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제 고민을 말씀드릴까 해요.

전 제목 그대로 저 자신이 마음에 무척 들지 않습니다. 몇몇 가지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다요. 외모부터 옷 입는 것, 키, 몸무게, 살찐 것도 직업도, 정말 그냥 그래요. 30이 되었는데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명품시계나 그런 것들은 사치라 생각해 돈을 버는 그대로 적금해서 돈을 모으고 살아도 모이는 돈은 없고, 돈 쓰는 씀씀이가 크게 나아지지 않아요. 말 그대로 정말 그냥 그래요. 인생이 그냥 모자란 그 자체인 거 같아요.

딱히 사는 게 좋지가 않아요. 뭔가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요. 돈도 제가 원하는 만큼 못 버는 것 같고,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운동도 하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겠어요. 이미 출발이 한참 늦어버린 기분이랄까요. 마음만큼 계획한 만큼 잘 안됩니다. 최근에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돈을 모으려고 했는데 5월 가정의 달을 지나면서 돈이 뜻하지 않게 많이 나가, 나도 모르게 돈 계산을 하다가 혼자 폭발한 적도 있고요.

제가 제 자신이 마음에 들 정도로 만족할만한 인생을 살고 싶은데, 죽을 때 후회 없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같은 문제에서 맴도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입니다. 인생 전반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주셨네요.

돈과 명예가 그득한 삶,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이상적일까요. 누가 봐도 멋진 삶,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충만한 삶은 말 그대로 ‘이상’에 가까울 겁니다.

모든 인간에게 삶의 이상과 목표는 참 중요합니다.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지요. 그렇다 해서 그 모든 목표를 달성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충족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이 감정이 바로 질문자님께서 현재 느끼고 계시는 불편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괴리감이 처음부터 극명한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테지요. ‘어라, 생각보다 잘 되지 않네’라는 정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목표했던 삶과 현재의 내 모습 간에 격차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예전에 꿈꾸었던 내 삶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이미 온 길을 돌아갈 수는 없기에 멀어져만 가는 이상향은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성에 차지 않고, 때로는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처음에는 한두 가지 영역에서의 불만족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삶 전반이 다 실패한 것처럼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삶 전체에 대한 불만족이 번져가는 것이지요.

 

중요한 건,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는 겁니다. 과거에 꿈꿨던 이상과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새로운 현실을 만났을 때의 이상과 목표는 달라져야 합니다. 새로운 기준점을 설정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삶 전체가 불만족스럽다 느끼신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자신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따라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가 많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일정한 '커트라인'이 있다고 생각해 볼까요. 누구에게나 삶에 대해 만족하는 기준이 다 다를 겁니다. 커트라인의 수위가 높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 과정으로 가는 도중 지치거나, 달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자책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질문자님의 삶에 대한 기준이 너무 경직되거나 높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커트라인’은 누가 만드는 걸까요? 맞아요, 바로 우리 자신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에게 스스로 들이대는 잣대입니다. 즉, 내가 만들어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삶의 기준점을 설정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기준을 조금만 더 낮게 설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한두 가지라도 ‘꽤 괜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삶을 유지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설령 모든 삶의 영역이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말이죠.

내 삶에 있어 만족의 기준점을 설정하는 일은 오롯이 나 자신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과도한 이상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서 만족할 만한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실 수 있다면, 삶 전반의 불만족에 대한 해답을 찾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것이 그리 거창한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삶에서 한두 가지 만족할 거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인생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느끼실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새로운 기준점을 설정하기 위해서 현재의 내 모습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상과 비교하여 충분치 않은 외모, 경제적 능력, 주변 상황이라 할지라도 현재, 거울에 비친 있는 그대로가 분명 나의 모습입니다. 내 모습이 그리 사랑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아도, 흠결을 짚어내고 비난하는 행동은 현재의 불편한 감정을 더욱 키울 뿐입니다. 요즈음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기연민(self-compassion)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요. 질문자님께도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기 위해, 자기연민의 감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탓에 자신에게 향했던 비난에 상처 받았을 ‘나’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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