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목이 다소 자극적입니다. 그래도 이 문구에 이끌리셨다는 건,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부모 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엔 부모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젊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나게 됩니다. 공감이 갑니다. 잘하려 하면 할수록 힘이 드는 게 부모 노릇인데 살기 바쁜 청년들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합니다. 팍팍한 현실이지만, 어딘가에서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까다로운 녀석을 한번 잘 키워 보시겠다고 오늘도 부모님들이 가깝지도 않은 진료실을 찾아오십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이더라도 부모로서 잘해보려는 마음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진_픽셀

 

부모 역할의 성공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자존감의 기초가 됩니다.

‘부모니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반적인 것일까요, 아님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것일까요? 좀 오래된 20세기의 이론이지만 소아정신분석가 에릭 홈부르거 에릭슨은 중년기의 과제를 생산성(Generativity)으로 묘사했습니다.

‘생산성’이라는 표현은 중년이 되면서는 한 개인으로서의 성취뿐 아니라, 다음 세대(generation)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에 점점 관심이 커져가는 현상을 묘사한 것입니다. 즉, 부모로서의 역할은 중년기의 핵심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잘 역할해서 그 결과로 아이가 독립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성인들의 주요한 바람의 하나입니다. 모순적이게도 ‘부모’라는 타이틀은 버거운 숙제임과 동시에 가장 강렬한 욕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사회적응을 돕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보면, 어린아이들에게조차 극단적인 정도의 학습을 요구하는 부모님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본인들 스스로도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걸 아는데도, 공부와 경쟁을 요구하는 부모님들의 행동은 무슨 의미일까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성공적 적응을 위해 워낙 많은 경쟁과 지식을 요구하다 보니 부모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을 하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사회에서 ‘잘 살아간다’는 의미는 단순히 사회 직업적 성취로 다 설명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성취에 대한 요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부모역할인 건 맞습니다만, 이에 올인하는 것은 자칫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올바른 정체성에 기반한 좋은 사회성 없이는 좋은 사회생활도 어렵습니다.

 

부모는 결국 아이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신 적이 있을 겁니다. 말로 설명해서 자전거를 타게 만들 방법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만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을 찬찬히 보여주면서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자전거를 타본 사람만이 처음 타기 시작했을 때의 두려움과 흥분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 노릇이 어려워지는 것은 부모인 우리도 잘 못하는 것들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나 한글, 기본 생활습관 등을 훈육하고 가르칠 때에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지 않겠지만, “나는 부모의 요구와 다르게 살겠다”라고 주장하는 부쩍 자란 아이들에게 좋은 정체성을 보여주며 설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좋은 부모로 역할한다는 것은, 자율적인 정체성에 대한 부단한 노력과 자기반성 없이는 얻어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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