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1709-1784)은 "최소한의 불행을 겪으면서, 가장 큰 행복을 얻는 기술은 작은 것을 관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작은 것을 관찰하는 기술은 무엇일까요? 일상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벌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고소한 커피 향기와 맛을 음미하는 것이나, 퇴근길 전철에서 내다보이는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에 잠기고, 저녁 산책을 하는 강아지가 전봇대에 오줌을 싸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들일 것입니다.

이런 소박하고 은은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으려면,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의 것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서 그것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행복감을 얻는 데 필수적입니다. 조건적 시선에 일희일비하기 쉬운 내면의 풍경을 일상의 작고 즐거운 일들로 채워놓는 노력은 정신적 성과물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순간을 귀하게 여기면, 그 순간에 있는 우리 자신도 자동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일찍이 공자님께선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운 면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가령 따뜻한 집밥을 먹으면서도 밥을 차려주는 이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먹는 둥 마는 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특별요리라고 여기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일상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작게나마 음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는 작고 즐거운 일에는 소박하고 은은한 아름다움과 나름대로의 훌륭함이 깃들여 있지만,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알아채지 못한 채 무의미한 순간으로 지나칠 수 있습니다.

 

사진_픽셀

 

영화 ‘비긴어게인(2013)’에서 일상의 미적 가치를 알아보고 깊이 음미하는 능력이 주는 행복감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댄: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거든. 그게 음악이야.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진주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됐어.

그레타: 진주에 비해 꿰는 줄이 늘었어요?

댄: 진주까지 가는 길이 점점 더 길어져 그래도 이 순간은 진주야. 그레타. 지금까지의 시간들도 전부 진주야.

평범하고 사소한 순간도 음악을 통해 의미를 갖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영화인데요.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그 아름다움도 잃어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순간이 진주야~”라고 믿으면서, 천진한 아이처럼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마음을 회복한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댄이 그레타의 단선율에 여러 악기들의 연주음을 넣어 더 훌륭한 곡으로 만들어주었듯이, 일상의 사건에 아름답게 의미 부여하는 효과음을 주며, 그 아름다운 선율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리면, 행복한 기억이 우리 신경세포에 진주처럼 새겨질 수 있을 겁니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생의 아름다움에 거하라. 별들을 보고, 그것들과 함께 달리는 당신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거창하고 특별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장점을 찾아내거나,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한 상대방의 작은 배려와 친절에 고마워하는 순간에도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찾아 더 자주 느낄 수 있게 격려하는 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에 거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잘 찾아내서 그것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음미해서, 우리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지닌 행복의 순간이 좀 더 길게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은 ‘대상관계나 대상추구 욕구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세계관, 관심, 포부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성숙’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주의를 기울일 때, 사소한 순간에서 다양한 의미를 끌어내며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이 생길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상의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심미안은 인생을 호기심 있게 여행하는 것처럼 세상을 관찰하는 여유로움에서 충분히 배양될 수 있습니다. 인생숙제를 끝내야 하는 심정으로 사는 것보다 관광객처럼 인생의 여정마다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입니다. 여행자처럼 순간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를 사진을 찍듯 기억으로 저장해 놓고 내일 펼쳐질 여정에 대한 기대를 해보며 행복감에 젖어드는 설렘을 누려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이 목적지만큼이나 그 여정 자체에 더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의 순간에 머무르지 못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이뤄내야 하고,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하는 결과중심, 비교우위의 조건적 가치관은 조건적 자존감을 비대하고 만들고, 목적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며, 일상의 소소한 가치에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 어떻게든 살다 보면, 인생은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더 많구나라는 평범한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삶에서 더 많은 행복감을 건지려면, 문제가 없는 삶을 동경하기보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그 힘든 과정에서도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의미를 차곡차곡 느끼며, 그런 자신을 격려하며 소중히 여기는 소박하고 단정한 마음가짐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제를 통해 자신이 성장할 수 있음을 믿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건지는 과정에 주목하는 이런 태도는 긍정적인 경험을 내면화시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게 할 뿐 아니라, 문제에도 불구하고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사진_픽셀

 

오래전 일이지만,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천문학적인 연봉계약을 하고 들어간 텍사스 레인저스 팀에서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을 때. 그는 다음날 야구장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고 합니다. 아픈 몸을 참고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데, 그날따라 자신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고 합니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이 안쓰러운 모습이 보이며, 자신도 모르게 ‘찬호야...찬호야...찬호야.. 너 참 가엾다.’라는 말이 나오더랍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보자. 지금 나는 어차피 바닥이니까. 더 내려갈 곳도 없잖아’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박찬호 선수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여웠던 자신을 그렇게 토닥토닥 안아주었던 그 순간 일상의 진주를 건져낸 것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이란 책에서 ‘내일 아침에 할 산책에 잠을 설치지 못하고, 파랑새 우는 소리에 전율을 느끼지 못하거든 깨달아라. 너의 봄날이 가고 있다는 것을’이라며 일상을 느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언급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라고 노래했죠. 일상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려는 시선과 그것을 진정한 내면의 행복감으로 끌어들인 미학적 자존감의 고수들은 별이 바람에 스치듯이 일상의 사랑스러운 순간을 그렇게 껴안습니다.

 

가끔 좋지 않은 일과 걱정되는 일로 정신없는 우리의 삶에서도 일상의 사소한 아름다움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긍정적인 경험으로 내면화시키는 연습이 더욱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 자신의 조건적 시선이나 욕망으로 우리 자신이 후져 보이는 조건적 자존감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돋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닌 소박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찾아 우리 마음속 풍경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퇴근길에 잠시 눈을 감고, 오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일이나 멋진 경험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것이죠.

일상에서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낸다면, 어떠한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회복탄력적인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든 일을 마주한 자신을 보면서도 ‘괜찮아, 다시 해보자. 그래서 결국은 더 잘 될 거야’라고 자신의 편에서 말해주기 쉽습니다. 미학적 자존감으로 통통한 마음은 그렇게 고통과 역경으로 얼룩진 환경에서 애쓰고 있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 내면의 숨겨진 아름다움의 빛을 찾아줍니다.

 

19세기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 모두가 진흙 구덩이에 있지만, 우리 중 몇몇은 빛을 바라본다’고 말했습니다. 설령 지금은 진흙탕 수렁에 빠져 있더라도 미학적 자존감으로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과 일상의 아름다움의 빛을 알아보고, 일상의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누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라며, 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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