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8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게임중독 장애 때문에 시끌시끌한 거 같습니다. MBC 100분 토론에서도 다루어졌고, 유튜브에서는 100분 토론 프로그램 자체, 그리고 출연진에 대한 설왕설래들도 많이 오가는 거 같습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장단점은 각기 존재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에 있어 어느 쪽 입장을 취하더라도 할 이야기가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토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좀 더 나은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토론이 평행선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논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즉, A측에서 이야기하는 토론의 대상과 B측에서 이야기하는 토론의 대상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절대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대상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마치 A측에서는 사과를 보고 사과라 하고, B측에서는 배를 보고 배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논점의 문제’를 정확히 바로 잡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합의점을 도출해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유튜브를 보면, 게임 중독 장애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음모론까지 끌고 와서 다양한 주장들을 하는 유튜버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논점의 문제’ 측면에서 그들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들이 하는 주장을 살펴보면 ‘게임 중독’과 ‘게임’을 구별하지 못하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게이머들에게는 ‘게임중독 장애’ 자체가 마치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게임’ 자체는 부정당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게임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유희의 도구로서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역량이 아주 큽니다. 분명히 장점이 존재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임을 모두 없애버려라.’라고 주장을 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도 게이머들은 게임중독 장애가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여기고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이라는 질병이 있고, 치료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있는 술과 도박을 없애라.’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의사들이 술을 즐깁니다. 필자도 포함해서요. 이 말은 ‘알코올 중독’이 ‘알코올’ 자체에 대한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알코올 중독’이 포인트로 두는 것은 ‘알코올 사용에 대한 통제력’ 문제입니다. 알코올은 사회생활과 유희로써 분명히 좋은 역할을 하는 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보편적으로 잘 사용되고 있지요. 그런데 일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통제력을 상실하여 삶의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의 대상으로 여기고 치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요.

게임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중독 장애’는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통제력 상실’에 대한 부정입니다.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면 절대 생산적인 토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양 측에서 같은 대상, 즉 ‘게임에 대한 통제력 상실’에 초점을 맞췄을 때, 그때에서야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글 서두에 ‘논점의 문제’를 언급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게임이라는 것이 중독 회로를 활성화해서 통제력 상실을 가져오느냐의 문제로 귀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측좌핵, 도파민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주변에 게임에 빠져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봐왔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의대 재학 시절 제 동기 중 몇은 게임에 빠져 유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제 지인은 게임에 빠져 F학점을 수두룩하게 받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요. 이런 경우는 게임중독 장애로 진단해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게임중독 장애’를 도입하려는 취지일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다양한 스펙트럼 상에서 어느 범위까지를 장애로 보고 치료 대상으로 여겨야 하는 지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의 초점은 이 지점이 되어야 합니다. ‘게임중독 장애’ 자체에 대해 부정하고 맞서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병의 수준으로 보고, 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이 사회의 구성원이 엄연히 존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으로 보냐는 계속 논의가 되어야 할 문제이겠지만요.

 

WHO(ICD-11)에서 게임중독에 대한 발표를 두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유튜버들이 자주 이용하는 것이 DSM이더라고요. 분명 ‘DSM-5’에서는 게임중독 장애를 정식 진단명으로 넣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가 연구가 필요한 진단적 상태’ 카테고리에 넣고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아직 연구가 부족하지만, 결국은 진단적 상태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임상적 의미를 갖고 연구를 축적해보자는 뜻입니다.

흐름을 거부하더라도 결국 그 방향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어떠한 선택이 도움이 될까?’라는 측면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게임중독 장애’에 대한 설왕설래를 보면서 제게 떠오른 광고 카피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인데요. ‘게임중독 장애’에 관한 논쟁에 딱 들어맞는 문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한 ‘논점의 문제’를 나타내 주는 문구이거든요.

치킨이 비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죠. 식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내가 비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간단히 표현하면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가 될 것입니다.

‘게임중독 장애’에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게임중독 장애’는 게임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게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경우’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이지요. 상기 광고 카피를 패러디하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임은 유급시키지 않아요. 유급은 내가 해요.⌟

 

‘게임중독 장애’가 초점을 두는 건 게임이 아닙니다. ‘게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사회 구성원’입니다. 후자에 초점을 둔다면 조금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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