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전념치료가 들려주는, 갇힌 고리(stuck loop)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참 일이 힘들 때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매운 떡볶이에 소시지와 치즈를 토핑해 먹고, 세계맥주를 마시며 편의점 닭다리를 뜯었다. 밤마다 인턴 동기들과 숙소에서 피자며 치킨을 먹었고 룸메이트와 중국집에서 1인 1요리를 시켰다. 식비는 꽤 부담이었으나 바빠서 다른 데 돈을 쓸 만한 시간이 없어서 괜찮았다.

즐기던 운동들은 바빠서 그만두고 식사가 느니 급격히 몸이 불었다. 외모나 몸매 따위를 신경 쓰는 건 사치였다. 문제는 체력이었는데, 나이 탓도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빠르게 지치고, 쉽게 졸렸다. 피곤은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마음의 여유가 줄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에도 짜증이 나곤 했다.

점차 떨어지는 체력과 나빠지는 건강이 걱정이 되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절여진 밤이면 치킨 생각이 났다. 같은 처지들의 동기들이 모이면 치맥을 주문하고, 눈앞에 치킨이 있는데 안 뜯을 수가 없었다. 잠깐 기분이 좋아지고, 눈을 뜨면 다시 한숨이 나왔다. 몸은 지치고, 피곤은 깊어져만 간다.

왠지 살아가는 일이 힘겨움을 참고, 잠깐 그것을 잊고, 또다시 찾아오는 힘겨움을 견디는 일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_픽사베이


누구나 원하는 삶의 모습, 자기 자신의 모습이 있다. 그 모습과 내 삶, 나 자신이 닮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그와 멀어질 때 좌절하고 슬픔에 빠진다.

그런데 살다 보면 꿈과 이상, 행복 같은 가치와는 상관없이 하루를 견디는 자체가 너무나도 힘들 때가 많다. 예측 불가능한 삶의 난관을 수습하고, 다른 사람과의 의도하지 않았던 갈등을 무마하다 보면 온 몸에 진이 빠진다. 꿈 따위는 어떻게 되든 오늘 당장 힘든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한다.

스트레스의 수준을 넘어 우울, 불안, 두려움과 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마음의 증상에 시달리다 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 깊어진다. 미래의 기쁨, 행복 같은 건 요원하기만 하고, 그만 힘들기나 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꿈을 이뤄가는 기쁨, 멋진 삶을 살아가는 즐거움,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 따위는 남의 이야기만 같고, 힘든 내 삶과 대비되며 반감마저 든다.

‘꿈같은 배부른 소리 하시네, 난 힘들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현대 사회는 이러한 당장의 슬픔을 잊게 해 줄 매력적인 장치들을 수없이 마련해뒀다.
음악, 담배, 소주, 영화, 게임, 운동, 여행.
짧게는 3분 남짓, 길게는 며칠 가량 허용되는 위로에 사람들은 마음의 고단함을 달랜다.

얼핏 생각하기에 왜 사는지도 모를 인생,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깐이라도 힘든 마음을 잊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스스로 기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즐거움의 짧은 순간을 놓고 본다면 그렇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생이 길다는 데 있다.

찰나의 기쁨과 슬픔에 상관없이 삶은 이어진다. 오늘 하루는 오늘로 끝나지 않고 내일의 씨앗이 된다. 잠깐의 쾌락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행복은 참 쉽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순간의 위안이 더 긴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을 더 복잡하게 하는 원인이다.

예컨대 대인관계가 어려워 사람이 모인 자리가 불편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가 당장 편안할 수 있는 방법은 회피다. 회식 자리를 빠지고, 다른 사람들의 연락을 피하면 당장은 편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전혀 없다면 상관이 없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될수록 함께하는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사이가 소원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관계 불안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스트레스 때문에 먹는 치킨으로 살이 쪄 더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이 부담스러워 관계를 피하다 보니 더 사람이 부담스러워진다.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을 회피하고 위로받고자 하는 행동들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욱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이로 인해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적절한 보상행동을 더욱 반복하게 된다. 끝이 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갇힌 고리(stuck loop)'라 한다.

우리네 삶 속 갇힌 고리는 수도 없이 많다. 외로움을 못 이겨 짧은 만남을 즐기거나 누군가에게 쉽사리 마음을 허락한다면 한동안은 그 외로움을 잊은 채 지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내 공허해진다. 몇 달 뒤 예정된 중요한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게임이나 여흥을 즐기면 당장은 재밌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마음을 힘들게 할 결과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 스트레스를 푸느라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다음 날 업무 수행이 더 힘들어지고 스트레스가 늘어날 수도 있다.

지금의 고통을 잊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노력들이, 긴 시점으로 보았을 때는 큰 의미가 없거나, 더 큰 어려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 고리에 갇힌 우리의 모습은 마치 쳇바퀴 속 다람쥐와 같다. 바퀴를 벗어나 나아가고픈 마음에 열심히 달리면 달릴수록 지치기만 할 뿐, 쳇바퀴를 벗어날 수는 없다.
 

사진_픽사베이


그렇다면 갇힌 고리를 벗어나,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 안의 갇힌 고리를 먼저 발견해야 한다. 지금, 감정이든 상황이든 내가 힘들어하고 피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자.
불안, 우울, 일하며 받았던 스트레스...

그 후에는 이를 해결하거나 잊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적어 보자.
한잔하기, 유튜브 보기, 멍 때리기, 게임하기, 집에 틀어박히기, 운동하기...
무엇이든 좋다.

그다음으로 각각의 방법들이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적어보자. 단, 단순히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장기적으로는 어떤지를 나누어 적어보자. 많은 방법들이 짧은 시간 동안은 많은 위로가 되지만 길게 보았을 때는 큰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스트레스를 늘리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내 삶의 갇힌 고리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다음은 실천이다. 갇힌 고리에 해당하는 방법들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멀리하려 노력해 보자. 그 대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원하는 방향으로 내 삶을 움직여주는 방법들을 선택해 보자. 예컨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조깅을 했다면, 이는 길게 보았을 때도 내 삶에 행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많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금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길게 보았을 때도 건강이라는 ‘내가 바라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한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힘들고 슬픈 마음은 조금만 미뤄두고, 내가 바라는 내 삶, 내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것이 막연하고 어렵다면 평소 내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누군가, 멘토가 될 만한 누군가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내가 ‘갇힌 고리의 방법’을 택하는 시점에, 내가 바라는 나는 어떻게 대처했을지, 혹은 존경하는 그는 어떤 방법을 택했을지를 떠올려 보자.

‘이렇게 슬프고 힘들 때 지금의 나는 술을 마시거나 억지로 아무나 붙잡고 전화를 하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그 선생님이라면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음악을 들으실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속상하고 화를 잘 참지 못해 화를 내고 후회할 때가 많지만,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고 마음을 다독일 것 같다.’

그렇게 상상에서 떠오른 대처 방법을 실제로 해 보려 노력하면 어떨까. 마치 내가, 되고 싶은 그가 된 것처럼,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연습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의 아픔에서 도망칠 수 있는 길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알고 있다. ‘그게 쉬우면 애초에 그렇게 했겠지. 삶이 어디 만만한가. 마음대로만 안 되니까 힘든 거 아니야.’라는 생각.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그저 살아가다 보면, 인생은 마음대로 흐르고 우리의 삶은 이를 쫓는 것이 전부가 된다.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이에 다가가는지를 생각하고 전념하다 보면, 추구하고픈 삶을 향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는 너무나도 슬프고 또 한없이 기뻤던 순간들, 하지만 그 감정은 찰나이며 이내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이. 그렇기에 결국 행복은 슬픔의 소실이나 기쁨의 지속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삶과 자기 자신에 모습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혹 서두의 내가 그러하였듯 당장의 아픔을 벗어나려다 고리에 갇혀, 원하는 나의 모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진 않은지. 당신과 내가 그 끝없는 야속한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원하는 삶으로 조금씩 다가가기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