지요.

‘더 이상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죄책감도 느꼈습니다. ‘폐암 걸린 아버지 병간호 못 하겠다’는 마음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도 아팠지만, 몸도 아팠겠지요. 그녀의 왼손 통증은 이런 마음을 먹은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손이 아파 더 이상 아버지를 돌보기 힘들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저만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특별히 아프거나, 신체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불치에 병이 걸렸다’고 불안,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20년 이상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한 뒤, 한가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M씨가 그런 경우입니다. 중견 기업에서 고위직 임원으로 일하다 6개월 전에 퇴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바쁜 일상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느낌을 만끽했다고 합니다. 기원에서 하루 종일 바둑만 두기도 하고, 평일에 등산 가방을 메고 북한산에 오르기도 하고. ‘내 인생이 이제야 여유를 찾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3달 전, 애인조차 없는 줄 알았던 M 씨의 딸이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남자를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딸은 M 씨에게 올해 안에 결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M의 마음에 ‘퇴직금 몇 푼 안 되는데, 딸은 어떻게 시집보내나? 혼수 비용, 결혼 비용 마련해 주고 나면 앞으로 30-40년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뒤통수를 쳤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딸이 결혼하겠다는 좋은 소식을 들고 왔던데 축하도 못 해주고, 딸과 예비 사위 앞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말았습니다. 딸에게 미안했고, 염치없는 아버지가 된 것 같아 미안했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사실은 절대로 무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M이 병원을 찾은 것은 딸의 결혼과 관련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M은 한 달 전부터 침을 삼킬 때마다 목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이 식도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건강 검진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 검진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M의 가족 중에는 암 환자도 없었고, 목에 뭔가 걸리는 것 같다는 느낌 외에는 다른 특별한 신체 증상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M은 검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 주었지만 검사 결과도, 의사의 진단도 믿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네요.”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긴장한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M의 가족들도 이전과 달리 매우 불안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도 M은 가족에게 “식도암이 아니라면, 다른 숨겨진 암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고는 이런 증상이 생길 수가 없다. 의사가 오진했다.”라며 계속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M의 불안이 점점 더 커지면서, 가족의 걱정 또한 커졌습니다. M의 딸은 저와의 면담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겠느냐”라며 결혼을 미루어야만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선뜻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환자의 마음속에 울리는 절규를 잠재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보고 그 사람의 몸과 영혼의 변화를 모두 살펴보아야 비로소 증상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환자가 ‘자신의 병명이 무엇이냐?’고 물어와도, 환자는 자신의 진짜 병명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환자가 묻고 싶은 병명의 의미는, 의사가 알려주고 하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사진_픽셀

 

세상에는 아무 이유 없이 생겨나는 일은 없습니다. 몸이 아프고 힘들 때,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원인이 없다면 몸만 들여다보지 말고, 마음도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마음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면 자신이 느끼는 신체의 감각에 대해서도 평소보다 더 예민해집니다. 그래서, 평소라면 느끼지도 못했을 사소한 감각까지도 신경을 거스르게 됩니다. 그래서, 약간만 몸이 이상해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서 신체적인 통증이 생기는 경우를 일컬어 ‘신체형장애’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경성’ 장애라고 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신경성 위장염’ ‘신경성 두통’이라고 하는 것도 ‘신체형장애’에 속하는 정신과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환자들은 머릿속으로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생각을 키우기도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얻게 된 질병에 관한 지식으로 실체가 없는 ‘마음의 병’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심해졌을 때 건강염려증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염려증은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증이든 기능의 이상이든, 신체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몸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 주는 것입니다. 신체가 병들었거나,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통증입니다. 또한, 몸의 통증은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우울하고, 불안할 때 그것을 마음으로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몸으로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아프고 뒷골이 땅기고, 소화가 되지 않는 것 등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이런 경우에, 약봉지나 불쑥 내밀며, “이것 먹고 참아라.”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몸에서 보내는 감정의 메시지를 느꼈을 때, “몸에 무슨 문제가 있나? 암이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 뇌출혈이 오면 어쩌지?”하며 피상적인 원인에만 매달리면 안 됩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생각의 덫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증상은 합리적이라고 이성적으로 따져서는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는 의심 속으로만 빠져들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세상에 어떤 의사도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구나.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거야’ 하고 말입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원인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는데도, 통증이나 몸의 기능에 이상이 있다면 이때는 스트레스나 정서적인 요인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마음이 아픈 것을 억압하면 그것이 신체화(정신적인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변화되는 것) 되어 나타납니다. 억압된 감정이나, 표현하지 못했던 숨겨진 걱정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 신체화 증상은 사라집니다. 숨겨 두었던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 그것이 더 이상 몸으로 나타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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