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마도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요.

사실은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에 한계가 오고 있었나 봐요. 불안함도 우울함도 스트레스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늘 불안 속에 살고 있었어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요.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몇 년 동안이나 생각만으로 해오던 일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어요.

평범하고 맑고 추운 가을날이었요. 후드티 한 장만 걸친 채로 집을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서울 가는 버스를 탔죠. 버스 창 밖으로 반짝거리는 한강이 보이기 시작할 때 무작정 하차벨을 누르고 내렸어요.

내린 곳에서 한참을 걸어 작은 슈퍼를 찾았고, 좁은 가게 안을 비집고 들어가 맥주 두 캔과 소주 한 병을 잡히는 대로 골라 들었어요. 그대로 계산대 앞에 섰어요. 그때, 비좁은 가게 안에서 제가 지나갈 때마다 이리저리 비켜주며 친절하게 웃어주시던 슈퍼 아주머니가 문득 저에게 말을 걸어 주시더라고요.

아마도 추운 날 겉옷도 없이 죽상으로 한강 앞 작은 슈퍼에 들어와서는 안주도 없이 술만 잔뜩 사는 제가 수상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신분증이 없었던 저에게, 넉살 좋은 웃음으로 “학생은 아니지? 아유, 어려 보여서~!" 하며 약과를 집어 손에 쥐어주셨어요. 그저 얼이 빠진 채 굳어있던 저는 넙죽 약과를 받았어요. 평소 같았으면 분명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거절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아주머니는 오히려 자신이 더 고맙다며 몇 번씩이나 말씀하셨어요.

 

사진_플리커

 

그리고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강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만약에라도 약과를 쥐어 주었던 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됐다며 경찰이 아주머니를 조사하게 된다면, 귀신이 돼서도 면목이 없었을 것 같았나 봐요.

그렇게 그 한마디에 추운 날 한강 수영은 그만두기로 했어요. 고마워서 울 것 같은 기분에 강가에 앉아 캔맥주를 모조리 마시면서 약과를 먹었어요. 그 날 한강 건너편 주유소에 큰 불이 났었더라고요. 연기가 마치 큰 소나기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어요.

하늘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연기도 보이지 않고, 강물은 어느새 빨려 들어갈 듯 새까매졌어요. 멍하니 다리 밑에 앉아서 사람들 오가는 것을 구경하고, 소리를 듣고, 거세게 부는 찬 바람을 맞고... 그냥 그렇게 쭈그려 앉아있었어요.

문득 강물 가까이 더 다가가기도 했어요. 하지만 물가 앞에 그대로 털썩. 양반다리로 주저앉아 버렸죠.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사람처럼 창피한 것도 모르고 통곡을 했어요. 하염없이 울다가 옆에서 들리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왠지 모를 끔찍함을 느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아마도 그 강물엔 나보다 더 외로웠을 사람들이 가라앉았겠죠. 남은 소주를 그들에게 대충 부어주고, 무조건 지하철역을 향해 돌아갔어요.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 창문에 비친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집까지 갔어요.

얼굴이 시뻘게진 제 몰골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펑펑 울 수 있어서 후련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동안 아무리 속상해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었거든요.

 

그때 느꼈던 것 같아요. 죽음이 아닌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약과 한 조각에 불과한 사소한 말 한마디 하나라도, 저는 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작년 가을 처음 정신과에 가기로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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