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건대하늘 정신과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5년마다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는 우리나라 정신건강의 현실을 신랄하게 드러냅니다.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약 25%가 평생 동안 한번 이상의 정신질환을 경험했지만 그중 22.2%만이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았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직전 조사인 2011년(15.3%)에 비하면 6.9% 포인트나 늘어난 장족의 발전이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 정신질환 경험자들에 비하면 턱 없이 낮은 수치입니다. 미국은 평생이 아닌 지난 1년간의 이용률만을 조사해도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43%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도 미국에서 생활을 한다면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대폭 늘어날까요? 미국 내 인종별 조사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백인의 경우 인구의 17%가 최근 1년간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아시아계는 5%에 지나지 않고, 미국 한인의 경우에는 아시아계 중에서도 가장 낮은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을 자랑합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국가제도의 차이보다는 한 개인이 성장하고 적응해온 문화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체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이든 아니든) 한국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이미 틀린 걸까요?

 

사진_픽셀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아시아 문화권,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극단적인 통계치로 드러납니다.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항우울제 처방률은 세계 꼴찌 수준이지요. 우리나라는 2003년 전통적인 자살 국가로 유명한 일본을 가뿐히 제친 이래로 2018년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하기 전까지 독보적인 OECD 1위를 고수했죠.

그럼 어떤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유독 한국인들을, 심지어 물리적으로 한국을 벗어난 사람들까지도 정신질환에 특별히 더 취약하게 만들었을까요. 여러 연구자들은 수치심(shame)과 낙인(stigma) 문화를 그 이유로 꼽습니다. 즉, 우리 문화권에서는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창피스러운 일이고, 그것이 들통이라도 난다면 취업, 결혼, 사회생활에 중대한 결격사유로 찍힐까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사회의 인정이 한국문화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한가 봅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의 성장과정이 몽땅 사회의 인정,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농담마저도 ‘인정? 어 인정!’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사회적 압력 속에서 가족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정신적인 어려움을 부정하고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며 문제를 덮기 급급한 경우도 많습니다. 흥미롭게도 정신질환 가족력 조사에서 아시아권에서는 서구 사회에 비해 낮게 조사되는데 이는 가족 친지 중에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이를 숨기는 경향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자살률이 원래부터 이렇게 높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새 자살이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에 이어 사망 원인 4위에 올랐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사망원인 10위 안에도 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에 자살률은 유래 없이 치솟았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전통적인 문화나 가치관 외에도 사회경제적인 변화 또한 한 개인의 정신건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 성장기의 한국에서는 자신의 정신적 어려움을 무시하고 전투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어쩜 경쟁력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실이 자신과 가족에게 돌아왔었죠. 하지만 경제 위기 이후 찾아온 저성장과 양극화, 더욱 지독해진 경쟁은 그 과실을 보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TV에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셀럽들이 즐비한데 내 삶은 후지고 좋아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와중에 전통적인 공동체주의는 빠르게 해체되어 그 고통을 초라한 나 혼자 짊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기대는 충족할 수 없고, 위로받을 구석은 없는 외로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희망이 사라질 때, 그리고 소외될 때 인간의 정신건강은 취약해지죠.

 

서구 국가 국민들이 마치 헬스장 개인 트레이너를 만나는 것처럼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나고 이를 거리낌 없이 오픈하는 문화가 참 부럽기는 하지만 그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질환은 광기나 실성과 동의어였고, 정신병원은 감옥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뜻은 인간 이하의 존재, 또는 마녀로 여겨질 정도였죠.

하지만 18세기부터 신경증, 그러니까 현실검증능력이 손상이 되지 않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문명화된 현대인이 잘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20세기 프로이트 이후로 정신분석이 꽃을 피우면서 정신의학은 문학, 예술, 사회적 요소 곳곳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실성한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이해를 넓히고 성숙해지는 과정으로서 조금은 고상한 작업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구의 이런 변화도 수십 년, 길게는 200년 넘게 걸쳐온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정신보건법이 1995년에야 제정이 되었고 이전에는 상당수의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미인가시설이나 종교시설에 감금되어 인권이 유린되고 있었죠. 이런 상태에서 정신질환의 편견은 더욱 강화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경한 심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데도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걸음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약하지만 한국사회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셀럽들이 자신들의 정신건강문제에 대해서 오픈하고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각종 수필에서 과거 편견이 아닌 현대적인 맥락에서의 정신건강 치료가 다루어지면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이 점차 늘어나고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부적인 차원에서도 정신건강 치료에 대한 지원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조금씩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더 이상 숨겨야만 하는 치부가 아닌, 전문가와 상의할 수 있고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거라 믿습니다.

서구사회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를 불과 몇십 년 만에 우리나라가 따라잡았던 것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도 빨리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한국에서 헬스장 찾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처럼 멘탈헬스도 하나의 트렌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서구사회에서 진즉 유행했던 이 트렌드를 한국에서 얼리 어답터로서 먼저 실천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