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인간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

 

생각의 함정, <속단하기>와 <재앙화사고>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우리는 상황 그 자체보다 상황에 대해 자신이 습관적으로 내린 판단으로 인해 불안에 떤다. 특히, 공황이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내린 오답(인지 오류, cognitive error)은 작은 신체 감각을 끔찍한 신체적-심리적 공포로 비화시키고,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이, 격렬한 공황 반응을 일으키고 악화시키기도 한다.

공황장애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생각의 오답이 바로 <속단하기>와 <재앙화 사고>다.

먼저 <속단하기>란, 작은 신체 감각 혹은 불안감이 공황으로 삽시간에 번질 것이라는 그릇된 판단이다. 공황을 몇 차례 겪고 나면 신체 감각 자체에 감작(sensitization) 되어버린다. 즉, 작은 신체 감각에도 몸과 마음이 빠르게 반응하고, 이내 격렬한 불안 반응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작은 신체 감각이나 미묘한 상황의 변화에 ‘또 공황이 올 것’이라는 자동적 판단이 신호가 되며, 인체는 본능적으로 이를 위험으로 감지한다. 위험을 마주한 인간의 몸에서는 교감신경계가 빠르게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심장, 폐, 전신의 근육, 혈관 등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격하게 변하여 결국 격렬한 신체 반응을 야기한다.

이는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얼룩말이 멀리 보이는 수풀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나를 잡아먹으려는 사자’로 매번 판단하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이 두렵고, 매 순간이 위험하다 느낀다. 위험이 매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에 나타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공황의 빈도와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아주 미묘한 변화에 대해 합리적이고 순차적 판단보다 ‘공황의 징조’로 여기게 된다면 매번 몸은 격렬하게 반응하며, 이는 공포와 두려움을 낳는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다 보면, 신체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속단하기는 이런 미세한 차이를 금세 공포감 섞인 불안으로 만들어버린다.

 

<재앙화 사고>란 말 그대로 공황으로 말미암아 재앙(disaster)을 연상케 하는 파국적 결말을 맞이하리라는 사고 습관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불안이 느껴질 때, 불안이 공황으로 발전하게 되고, 공황으로 인해 기절하거나 쓰러질 것이며, 이를 목격한 주변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날 것이며, 그런 소문 덕분에 자신은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혹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며, 나중에는 공황장애 때문에 그 어디에도 취직할 수 없어 거리로 나앉게 될 것이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간다.

아니, 흘러간다는 표현보다는 쏜살같이 줄달음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테다. 마치 기승전결에서 ‘승’과 ‘전’ 없이 결말이 나버린다. 작은 불안에서 회사를 쫓겨나 거리를 나앉고, 말 그대로 인생이 망해버리는 상황까지 수많은 과정과 우연이 있겠지만, 그러한 순차적인 논리 정연함은 찾아볼 수 없다. 작은 불안은 재앙화 사고를 통해 덩치가 순식간에 불어나고, 삽시간에 불이 붙어 몸과 마음을 뒤흔든다.

 

공황에서의 <생각 바꾸기 II> : 속단하기와 재앙화 사고를 벗어나기

불안한 마음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 두 가지 생각의 오류를 마치 사실인 양 여기게 만든다. 아니, 불안은 자신이 습관적으로 내린 판단이 정답에 가까운지, 아니면 오답에 가까운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한다. 단지 상황 자체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할 뿐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건, 아래의 그림처럼 상황과 내 반응 사이에 자동적인 생각이 끼어 있다는 생각을 갖는 거다. 그리고, 그 생각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내 생각에 대해 거리를 두고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게 되면서, 작은 신체 감각에서 촉발되는 일련의 불안 반응들에 거리를 두고 객관화할 수 있다. 결국, 공황이 번져가는 과정 자체에 거리두기(distancing)를 하자는 거다.
 

도표_신재현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구글링을 하면 약 0.00001%라 나온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비행기를 타면서 매번 추락할 가능성을 염려하는가? 물론 가끔 난기류로 인해 생기는 비행기의 흔들림에 잠깐 불안이 생길 순 있지만, 찰나의 불안 이후 추락의 가능성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공황의 가능성에 대한 속단은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길을 가다 번개를 맞을까 늘 염려하며 사는 것과 같다. 작은 신체 변화, 미묘한 상황 변화가 언제나 공황으로 이어지던가? ‘내가 걸리면 100%’라 여기며 전전긍긍하는 행동은, 차라리 불안에 집착하고 붙잡는 행동에 가깝지 않을까.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자. 공황이 두렵긴 하지만, 그 공황이 언제나 같은 양상으로 나타났던가? 100의 강도로 나타나는 공황이 있는 반면, 조금 불편한 정도로 스쳐 지나가는 불안 반응도 있었을 테다. 그 모든 반응이 격렬한 공포와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든 반응이 공황으로 이어질까 염려한다면, 공포에 대한 공포(fear of fear)로 인해 공황을 겪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겨난다.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에 대해 실제로 일어났던 확률을 계산해보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하루 중 평균 10회 정도 불안 반응이 나타났다면, 그중 실제 공황으로 이어졌던 순간은 몇 번인가?

약 6개월을 공황장애를 앓아왔다면, 6 x 30 x 10 = 1800, 즉 1800번 중 공황이 몇 차례 일어났을까. 만약 공포감을 느낄 정도의 공황이 5회 미만이었다면, 앞으로의 추세 또한 그러할 것이라 가정할 때 (물론 치료를 받기 시작한 상황이라면 앞으로는 더 적어질 것이다) 공황이 일어날 확률은 5/1800, 즉 0.3%에도 못 미치는 아주 적은 확률이지 않은가. 작은 불씨가 크게 번져버린 경험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았다는 말이다. 대다수는 이 정도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보편적 반응을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확률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을 99.99999% 의 가능성을 ‘선택’한다. 그렇기에 감정이 이성을 앞서지 않는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휘둘리는 건 불안이라는 감정만으로 상황을 추론하는 행동이다. 그럴 경우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며, 생각은 논리의 궤도를 벗어나게 된다. 이는 결국 0.00001%를 100%와 혼동케 하고,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재앙화 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했듯, 재앙화 사고는 작은 사건에 대해 파국적인 결말, ‘최악’을 예측하는 사고 습관이다. 공황장애는 재앙화 사고와 만나 그 파괴력이 배가된다.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현실적인 최악’은 과연 무엇인지 말이다. 혹자는 공황으로 인해 거리에 나앉게 되는 장면, 공황을 여러 번 겪은 후 정신병이 생겨 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장면, 혹은 영원히 밖에 나오지 못하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과연 ‘현실적’인 최악일까?

앞의 글들에서 언급했든, 공황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생리반응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더없는 격렬함을 겪지만, 인간의 몸이 으레 그렇듯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그 시간 또한 30분 내외로 그리 길지 않다. 결코 미치거나, 심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신병이 생기는 징후나 그 시초가 되지 않는다. 이는 질병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사실로 입증된 데이터이다. 따라서 위의 결론은 오답에 가깝다. 즉 비현실적인 최악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공황을 겪으며 대략 30분-1시간 정도 땀이 삐질삐질 나올 정도의 급격한 신체 반응이 나타날 테고, 이는 당연히 당사자에게 끔찍한 시간일 것이다. 급격한 신체 변화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법. 따라서 끝난 후에도 한동안 탈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은 금세  몸은 원래의 상태로 서서히 회복되며, 고갈된 에너지는 일상생활을 하며 다시 차오른다. 결국 공황이 만들어내는 최악은 공황 그 자체가 주는 순간의 불편함, 그리고 얼마간 이어지는 피로가 다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그 장면을 본다 해도, 불편한 기색을 보고 비난하거나 조롱할 사람은 (원수나 악마가 아니라면) 없을 것이다.

 

재앙화 사고가 만들어내는 두려움 중 하나는,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물론 목숨을 위협하는 심장병이나, 정신병이 생겨버렸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공황이 오고, 불편한 느낌이 스쳐 지나가는 것뿐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물론 그 대처에는 공황이 언젠가는 끝날 테니 불편함이 있어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을 되뇌며 견디는 것도 포함된다.

 

사진_픽사베이

 

불안의 순간,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기

생각 바꾸기는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공황장애를 가진 이에게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생각의 오류를 설명했지만 공황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중요한 건,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에 오답이 있는지 살피고,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습관이다. 

1. 공황에 대한 내 생각이 합리적인가?
2.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

오답에 가까운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No’가 된다면, 자신의 마음을 스쳐 지나간 생각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다. 

생각 바꾸기는 실체가 없어 보이는 공황을 마주한 뒤 막연한 두려움에 떠는 ‘나’에게 근거를 가지고 자신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이다.

물론 위와 같은 근거가 썩 와 닿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을 갖추어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안을 담당하는 뇌 안의 편도체는 합리와 이성의 힘으로 그 불길이 잦아든다. 의식적으로 합리적 사고를 하려는 노력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사고 과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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