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오산시가 세교신도시 소재 정신과 보호병동 설립 허가를 취소한 뒤 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6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해당 병원 병원장이 행정 조치에 불복하여 소송을 건다면 특별감사를 하고 삼대에 걸쳐 자기 재산을 다 털어놔야 할 것”이라고 촛불문화제에서 선언했다.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not in my backyard).’는 이러한 지역이기주의를 님비(NIMBY) 현상이라고 부른다.

핵폐기물처리장·하수종말처리장·쓰레기매립장·시립화장장 등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유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와의 갈등이 님비 현상의 구체적 사례이다. 대개 지역이기주의는 이기성을 보이는 이익적 요구의 주체와 해당 정책문제의 처리주체가 누구이냐에 따라 ①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및 중앙정부 간의 갈등, ②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간의 갈등, ③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 3가지 형태로 나눈다.

이번 사태는 어떤 형태의 갈등이었을까?
 

사진_픽사베이


일차적으로는 오산 세교 신도시 주민들과 정신과 보호병동 설립을 허가해준 오산시와의 갈등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오산시는 입장을 바꾼다. 심지어 곽상욱 오산시장은 의료기관 개설 허가가 됐던 것은 보건소장 전결로 된 것이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여기에 안민석(더불어민주당·오산) 국회의원이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을 만나 병원 폐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며,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를 받아들여 병원 허가 자체가 정신보건복지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으며, 이 의견을 근거로 오산시는 허가 취소를 결정했다.

지역 이기주의, 책임지고 싶지 않은 시장, 표가 필요한 국회의원, 국민건강보다 권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복지부장관이 하나가 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여실히 드러낸다.

 

세교 신도시 주민들이 정신과 보호병동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정신과 환자들은 위험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이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 환자들과 마주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은 모든 정신과 환자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싸워왔다. 심지어 환자의 칼에 쓰러진 임 교수님과 그 유가족은 환자에게 편견과 차별이 가해지는 것이 두려워 가해자를 비난하지조차 않았고, 유가족에게 모인 성금을 중증 정신질환자를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며 전문가와 그 가족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그런데 정작 지자체 수장,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은 정신과 보호병동을 폐쇄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정신과 환자들은 위험하다.’라는 편견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인정한 이들이 만드는 법과 정책, 그리고 그것을 시행할 주체가 도대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도 시민 여러분의 뜻을 더욱 높이 받드는 행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곽상욱 오산시장의 SNS 글은 오히려 시민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민들의 수준대로 우리는 행동할 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 두려운 사람에게, 엘리베이터는 위험하니 계단을 오르자며 응원을 해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 조언일까. 다소간의 저항이 있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일개 시민이 아닌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실제로 진료실에서 환자 분들께, 처음에는 ‘엘리베이터’라는 글자만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글자를 보여주며, 그다음에는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그림을, 그다음에는 동영상을, 그다음에는 움직이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머무르기, 그다음은 한 층만 이동해 보기 등 매 단계 환자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며 진행한다.

세교 신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이 두려워할 수는 있다. 요즘 벌어지는 사건들로 인해 ‘정신과 환자’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와 보건복지부는 주민들에게 ‘모든 정신과 환자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치료받지 않은 정신과 환자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니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라는 사실을 설득하고, 또 실제적인 안전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 서울시가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서 도심 속에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자리 잡았고, 광주광역시 역시 도심에 수곳의 중증정신질환 기관이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낮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이 만약 선례로 남는다면,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는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거주·재활 대책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일관성 없고, 믿을 수 없는 행정기관과 함께 일할 전문가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차적인 피해는 중증 정신질환자와 가족이, 이차적인 피해는 그들과 함께 사는 시민이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지자체 수장,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수장이 누구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관심이 곧 그들의 생명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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