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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상담사입니다

기사승인 2019.06.10  05: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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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인 저는 진료실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한 대학생과 대인관계, 연애, 진로 등에 대해 함께 고민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저의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 나름 많은 고민들을 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들로 힘들었지만 그때는 정신과에 찾아갈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정신과는 조현병 같은 심한 정신질환이 발병해야만 가는 곳으로 여겨지던 때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수많은 고민들을 혼자 떠안고만 있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요. 그때는 나름 심각했거든요. 제게도 대인관계는 늘 어려운 일이었고 학업에 대한 열등감도 많았습니다(의대생이 공부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다는 것을 불쾌하게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속 분명한 현실이었으니까요. 심리적 현실은 객관적 사실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누가 나를 좋아해 줄까’ 하는 생각에 미팅도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자주 우울했고 마음은 늘 위축되어 있었죠.

그렇게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저는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주로 학교 친구들이나 동아리 선배들이 그 대상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놓았었습니다. 그 당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제 이야기를 싫은 내색 없이 들어주었던 그들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제 학창 시절은 분명 더 힘들었을 테고, 어쩌면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습니다. 저 또한 여러 심리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제게는 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몇몇 친구들과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제 고민에 딱히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해줬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일단 그 순간을 견뎌나가게 해 주었고, 그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었으니까요.

 

사진_픽셀

 

요즘은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져 일상 속 자잘한 고민을 가지고 상담을 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 ‘혼자서만 힘들어하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고민을 나눌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분명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와 힘을 얻곤 했을법한 고민들인데, 요즘은 병원까지 찾아와야 할 정도로 가까이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전문가도 그 역할이 있지만 전문가가 자꾸만 더 필요한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닌듯한데 말이죠.

물론 심리적 문제가 깊은 사람은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은 심리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과 프라이버시 보호의 측면에서 확실한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점과 접근성의 문제 등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웬만한 고민들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귀 기울여주면서 마음의 짐을 나누면 좋을 텐데, 주변 사람들을 모두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도록 조장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갈수록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일회성으로 만나는 전문가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과 인생에 가장 영향을 주기가 쉬우니까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힐링을 얻습니다. 커피 한잔, 소주 한잔을 매개 삼아 힘든 감정을 함께 느끼며 그 순간만이라도 같이 고민해 주는 것, 굳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같이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그 사람은 스스로 극복해 나갈 힘을 얻게 됩니다. 주는 입장에서는 별 대단한 것을 하는 것 같지 않아도 받는 입장에서는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의 상담사인 것이죠. 알고 보면 힐링이라는 것이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전문적 교육과 수련을 거친 사람만이 힐링을 독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곁에 있는 당신이 훨씬 그 사람을 더 잘 치유할 수 있습니다. 상담에 대한 아주 약간의 지식, 특히 상담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전문가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됩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주변의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옆에 있는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뭔가를 판단해서 정답을 제시해 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잘 들어주세요. 그거면 족합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여길지 몰라도 당신은 누군가의 인생을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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