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부산서면 통통샤인정신과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노래했다. 그는 해방을 앞두고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의 마루타가 되어 비참하게 죽어갔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삶의 태도는 죽어 있는 우리의 감성을 여전히 일깨워주고 있다.

 

삶의 문제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선, 우리에게 닥칠 문제를 예상하고, 최소한의 걱정만을 가진 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재의 지식과 경험을 종합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현상에서 본질을 꿰뚫어 보며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통찰력이다. 우리에게 미래에서 배송된 신문을 보는 것처럼 미래에서 벌어진 일들을 미리 보고, 대비할 수 있다면, 남보다 앞서 기회를 선점하고, 위험을 피하며, 자신이 원하는 미래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스팸 통조림 용기가 태평양의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죽은 고래의 내장에서 비닐봉지가 수두룩하게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이대로 가다간, 환경파괴로 인간과 동식물이 공멸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각으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통찰력의 힘이다. 이런 통찰력이 없다면, 현재의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고,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 다가올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다. 우리의 찬란했던 현재의 순간도 결국 죽음의 한 점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죽기 전에 단 몇 마디만을 남기고 눈을 감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예고된 장면일 수 있다. 일단 죽는 것을 좀 더 일찍 받아들여서 죽음을 의식하며 살 수만 있다면, 지금 누리는 일상을 보다 충실하고, 활기차게 살며,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아름다운 미래에 부끄러움 없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_픽사베이

 

우리는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자신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려 보기 전에, 죽음을 미리 경험한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을 대비해보는 지혜를 얻어보면 어떨까 싶다.

박완서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인 ‘세상에 예쁜 것’이란 책에서 ‘이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 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 진다.’라고 하셨다.

스티브 잡스도 병상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끼고.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건 돈 버는 일보다는 더 중요한 뭔가가 돼야 한다. 그건 인간관계가 될 수 있고, 예술일 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꿈일 수도 있다. 조물주는 우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성이란 것을 모두의 마음속에 넣어 주셨다. 평생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가족을 위한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을 귀히 여기고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도 평생 자신이 벌어들인 재산을 가져갈 도리가 없음에 허망해했고,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비로소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만을 가져갈 수 있을 거란 삶의 본질을 뒤늦게 깨달았다. 끊임없이 미래를 대비하며 무언가를 축적하고자 하는 인간은 현재에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을 미루다가 죽기 전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고, 어떤 것도 해 볼 수 없다는 아쉬운 후회를 남긴 채 눈을 감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닥칠 죽음을 미리 깨닫고, 우리의 삶을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여기고, 주어진 인생을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질적으로 다른 인생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살기로 결심을 해도 또다시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지나온 삶의 타성대로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그래서 아름답게 변화하고, 사랑스럽게 다스리고, 고맙게 기억되는 목표에 다가설 수 있는 미학적 자존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보는 나, 타인이 보는 나, 궁극의 절대자의 시선으로 나를 준엄하게 바라보는 이 세 가지 시선의 조화를 이루어 삶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오늘 삶의 현장에서 이룰 수 있도록, 매일 아침 수건으로 죽음과 삶을 날마다 체험하는 수건의식을 소개했었다.

(링크) 삶의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이를 통해 분명한 자아이미지의 내실을 갖추고,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하고 그것을 온전히 실현하도록 계획을 세우고, 자아이상의 기대치를 조정하며, 계획대로 삶의 가치와 정신적 성과물을 이뤄간다면, 인생의 마무리인 죽음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서로 다른 질문지를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정답을 자신의 정답인양 카피하느라 살다 보니 정작 자신의 삶에서 길을 잃는다.’는 격언이 와 닿는다. 살다 보면 남들이 나보다 얼마나 더 가졌는지를 비교하며 속상해하는 것이 별로 도움되지 않을 때가 많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인생이라는 카드게임을 시작하려면 누구나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록 나에게 있는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면 거기서부터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도 자신의 것으로 진정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더 많은 의미의 선물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의식하며,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하루를 운명처럼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기쁨을 누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의미 있고 창의적인 일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와 통하는 통찰력 있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춤춰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디 디 수자의 시처럼 마음을 다해 일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오늘도 춤추듯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분들을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신해철의 <그대에게> 마지막 소절을 들려주고 싶다.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 우~~~우우 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우후-~~.>

 

그동안 미학적 자존감 연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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