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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정신질환 관리의 시험대에 오른 한국과 20년 전의 뉴욕

기사승인 2019.07.03  05: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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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건대하늘 정신과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9년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한 젊은 여성 언론인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치료를 중단한 지 오래된 조현병 환자가 무방비 상태의 여성을 달려오는 지하철을 향해 밀어버린 것이었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뉴욕 지하철역에서 벌어져 한 남성이 다리를 잃게 되었다. 연이은 사건에 뉴욕주 전체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고 그 여성의 유가족과 다리를 잃은 남성은 더 이상의 불행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마침내 뉴욕주 주지사가 피해 여성의 이름을 딴 켄드라법(Kendra’s Law)에 서명하였다.

 

외래치료지원제도(Assisted Outpatient Treatment, AOT)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중증 정신질환이 있지만 치료를 자의로 중단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법원이 외래 치료를 강제하는 법적 절차다. 치료를 거부하면 비자의 입원, 즉 강제입원이 진행된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AOT나 강제입원을 신청할 수 있고 신청자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그리고 환자가 법정에서 증언을 하고 판결을 따르는 것이다. 켄드라법이 도입된 이후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의료 서비스 이용률이 올라가면서 입원 및 투옥이 감소했고 전체 사회경제적 비용이 도입 첫해에만 43%가 줄어들었다. 켄드라를 사망케 한 환자는 23년형을 선고받고 치료를 재개했으며 현재는 비극적인 자신의 범죄에 사죄를 구하며 켄드라법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모범수로 조기 출소하게 되면서 그 또한 작년부터 켄드라법, 즉 외래치료지원제도의 적용 대상자가 되었다.

 

처음 5년간 유효한 법안으로 발의된 켄드라 법은 새로 선출된 주지사 또한 계속해서 연장에 서명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때마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뉴욕 주지사와 시민은 공공의 안전(Public Safety)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전 세계 문화의 용광로로서 다양성과 개성, 그리고 개인의 자유가 이 세상 어디보다 존중되는 뉴욕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됨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환자를 위한 보호책이기도 하다. 의학적으로 병식(insight)이라고 하는, 자신의 병을 인식하는 기능이 손상될 수 있는 중증 정신질환의 특성상 치료를 거부하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타인에게 심각하게 위험한 행동까지 벌이는 상태로 악화가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사법기관이 관여한다. 비자의 입원이나 치료의 최종 결정을 법원이 내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지는 것이다. 지역사회 의료와 복지서비스로 연결까지 법원에서 제공한다. 환자도 자신이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법원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와 국선 변호인을 보장받는다.

 

사진_픽사베이

 

한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뉴욕 공공 병원으로 연수를 오면서 병원 내부에 법정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놀라는 한국인 의사를 보고 미국 의사들은 더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사법입원제도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지 않아 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환자 개인이나 그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대가족 중심의 전통적 사회에서 개인 중심의 현대 사회로 급격히 진행해오는 과정 속에서 정신보건 시스템이 사회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이다. 핵가족조차 분자화 되어 1인 가구 비율이 매년 최고치를 돌파하고 있다. 진주 참사에서도 우리는 환자와 이미 따로 지내는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없음을 배웠다. 그리고 가족들이 환자 치료를 위해 노력을 하더라도 여러 관공서로부터 외면받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에 우리는 큰 무력감을 느꼈다.

 

행정입원과 외래치료명령제도가 참사 전에도 이미 존재했지만 잘 알려지지도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았다는 점은 우리에게 더 큰 무력감을 준다.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책 마련이 논의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지난 수년간 정신의학계는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국가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며 사법입원제도 도입과 외래치료명제도 강화를 주장해왔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 없이 비자의 입원 기준만 까다롭게 하는 2017년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었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그 우려가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9년의 한국에서는 20년 전 뉴욕에서 온 사회가 대책 마련을 위해 들끓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사건들과 더 많은 희생자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와 국가가 무력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응답할 때이다. 그리하여 20년 전 뉴욕이 그랬듯이 2019년이 환자와 가족, 사회가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국가적 노력이 시작된 해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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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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