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평온 정신과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미혼 여성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동생은 같이 살다가 일 때문에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어요.

전 원래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 30대 후반부터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 개인적인 노력을 해왔고, 2년 가까이 교제한 남자 친구와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결혼을 너무 반대하세요.

표면적인 이유는 결혼할 남자가 돈이 없고 (모아둔 돈은 많이 없지만 성실하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 친구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게 이유이긴 한데, 물론 딸 가진 부모로서 재정문제로 반대하는 이유는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나이가 많아 이제 결혼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딸의 결혼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는 그 남자가 왜 너처럼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겠냐, 뭔가 속셈이 있는 것이다, 너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결혼하면 곧 이혼할 것이다, 엄마랑 같이 이 집에서 여유롭게 살면 되지 그렇게 힘든 결혼을 왜 하려고 하느냐.. 등등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아닌, 제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감정적인 이유로 수개월째 반대하고 있습니다.

난 성인이고 내 인생을 살아야겠기에 결혼식장을 잡고 통보했더니 부모가 반대하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하고, 그쪽 집안이 이상하다면서 법적으로 알아보겠다는 둥 극도로 불안하고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이십니다.

 

엄마는 주변에 인간관계가 전혀 없고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는 우울증세도 있으신 것 같아요. 나이 들고 아프다는 이유로 저랑 동생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것은 거의 없으십니다. 그리고 특별한 이유가 없이 온몸이 안 아프신 데가 없으세요.

그리고 저와 동생에게 집착이 심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거나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결혼을 하려는 것이 엄마에겐 큰 공포와 두려움인 것 같아요. 자녀들 뿐 아니라 부모들도 분리불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득해보려고 해도 엄마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당히 왜곡되게 받아들이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대화가 잘 통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엄마는 변하기 어려울 테니 일단 너는 너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시긴 하는데, 지금의 상황이 너무 괴롭고 (엄마랑 대화하는 게 너무 힘들고 저에게도 계속 상처가 되어 말을 아예 안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엄마의 상황도 참 안타까워서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알고 싶네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가 정말 독한 마음먹고 결혼을 방해하려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두려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전형진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말씀하신 어머니의 행동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것 같습니다.

현재 어머니가 보이는 모습은 의존적이기도 하고 어떤 권리감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당신을 보살펴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방식을 습득해나가지 못하고, 어머니 자신을 위해 자녀들이 누릴 권리를 침해하면서 점차 자녀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돌봐주는 자녀들은 분노를 느끼고, 결국 관계가 단절되면서 자신을 보살피지 못하는 상태로 혼자 남게 될까 걱정이 되네요.

말씀하시는 대로 가정에서 자녀들과의 관계가 밖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면 인간관계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따님이 결혼해서 출가하게 되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결혼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말씀하신 내용만으로 모든 내용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질문자님은 어느 정도 어머니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보다 어머니가 원하는 바가 우선으로 고려되고,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되면 사람을 숨 막히게 하고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머니로 인해 내가 원하는 것들이 좌절되면 결국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노는 건강한 관계에서 필수적이며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신호입니다. 어머니가 요구하는 일들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겠네요.

분노를 느끼게 되면 어머니가 어떤 행동을 하든 질문자님의 입장을 유지하고, 어머니의 반응에 속아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지 마십시오.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어머니의 어떤 행동이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해보십시오. 그리고 사람 자체를 비난하기보다는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으로 자녀들의 입장을 배려하고, 감정을 헤아리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어머니가 변화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머니는 자신이 간섭해도 되고 누려도 되는 권리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님에 대해 어머니가 중요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전적인 지원인지, 애정인지 아니면 부모에 대한 존중인지.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공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표현하고, 어머니에게 질문자님이 어떤 느낌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나 질문을 해보세요. 그리고 어머니에게 변화를 위한 의지가 있는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러한 결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적극적인 변화의 의지가 없더라도 한 가지씩 순서를 정해 노력해보자고 이야기해보고,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지지적이고 공감적인 태도를 보이며 동시에 단호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질문자님께서 어떠한 노력에도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면, 가족상담을 통해 문제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관계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제가 질문자님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모두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명쾌한 도움을 드리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답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추가적으로 묻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게시판에 문의해주세요.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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